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를 낳고 성격이 변했다. 스몰 토킹을 좋아하는 아줌마가 된 거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말도 잘 못하고 그 상황이 끝나기만을 바라던 나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도 정말 재밌다. 특히 또래의 아이를 가진 엄마들과의 대화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건 환영이다.
10월부터 락다운이 풀리면서 콘도 안에서의 활동이 더 편해졌다. 덕분에 예전엔 한국인 엄마들만 만났다면 요즘은 놀이터와 수영장에서 다양한 국적의 엄마들을 만난다. 대부분이 눈인사 정도 하는 사이인데 그중 일본인 엄마와 좀 친해졌다. 아이가 둘이고 아이들의 나이가 같다는 공통점 때문에 오며 가며 잠깐만 대화하는 건데도 정말 좋았다. 물론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해서 길게 이야기 하기는 힘들었지만 각자의 둘째들이 알아서 다른 곳으로 가자고 찡얼대는 탓에 자연스럽게 헤어질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엄마는 대뜸 전화번호를 물어보며 집에 오라고 초대를 해주었다. 나만 우리의 대화가 즐거웠던 게 아니었던 거다. 초대받은 순간 어찌나 기쁘던지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당연히 가겠다며 승낙을 했다. '우와 드디어 나에게도 외국인 이웃사촌이 생겼다!'
그런데 둘째의 콧물이 마르지를 않고 계속 흘렀다. 코 훌쩍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아이 있는 집을 놀러 가는 건 안 되는 거니까 계속 미루다 콧물이 마르자마자 약속을 잡고 집을 방문했다.
사실 약속을 잡고 나서부터 엄청나게 걱정을 했다. 바로 영어로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그동안은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고 그나마도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느라 매일 비슷한 이야기만 했는데 이제는 대화다운 대화를 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대화를 할지 생각하며 문장들을 만들고 외웠다. 방문한 순간부터 집에 가는 순간까지를 상상하며 50개 정도의 문장을 만들어서 약속 당일 아침까지 연습을 했다.
그리고 대망의 약속 당일, 처음으로 외국인의 집에 방문하게 된 뜻깊은 날을 기념하며 아침부터 꽃단장을 했다. 아무리 평소의 내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방문하는 건데 쓰레파끌고 매일 입는 늘어진 반팔티 입고 가고 싶진 않았다. 주말에 놀러 갈 때 입는 원피스도 꺼내 입고 좋은 가방도 들고 예쁜 신발도 신었다. 물론 맨발로 있는 건 부끄러우니까 양말도 챙겼다. 그리고 당연히 휴지도 샀다. 휴지에다 아이에게 줄 미니카까지 사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든든했다. 첫 방문을 빈손으로 갈 순 없지!
같은 콘도에 살고 있어서 크게 다른 점은 없었지만 확실히 집이 깔끔했다. 부엌의 깔끔함에 놀라고 화장실 물건들이 각 맞춰 진열된 모습에 감탄했다. 역시 생각했던 모습이라고 할까. 일본인 엄마는 아들이 둘이라 집에 자동차 장난감이 무척 많았다. 우리 둘째에겐 거의 신세계 같은 곳이었을 거다. 어찌나 신나게 놀던지 물 마시고 놀라는 나의 말에 쳐다도 보지 않고 "부릉~"거리며 놀길래 마음껏 놀라며 내버려두었다. 그 덕에 공부해간 문장을 써먹으면서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일본인 엄마도 한국에 4번이나 방문했을 만큼 한국을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더 편하게 느껴졌나 보다.
한국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말할 순 없어서 좀 답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었다. 아마 이 엄마는 내가 얼마나 신기한 기분이고 신나 하고 있는지 몰랐을 거다. 올해 안에는 외국인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했었는데 친구까진 모르겠지만 친하게 지낼 이웃사촌은 생긴 거 같아서 정말 좋다.
일본인 엄마의 영어 잘한다는 칭찬에 어깨가 한 껏 올라가 있었는데 방금 수업을 들으며 다시 내려왔다. 해리포터를 설명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공부 더 하고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