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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고 말하는 너에게

바다가 보이는 우체국에서 쓴다

by 림태주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견디는 사람, 오늘을 즐겨야 내일이 온다고 믿는 사람. 오늘을 즐기는 사람은 내일을 과감하게 처분해 배낭을 꾸려 여행길에 오른다. 견디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자신이 견디고 있는 오늘이 타당하고 옳은 것인가를 회의한다. 즐기는 사람은 현실에 붙들린 옹색하고 초라한 삶을 동정하고, 견디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의 결단과 용기를 동경한다.

낭만주의자, 자유인, 휴머니스트, 구도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즐기는 자는 여행길에서 수많은 현지인들을 만난다. 그들은 여행자에게 관대하고 친절하고 넉넉하다. "여보게, 그렇게 차려입고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나? 어서 와서 거들게나. 생선 한 토막이라도 얻어먹으려면." 여행자는 엉겁결에 생선상자 나르는 일을 돕고, 붙임성 좋은 노인의 단란한 저녁 식탁에 초대받는다. 노인은 여행자에게 갓 잡은 생선 요리를 건네며 말한다. "나는 칠십 년 동안 여기서 생선을 잡으며 살았네. 작은 배를 타고 내해를 손금 보듯 드나들었지. 가족과 배 한 척이 나의 전부라네. 자네는 무엇을 찾아 이리 멀리까지 왔나?"

즐기는 자는 알게 된다. 견디는 삶이 싫어 떠나온 여행길에서 만난 그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을 견디고 사는 넉넉한 사람들임을. 즐기는 자는 어느 이국의 비린 바닷가에서 파도처럼 밀려드는 별빛을 보며 깨닫는 것이다. 견디는 삶이 초라한 게 아니었구나. 정작 외롭고 가여운 것은 삶에 대한 너무 이르고 편협한 단정이었구나.

어쩌랴, 누구나 견디며 산다. 궁상맞거나 초라하지 않다. 오래 견디면 견디고 산다는 것도 잊게 된다. 견디는 삶도 숙달되면 향기롭고 즐길 만한 삶이 된다. 기실 즐기는 삶이라는 것도 반드시 무언가는 견뎌야 한다. 사람의 삶에 다른 방도는 없다. 기꺼이 견딜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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