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나무 씨앗이었다. 첫째가 친구와 놀다가 길에서 주워온 빨갛고 반짝반짝한 나무 씨앗. 평소 같았으면 집에 오는 길에 슬쩍 버렸을 테지만 씨앗이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심었다. 막상 심고나니 싹이 정말 나올까 싶어서 몇 날 며칠을 들여다보며 기다리게 됐다. 그러다 내가 어떻게 나무 씨앗을 키우겠어라는 마음이 들 때쯤 거짓말처럼 뿅 하고 싹이 올라와 있었다. 반갑고 또 반가웠다. 그렇게 나는 식집사의 길로 들어섰다.
나무는 무럭무럭 자랐다. 하루에 한 가지씩 올라오는 게 정말 신기하고 열심히 크는 거 같아 예뻤다. 새순의 여리여리한 연둣빛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아침이고 저녁이고 여유가 있을 때면 멍하니 쳐다보고 싶을 정도였다. 식집사라는 말은 정말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나무의 집사가 된 것처럼 물이 부족하진 않은지 햇볕이 더 잘 드는 자리로 옮겨야 하는 건 아닌지 등등을 고민하며 애지중지 키우게 된다.
뭐든지 하나를 성공하게 되면 그다음도 도전해 보고 싶은 욕망이 들기 마련이라 나도 뭔가 더 키워보고 싶어졌다. 나무 씨앗도 자랐는데 뭔들 못 키우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다 봉숭아 물들이기와 봉선화 꽃 심기를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씨앗부터 기르기는 너무 오래 걸릴 거 같았다. 아이들은 지루한걸 못 참으니까 자라는걸 빨리 볼 수 있게 꽃모종 트레이를 사서 모종을 길렀다. 준비한 꽃은 봉선화, 채송화, 나팔꽃.
봉선화 심기 날을 정하고 첫째 아이 친구 두 명을 초대했다. 내가 기대했던 건 까르르 웃으며 여유롭게 화분에 모종을 심는 거였는데 완전히 반대였다. 여유롭기는커녕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은 꽃 심기에 완전히 집중해서는 다른 말은 한마디도 없이 도와달라는 말 뿐이었다. 덕분에 준비한 꽃을 15분 만에 다 심고 봉숭아 물들이기를 했다. 요즘엔 옛날과 달리 봉숭아 물들이기 가루를 팔아서 쉽게 할 수 있다. 가만히 있기 힘들었을 텐데 오래 기다릴수록 예쁜 색이 나온다는 말에 얌전히 기다리던 아이들이 정말 귀여웠다. 예쁜 걸 좋아하는 건 다 똑같다.
이날 심은 꽃들은 정말 정말 잘 자랐다. 너무 정신없이 해서 죽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괜한 생각이었다. 세 가족의 집 베란다 한 켠에는 지금 예쁜 꽃들이 알록달록 피어있다. 특히 우리 집 베란다는 햇볕이 잘 들어서 그런가 더 크게 자랐다. 이것 말고도 학교에서 받아온 완두콩 씨앗은 열매를 맺어서 수확도 했고 나무도 잘 자라고 있으며 이름 모를 열대과일을 먹고 심은 씨앗도 싹이 나더니 귀엽게 자란다. 나무 하나만 키울 때도 시도 때도 없이 가서 지켜봤는데 꽃이 피고는 더 자주 베란다로 나가고 있다.
처음엔 관심 없어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서로 물을 주겠다며 난리다. 참 귀엽고 고맙지만 혹여나 물을 너무 많이 줄까 봐 내가 부탁할 때 빼고는 절대 주지 못하게 한다. 아이 둘을 키우는 것도 힘든데 뭘 더 키우나 싶어서 집에 있는 화분에 먼지만 쌓여가게 하던 나였는데 이렇게 달라졌다. 이제는 꽤 많은 씨앗을 심고 자라게 했는데도 싹이 나서 열심히 커가는 걸 지켜보는 게 좋고 꽃이 피면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기 바쁘다.
나는 완전한 식집사다.
지금 우리집 베란다에는 상추가 자라고 있다. 조만간 봉선화 데이의 친구들을 모아 상추 따기 날을 해야 할 거 같다. 이 날도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나의 나무는 이름이 뭔지 모르겠다. 아무도 이름을 모른다. 넌 어떤 나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