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딸을 잘 모른다

아이를 지켜본다는 것

by 리나

첫째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왓츠앱을 카카오톡 바로 옆자리로 옮겼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왓츠앱을 써서 학부모들과 소통하려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한 거에 반해 늘 단체 채팅에만 연락이 왔다. 당연한 거긴 하다. 내가 영어가 능숙한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아이의 엄마와 친해져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아이의 엄마에게 파티에 초대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것도 자신의 아이가 초대해달라고 요청한 5명의 아이에 포함되었다는 말과 함께였다. 그때 깨달았다. 첫째는 정말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구나 라는걸




첫째 아이의 영어가 빨리 늘길 바랬다.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개념에서가 아니라 그저 학교생활이 편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고 오늘 어땠는지를 물어본 후 긴장하면서 대답을 들었다. 저번에 학교에 방문했을 때 활기차게 잘 다닌다고 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혹시 친구가 괴롭히지는 않을까? 친구와 싸우진 않았을까? 아니면 친구가 없어서 혼자 놀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첫째는 늘 재밌었다며 특별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 속상하냐는 나의 물음에 첫째는 방과 후 수업에서 한 언니가 첫째의 가방을 뒤져 첫째가 만든 휴대폰 장난감을 꺼내서 놀다 찢어서 속상하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 화가 확 났다. 빌려주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가방을 뒤지다니. 영어를 못해서 우리 아이를 무시하나 싶어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화가 났다. 아이에게는 다음에 또 그러면 내가 담당 선생님께 그러지 못하게 해달라고 메일을 쓰겠다. 그래도 또 그런 행동을 반복한다면 그 아이의 엄마에게 직접 말을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표정은 별거 아니니 너는 신경 쓰지 마 내가 해결할게 였지만 속은 그게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틀렸다. 그다음 주 같은 수업이 있는 날 긴장하며 오늘 어땠는지 물어보는 나의 말에 첫째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휴대폰 장난감 두 개 만들었어. 혹시 언니가 가지고 놀고 싶어 하면 빌려주려고. 나는 잘 만들잖아 그런 거"


충격적이었고 부끄러웠다. 나는 자격지심에 화내고 싸울 생각만 했는데 첫째는 남에게 베풀어서 그 상황을 해결하려 했다. 이날 이후로 아이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나 어리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6살이어도 학교 다니는 학생이 되어서인지 아이가 훌쩍 큰 게 느껴졌다. 그러고 나니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등 하원할 때 친구들이 첫째 아이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반가워하는 게 보였고 첫째도 친구가 있으면 좋아서 표정이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파티 초대를 받으면서 확실히 알았다.

친구들과의 사이가 아주 좋구나. 스스로 잘해나가고 있구나.



이렇게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한 걱정이 점점 줄어들면서 동시에 내가 아이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첫째는 더 이상 공주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특별한 날 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어 하는 건 여전해도 예전과 같진 않았다. 만화도 매일 로봇이 나오는 것만 보더니 꿈은 로봇박사가 되었고 댄스 수업이 아니라 만들기 수업을 더 좋아하며 슈퍼맨 같은 히어로를 좋아한다. 학교에 입학하고 셋째 주 정도까지는 공주나 요정이 나오는 책을 빌려오더니 이제는 무조건 히어로 책이다. 베트맨, 아이언맨, 원더우먼 등등. 내용이 꽤 어려워서 읽어주기 전에 미리 공부를 해야 한다.


아이가 씩씩한 어린이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학교 물통을 새로 사주는 날 당연히 공주 캐릭터가 그런진 걸 살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아이들이 주로 가지고 다니는 트랜스포머 물통을 신나게 들고 왔다. 사실 휴대폰 사건만큼 충격적이었다. 별거 아닌데 왜 그러나 싶겠지만 내가 예상한 게 전혀 맞지 않을 만큼 아이가 컸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좀 더 받아들이게 되었다. '첫째는 정말 많이 자랐다. 내가 일일이 알려주고 도와주고 해야 하는 아이가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가고 있으니 이제 먼저 나서지 말고 일단 지켜봐야겠다.'


어느 날밤 첫째는 학교에서 쓰는 아이패드가 뭔가가 잘 안 된다며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내서 해결해주려 하다 바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째에게 그건 네가 친구들과 대화하며 해결해 봐야 할 거 같아라고 답을 했고 첫째는 알겠다고 수긍했다. 잘한 거 같다.




그리고 오늘 또 한 번 내가 알고 있던 게 틀렸다는 걸 알았다. 첫째 아이의 학교는 쉬는 시간에 자유롭게 이것저것 만들어 볼 수 있도록 재활용품을 제공해서 첫째는 매일 뭔가를 만들어 온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독 크게 만들어서 궁금함이 생겼다.


"첫째야 쉬는 시간에 이렇게 크게 만들면 친구들이 신기해하겠다"


"내가 오토바이랑 헬멧을 만들었더니 아이들이랑 선생님이 구경 왔어. 너무 많이 몰려서 "one line!!"이라고 소리쳐서 줄 서게 한 다음에 차례로 타보게 해 줬어"


"근데 첫째야 이렇게 만들기를 좋아하는데 왜 집에서는 그림만 그렸어?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는 거 아니야?"


"집에는 만들기 할 재료가 없잖아!!"


정말 웃음이 파하하 하고 터져 나왔다. 그러고 나서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첫째가 지나가는 말로 자랑처럼 했던 게 불현듯 생각이 났다. 첫째가 뭔가를 만들었는데 단단하게 잘 만들어서 친구들이 자기 것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했던 말이었다. 아마 이게 친구들과 잘 지내는 큰 요인이 되어 준 것 같다. 만들기를 좋아해서 이것저것 만들고 그걸 친구들이 좋아해 준 게 아니었을까? 그동안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만들기를 좋아해서 로봇도 만들어 보고 싶은 거였다. 나는 정말 모르는 게 많다.




아이가 많이 자랐다는 게 느껴지면서 내 행동을 좀 더 조심하게 되었다. 약속한 건 무조건 지키려고 하고 화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다 금방 청소년이 될 거 같다. 시간 정말 금방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