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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대체 내게 왜 이러세요?

체육관에서 운동하다 삐쳐서 쓴다

by 림태주

모처럼 운동하러 헬스장에 갔다.

런닝머신에 올라 걷고 있는데 옆에서 씽씽 달리고 있었다.

찰랑찰랑 앳된 여성이었다.

나는 결심했다. 경쟁하지 말자.

나는 끓어오르는 승부욕을 내리누르며 꾹 참고 걸었다.


남자들은 철이 없는 족속이다.

아무 데서나 대책없는 호승지심을 부리곤 한다.

나는 주체적인 사람이라서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 길을 갔다.


이십 분 쯤 걷다가 나는 레벨 4에서 5로 올려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

그런데 내가 올리자마자 그녀도 레벨 8에서 9로 올리더니

더 경쾌하게 달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녀에게 질세라

다시 레벨 6으로 올렸다.

그러자 그녀도 레벨 10으로 올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왜 그녀가 나에게 도발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지만

나는 그녀를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그래, 우연의 일치겠지.

나는 시험 삼아 레벨 7로 올려봤다.

아니었다, 우연이.

그녀도 득달같이 레벨 11로 올리고는

졸라리 날쌔게 달리는 것이었다.


"아가씨,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세요?"

하고 묻고 싶었으나 레벨7의 빠르기는

나를 헉헉거리게 만들었다.

걷기에는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고,

달리기에는 이미 어정쩡한 속도.

달린다 해도 그녀의 11을 따라잡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나는 굴욕을 참으며 조용히 스톱 버튼을 누르고

악몽의 런닝머신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일부턴 헬스장에 오기 전에 꼭 달리기 연습을 하리라.

한 달 뒤에 나는 그녀와 정식으로 맞붙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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