명랑주의자의 사생활
안내인이 차를 세우라고 했다. 구불구불한 계곡길을 따라 10킬로미터를 넘게 달려온 뒤였다. "지금부턴 짐을 챙겨들고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찻길은커녕 사람이 다녔던 길의 흔적마저 없었다. 숲속은 한기가 느껴졌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작은 시내가 흘렀다. 연일 내린 비로 없던 물길이 생긴 듯했다. "바짓단을 걷으세요." 안내인이 먼저 건너는 시범을 보였다. 바짓단을 접어 올리면서 나는 물었다. "정말 저기에 집이 있나요?"
안내인은 딴소리를 했다. "계곡 물 소리가 힘차지 않아요?" 물 소리는 서늘하고 청량했다. 한참을 수풀 사이를 헤집고 가는데 낯익은 식물들이 눈에 들어 왔다. "싸리꽃이 막 피기 시작하는군요. 저건 상사화 맞죠? 머위 군락도 있고 취꽃이 이쁘네요." 안내인이 놀라는 눈치였다. "서울 양반이 어떻게 꽃도 없이 줄기만 있는 걸 보고 상사화를 맞춘대요? 작가는 작가인가 보네요." 나는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방 십리 안에 사람이라곤 없어서 혼자 계시면 밤에는 무서울 겁니다. 그런데 밤에는 어디에서 볼 수 없는 별 구경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려다 참았다. 무서운데 어떻게 별 구경을 할 수 있겠냐고. "낫질 할 줄 아세요?" 느닷없이 안내인이 물었다. "네, 군대에서 삽질이랑 낫질 좀 해봤는데요." 안내인은 나더러 편하게 다니려면 길을 뚫어 두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솔직하게 말하려다 참았다. 당신께서 낫이 아니라 정글칼로 해주셔야 될 거 같은데요, 라고.
안내인은 돌아가고 첩첩산중에서 홀로 하룻밤을 지샜다. 지구에 나 혼자 남은 것 같은 극한의 절대고독을 씹으면서. 물론 마당에 나갈 수가 없어서 밤하늘의 별 따위는 구경하지 않았다. 수도승들이 암자를 버리고 자주 아랫마을에 출몰하는 이유를 나는 헤아리겠다. 그것은 수행의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별을 볼 수 없는 무서움 때문인 것이다.
일본에 구도자 같은 소설가가 있다. 소설은 떼거리로 쓰는 게 아니라 혼자 쓰는 거라고 문단의 패거리 행태를 힐책했던 천재 작가. 휘둘리지 않으려고 일찌감치 산골에 처박혀 사는 마루야마 겐지가 인터뷰 했던 말이 떠오른다.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가족, 직장, 나라에 의존하며 살다보면, 내가 왜 사는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된다. 그러다 혼자 있으면 외롭다고 엄살이나 피우고. 인간이라면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간단한 목적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이룰 수 있는 궁극의 목적.”
그럼 당신에게 그 목적은 무엇이냐고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궁극의 소설. 이 책 하나만 있으면 다른 소설은 필요 없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쓴다.”
문득 마루야마 겐지의 형형한 눈빛을 떠올리며 다짐해 본다. 오늘 밤에도 어떻게든 살아남자. 궁극의 문장 한 줄만 얻자. 전나무 숲을 시커먼 장대비가 쓸고 지나간다. 아직은 살아서 아픈 비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