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주의자의 사생활
비가 오면 회사에 나가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법을 만든 사람이 있었다. 실제로 그는 법을 준수했고, 그의 구두는 젖지 않았다.
뒤에서 수군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람으로 태어나 어떻게 한평생 젖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느냐고. 여자들은 그를 기피했다. 우산을 쓰지 않는 사람이니 낭만이라곤 눈곱 만큼도 없는 사람일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어느 흐린 날 회사의 총무과장이 그를 호출했다. 당신의 결근일 수가 너무 많다. 다른 사람들은 비가 와도 나와서 일한다. 지나치지 않느냐? 그는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다 볼 뿐이었다.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반차를 써야겠어요.
총무과장이 아랫입술을 깨물다 말고 그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대체 뭐 하자는 것인가. 비를 맞으면 죽는 질병이라도 걸린 것인가. 사람들이 당신을 비정상 비남자라고 부르는 걸 못 들었는가. 정신 이상이라는 얘기 말이다. 더이상 봐주지 않겠다. 비 오는 날 다시 결근하면 인정사정 없이 해고하겠다.
사내에 금세 소문이 퍼졌다. 이제 또 비가 내리면 비남자는 끝이라고. 빨리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그 회사에 다녔다. 그러나 여름 끝무렵이라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시계를 들여다 보듯 그들은 초조하게 일기예보를 들여다 봤다.
이윽고 가을이 왔다. 날씨는 맑고 건조했다. 회사에 남편과 연인을 저당잡힌 아내들과 애인들은 눅눅한 마음을 빨래줄에 내다 걸고 가을볕에 말렸다. 볕 좋은 가을날에 비남자의 첫 시집 <비의 질환>이 세상에 나왔다. 그의 시집은 평론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우리가 내다버린 로맨티시즘의 귀환!, 우수에 젖은 인간 내면의 탁월한 성찰과 궁극적 휴머니즘의 회복!
느낌표가 꼬리표처럼 달라붙은 모호하고 무성한 말들의 성찬이 신문을 오르내렸다. 그 말의 잔치에는 빗방울도 시도 시인도 누락돼 있어서 그는 기쁘지 않았다. 그가 오로지 기뻐한 일은 올드미스 총무과장이 사인을 해달라며 그의 시집을 수줍게 내민 일이었다.
늦가을에 가을비가 내렸고, 그는 해고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가 오나 비가 오지 않으나 회사에 나갔다. 더러는 무사했고 더러는 잘려나갔다. 시를 쓰는 한 남자는 맑은 날엔 회사에 몸을 팔았고, 흐리고 비 오는 날엔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샀다. 그는 그렇게 가까스로 사람으로 살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