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민 선생님과의 수업을 시작했다. 내가 과연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외국에 살고 있어도 외국인과 대화하기 힘든 현실에 용기를 냈다. 이제 나도 과외받는 학생이다.
외국인 선생님에게 들었던 마지막 수업은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졸업을 하려면 영어로 이루어지는 강의를 몇 학점 이상 들었어야 했는데 자신이 없다 보니 미루다 미루다 4학년 때야 듣게 되었다. 그때 남자 친구와 같은 수업을 듣겠다고 아무 생각 없이 수강신청을 해버린 게 문제였다. 기초회화도 버거운 내가 무려 전공을 외국인 교수님에게 듣는 수업을 신청해 버린 거였다. 아마 법의 역사에 관한 거였던 거 같다. 영어를 정말 잘하는 학생이 아니면 수강하지 않는 수업이라 학생도 별로 없었다.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왜 수강신청 정정이 가능할 때 그 수업을 빼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그때 남자 친구였던 남편과 한창 재밌을 때라 노느라 바빠서 첫 번째 수업을 안 들어갔었을 거 같긴 한데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3번째 수업 때 교수님의 질문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자체적으로 수업을 종강시켜버렸다. 그냥 안 나갔다. 그리고 당연히 졸업을 못했다. 그 덕택에 취업 후 졸업을 하게 돼서 졸업식 참석을 위해 정신없이 바쁜 신입사원 때 휴가도 써볼 수 있었으니 결론은 좋다고 해야 할까.
이런저런 이유들로 나는 원어민 선생님이라고 하면 엄청 부담스럽고 어렵다. 그래서 한국인 선생님에게 배워볼까도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러고는 싶지 않았다. 선생님의 연락처는 주위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카톡 연락처를 보며 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고민을 계속했다. 아이들이 잠든 밤에만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내 고민을 더 깊어지게 했다. 누가 그 밤에 과외를 해줄까 싶었다.
역시 뭐든지 일단 하고 보는 게 좋은 거 같다. 용기를 내서 메시지를 보낸 순간부터 선생님의 적극적인 답변이 이어졌다. 온라인으로 하는 수업이기 때문에 밤 시간도 당연히 가능하다 했다. 카톡으로도 느껴지는 친절함에 자연스럽게 시범수업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떨리는 시범수업 날 영어 과외 10년 경력자의 내공을 느꼈다. 나 같은 초보도 이해할 수 있는 정확하고 쉬운 영어들로 수업계획을 설명하고 본인을 소개하는 것에 반했다. 이분이다. 나의 선생님!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내가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역시 나는 한국인이 맞다. 문법은 알고 있는 내용이라 알아듣기가 쉽다. 아는 건 원래 잘 들린다. 그리고 선생님이 한국 학생도 많고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서 뭐든지 정말 쉽게 가르쳐준다. 정말 재밌다. 옆에서 오며 가며 듣고 있는 남편이 조금 신경 쓰일 때가 있는데 이제 영어로 부끄러워할 때는 지나서 괜찮다. 공부하라고 과외비도 내줬는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고마워 남편.
그런데 영어 과외에 가장 어려운 점은 따로 있다. 바로 애들 재우기다. 육아에서 가장 어려운 게 '재우기'인데 이걸 완료해야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나의 수업시간은 9시 30분. 평소 같으면 9시도 되기 전에 잠들 애들이 이상하게 과외 날만 기분이 좋은지 잠이 들지 않는다. 특히 둘째가 안 잔다. 첫째가 안 자면 설명을 하고 거실로 나올 수 있지만 20개월 둘째는 그런 게 없다. 무조건 재워야 한다.
어떻게든 일찍 재우려고 산책도 나가고 수영도 하는데 나만 피곤하다. 나만. 5살 2살이 왜 이렇게 체력들이 좋은지 피곤한 기색이 없다. 매일 하는 물놀이인데도 집에 올 때마다 아쉬움이 철철 넘쳐서 항상 내일 또 놀자며 친구들과 약속잡기 바쁘다. 집에 와서 후딱 씻기고 밥 먹이고 책 읽어주고 재우면 나도 같이 자고 싶어 진다. 어떻게든 졸린 눈을 이겨내고 컴퓨터를 켜면 그때부턴 아이들이 깰까 봐 긴장하면서 수업을 듣는다. 애들이 잔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둘째가 늦게 잠들어서 수업에 늦은 날 선생님은 언제든지 다른 날로 수업을 바꿀 수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친절한 말을 해주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애가 안 잘 거 같음 미리미리 못한다고 연락해야겠다. 애들 재우기는 아직도 정말 쉽지 않다.
선생님한테 숙제도 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못한다고 할걸 그랬다. 자꾸만 미루게 된다. 다 커서도 숙제는 하기 싫은 거 보면 사람은 참 한결같은 존재인 거 같다. 그만 미루고 빨리 숙제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