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까지 수많은 만화책을 읽었지만 책은 읽지 않았다. 내가 유일할게 읽은 책은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 몇 권과 제인 에어 그리고 해리포터였다. 몇 권 읽지 않았지만 이 책들만큼은 완전히 빠져들어서 읽었다. 이 중 해리포터는 이불에 누워서 하룻밤만에 한 권을 다 읽고 그다음이 너무 궁금해서 서점에 달려갔을 만큼 재밌고 또 재밌었다.
안 그래도 마법이나 용 같은 판타지류를 좋아하던 나에게 이 책은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와 긴장감 넘치는 모험 이야기까지 들어있는 선물 같은 책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해리포터를 좋아했겠지만 영화는 나를 해리포터 팬으로 만들었다. 아마 전 세계의 수많은 해리포터 마니아들도 똑같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막연하게 상상하던 이미지들을 정말 완벽하게 구현해낸 마법세계와 다른 사람은 상상도 안 되는 책에서 방금 튀어나온 거 같은 주인공들의 모습까지. 내 학창 시절은 이곳에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팬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것도 맞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관련된 이야기들도 좋아하지만 진정한 팬들처럼 마법주문이라던가 인물관계 파악 같은 해리포터 세계관을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노력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하고 싶었지만 못했다는 게 맞을 거 같다. 시간이 없다기 보단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늘 무언가를 진정으로 빠져들어서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올 해는 나도 해보기로 했다. 그런 사람. 나는 뭐를 정말 좋아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올해 1월부터 해리포터 원서 읽기를 시작했다. 그동안은 판타지 소설을 영어로 읽으며 엄청난 시간을 쏟는 게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같은 생각 때문에 주저했다. 이번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냥 했다. 하고 싶어서. 영어공부 보단 진정한 마니아라면 원본을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원서 읽는 방법으로 좋다는 건 많았지만 난 그냥 정확하게 읽고 싶었다. 대충 느낌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정확히 알고 넘어가고 싶었다. 덕분에 처음엔 1시간에 1페이지 읽는 것도 벅찼다. 애들 챙기고, 집안일하고 영어 공부하고 난 다음에 시간에 나면 해리포터를 읽었다. 모르는 단어를 표시하고 그 단어의 뜻을 찾고 적어두고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문장 전체를 검색해서 다른 사람이 해석해 놓은 것들을 찾아서 읽어봤다.
그렇게 하다 보니 점점 읽는데 드는 시간이 줄어갔다. 마지막쯤 오니까 1시간에 5페이지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시간도 엄청 오래 걸리고 힘든 것도 사실이었지만 책상에 앉아서 졸기도 해보며 끝까지 읽었다. 어찌나 재밌던지 책 읽을 시간을 만들려고 다른 것들을 빨리 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고 또 읽으면서 이해하다 보니 세세한 것들까지 머리에 남아서 더 재밌게 느껴졌다.
어떤 날은 많이 읽고 또 어떤 날은 전혀 읽지 못하기도 하면서 늘 곁에 두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에 한 페이지 두 페이지씩 읽으며 7개월이 지났고 드디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다 읽었다. 무려 원서로. 내가 이 책을 다 읽으면 꼭 하고 싶은 게 있었다. 바로 헤르미온느의 타임 터너 목걸이를 구매하는 거였다. 진정한 팬이라면 관련 물건들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샀다. 지팡이도 사고 싶고 망토도 사고 싶지만 가장 가지고 싶었던 헤르미온느의 목걸이를 먼저 샀다.
이제 내 책상 앞에는 헤르미온느의 목걸이가 반짝반짝거리고 있다. 심심할 때마다 돌려도 보고 멍하니 쳐다보기도 하며 헤르미온느처럼 되고 싶다는 상상을 하던 나를 기억해 본다. 사실 지금도 헤르미온느처럼 되고 싶다. 똑똑하고 당당하고 용기 있는 멋진 사람. 앞으로 6권 남았다. 일단 내 목표는 말레이시아에 있는 동안 저 책들을 다 읽어보는 건데 가능할까 모르겠다. 아무튼 빨리 2권을 읽고 싶다. 2권을 다 읽으면 해리포터 지팡이를 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