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주의자의 사생활
비꽃이라는 우리말이 있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전에 맨 처음 한두 방울씩 툭툭 꽃송이처럼 떨어진다고 해서 비꽃이라고 한다. 만나러 오겠다는 비의 기별이다. 또 꽃이 비친다는 표현이 있다. 첫 생리를 시작할 때 속옷에 묻어나는 피무늬가 꽃잎이 붉게 열리는 것 같다하여 이렇게 쓴다. 이 두 꽃은, 그러므로 처음 내는 길을 의미한다. 비꽃이 먼저 길을 열어야 그 길을 따라 소낙비든 여우비든 비님이 다녀가시게 된다.
빗소리에 취해 창문을 열어놓고 있던 한밤에 전화가 걸려왔다. 술 한 잔 걸친 후배의 들뜬 목소리였다. 후배는 대뜸 "선배님, 감히 전화를 드렸습니다." 하고 첫 말을 꺼냈다. 나는 감히의 무게에 눌려 쿵하고 무너졌다. 우리는 참 오래된 인연이어서 스스럼없는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후배는 저 만큼의 거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잘못 살았구나, 나는 밀려드는 후회를 밀쳐 낼 요량으로 창문을 닫았다. 빗소리가 막막해졌다.
물고기였다면, 나는 아마도 차갑고 맑은 물에서 사는 열목어나 산천어로 태어났을 것이다. 나는 천성이 그렇다. 정갈하고 맑고 고요한 것에 끌리는 성정을 지녔다. 흐트러진 모습을 아무렇게나 내보이는 걸 꺼려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도량이 넓거나 심지가 굳은 사람은 아니다. 이런 나를 가벼이 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기품 있는 선비나 올곧은 문사는 후세 사람에게나 멋지지 동시대 붕우들에게는 얼마나 꼬장꼬장하고 까다로운 사람이었겠는가.
나는 후배를 내가 다니던 회사로 끌었고, 우리는 격동의 시절을 함께 헤쳐왔다. 그에게 나는 비꽃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비꽃은 비가 퍼붓기 시작하면 흔적도 없이 잊힌다. 그게 세상의 인심이고 물비린내 나는 삶의 눅눅한 단면이다. 내 천성이 지닌 외로움의 밑면을 쓰다듬 듯 후배는 꽃이 비치던 처음의 때를 잊지 않고 있노라고 말했다. 외로운 자리가 뭉클하게 뜨거워졌다. 비꽃을 기억해 준 것이 고마워 나는 창문을 조금 열어 빗소리를 들이고 박하꽃 같은 잠을 잤다.
오늘은 꽃비가 지천이다. 산수국 자줏빛 꽃대궁으로, 옥잠화 흰 비녀 꽃잎 속으로 색색의 염료를 푼 빗물이 차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