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주의자의 사생활
절뚝거리며 정형외과에 갔다. 뼈를 다루는 병원엔 태어나서 처음이다. 의사가 어떻게 왔냐고 물어서 나는 푸르딩딩 멍들고 부은 발등을 내밀어 보여줬다. 안쓰러운 기색도 없이 어쩌다 다쳤냐고 묻는다. 대답하기가 난감해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생각 끝에 축구 하다가 다친 것 같다고 말끝을 흐리며 답했다.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해 놓고 보니 내 대답이 이상했다. 다쳤으면 다쳤지 남의 발도 아닌데 다친 것 같다니. 거짓도 사실도 아니어서 그랬다. 나는 분명 축구를 했고 축구를 하다가 다쳤으나, 운동장에 있지도 않았고 공을 찬 것도 아니었다. 나도 헷갈린다. 의사는 뼈에 이상이 없는지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사진 결과가 금방 나왔다. 의사가 내 발뼈 사진을 보여줬다. 의사는 사진을 유심히 살피더니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돌아가서 얼음찜질을 하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엑스레이로 나타나지 않는 실금이 있을 수 있으니 만약 붓기가 가라앉지 않고 계속 통증이 오면 다시 병원에 오라고 당부했다. 의사가 설명하는 동안 나는 모니터에 보이는 한 남자의 발뼈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뼈가 시 같았다. 다섯 개의 강렬한 느낌표 같기도 하고 폭포의 물줄기 같기도 했다. 나는 내 뼈가 그토록 아름다운 줄 처음 알았다. "뼈에 새겼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뼛속까지 사상에 물들었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여태까지 "뼛속까지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오늘 드디어 역사상 처음으로 이 말은 실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된 것이다. 나로 인해.
흐뭇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나가려는 나에게 의사가 의문이 남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거 정말 축구하다가 다친 거 맞아요?"
나는 씩 웃으며 의사에게 말했다.
"말하기가 참 난감한데요. 지금 유로 2016 축구 시즌이거든요. 내가 호나우두 광팬인데요. 그 녀석 때문에 이렇게 된 거죠."
의사는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어젯밤 호나우두가 뛰는 포르투갈 경기를 보고 잤는데요. 내가 호나우두가 돼서 축구를 했거든요."
"네?"
"아, 꿈속에서요. 결정적인 순간에 골문을 향해 있는 힘껏 킥을 쐈는데 글쎄 꿈 밖에 있던 다리가 힘차게 뻗어서 냅다 벽을 차고 말았지 뭡니까. 그러니까 이게 축구 때문인 것 같지 말입니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앉아있는 의사를 뒤로한 채 나는 병원 문을 나섰다. 어쨌건 나는 잠시나마 유로 2016을 뛴 축구 스타였고, 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뼈를 가진 남자임에 틀림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