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퇴사해버렸습니다

불안과 평온 사이 어딘가의 선택

by 또날

사직서를 냈다. 나이는 서른이 넘었고 이직할 곳은 없다. 분명 큰 일 났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맘이 너무 편했다. 하늘하늘해질 정도로 헐어버린 주제에 너무 많은 답답함을 품어서 있는 힘껏 빵빵해져버던 내 마음이 푸시시하고 힘을 풀었다. 오랜만에 느껴서 새삼스러운 평온이었다.


꽤 오래 퇴사를 고민했다. 인생 플랜 B를 계획하며 남들의 퇴사에 대한 책과 영상들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라는 책을 읽고 나서는 퇴사가 더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말 내 열정을 더 불태울 무엇이 있을 때쯤에 동력을 얻기 위해 그 때까지는 때를 기다려야되나 싶었다. 그럼에도 퇴사를 한 이유는 내가 매일매일 소진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 한 구석에 단단히 박혀있는, '이 회사는 평생 다닐 게 아닌데...어차피 언제해도 할 퇴사인데'라는 생각을 뿌리 뽑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질렀다. 언제해도 할 거라면 나는 오늘이 가장 어리고, 오늘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오늘 가장 하고 싶은 게 많으니까. 더 빛이 바래기 전 내가 나 다울 수 있을 때 기회를 줘보고 싶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퇴사깨나 되는 건 나름 비장의 카드인데 그 각오로 다닌다면 일명 '꿀빨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로또가 당첨되지도 우리 아빠가 회사 사장도 아니지만 정해진 끝이 있다면 '어쩌라구요' 마인드를 장착해볼 수 도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도 해봤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내 자신을 너무 미워하게 될 것 같았다. 그 동안 누가 뭐라하든 나는 내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갈아 넣은 시간들이 썩 뿌듯해서 과거의 나에게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빠져도 이 조직은 아무 일 없이 그대로 돌아간다는 게 허무하고 씁쓸했다.


퇴사하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갈 생각을 하면 너무 설레면서도...사실은 무섭다. 이십대 후반에도 취업이 늦었다며 종종거리던 내가 나이 서른이 넘어 덜컥 백수가 되었으니 안 무서우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후련하다. 그럼 된 게 아닐까? 퇴사는 처음이라 서투르지만, 어떻게든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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