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바꿔야 할 생각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거창한 걸 좋아하고, 그렇지 않은 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잘’ 될 거 같다는 확신이 없으면 지레 포기하곤 했다.
그래서 대단한 게 아니면 굳이 노력해야 되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았다. 이를테면 서울대를 가기 위해 노력하는 건 기꺼이 할 수 있었지만 다른 대학 따위를 가기 위해서 노력할 생각은 없었다. 고3 때 서울대 외에도 5개의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떨면서 면접을 보고 붙을 때마다 기뻐했지만, 사실 마음 속 깊은 곳에 그건 6개 동시합격이라는 그랜드슬램 훈장을 위해서였을 뿐 서울대 외 다른 곳을 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서울대 불합격을 통보 받은 날 인생이 무너진 느낌이었다. 그간의 노력이 모두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그깟 곳이라고 느껴지는, 내가 붙은 대학 따위를 가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미만 모든 대학은 고졸과 다름 없으니 입학을 포기하겠다’고 통보하자 살면서 두 번째로 부모님의 거센 반대를 마주했다. 첫 번째 반대를 마주했을 때는 고1때였다. 수학만 빼면 전교석차로 손에 꼽는 첫 성적표를 받고, 유급 후 1년 간 수학을 보완해서 재입학하겠다고 했었다. 그 때 내 맘대로 했으면 보험이랍시고 애먼 학교들 안 쓰고 서울대 딱 하나만 쓰는 지조 있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망한 선택의 연장선은 역시 망한 결과구나라고 생각했다. 괜스레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당장 또 공부를 하기는 싫었기 때문에 부모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입학을 했다. 좀 놀다가 재수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접한 술은 갸꿀맛이었고 ‘진리는 나의 빛’보다 ‘질리는 너의 뻘짓’에 가까웠던 서울대생들과의 소개팅 경험은 그 집단에 꼭 속하고 싶었던 의지를 희석시켰다. ‘서울대도 별 거 없네. 역시 아이비리그 정도는 갔어야 되나?’라는 여우와 신포도식 사고방식을 시전하고 재수를 접었다.
딱히 자퇴할 용기도 없었던 나는, 교외활동과 연애만 죽어라하며 학교는 그냥 졸업에만 의의를 뒀다. 대학 생활 내내, 서울대가 아닌 내 대학이 “용 써봤자 이 정도”라는 딱지처럼 느껴져서 부끄러웠다. 누가 학교를 물으면 그냥 신촌 쪽이라고 얼버무렸고, 기숙사와 캠퍼스 밖에서는 과잠을 벗고 학교 로고가 안 보이게 뒤집어서 들었다. 학교부심을 부리는 애들을 부리며 꼴불견이라고 속으로 비웃었고, 퍽하면 학교를 안 나간 결과 이딴 집단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우수하지 못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웃긴 얘기다. 그 대학조차, 핑계만 대고 개선할 생각은 없는 나에게 넘치게 과분한 집단이었다는 걸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 고등학교 성적표를 떼어보니 그리 특출나지도 않았다. 왜 스스로를 무조건 서울대감이라고 생각했나 갸우뚱할 정도로. 나의 유리 멘탈은 재수 기간 스트레스를 단단하지 못했고, 부모님의 강요로 엉겁결에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면 평생 서울대에 갔었을 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젖은 고졸로 살았을 것이다. 내가 소개팅으로 본 극히 일부의 서울대생들은 서울대를 대표하는 표본도 아니었고, 지극히 평범한 내가 서울대에 꼭 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다고 붙었을 거란 보장도 없으니 혼자 갈 지 말 지를 잰 것도 우습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부끄러운 내 경험을 다시 되돌아보는 이유는 내가 그동안 자꾸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모든 패착들이 이 경험에 응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목표를 잡아야한다. 최고가 아니라도 지금 나한테 최선인 목표도 유의미하다. 애초에 내 주제를 알고 SKY로 목표를 잡았으면 얼마나 행복했겠어.
세상은 전부와 전무로 나뉘지 않는다. 완벽하진 않다고 포기하다보면 결국엔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게 없다. 재수를 해서 서울대에 가면 그 다음엔 과가 맘에 안 들고, 수석이 아닌 게 맘에 안 들었을 걸?
노력을 한다고 반드시 결과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나보다 뛰어나고 더 노력했는데도 좋지 않은 결과를 받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나만은 당연히 노력한 만큼 얻어야한다는 건 오만이자 망상이다.
포기하지 않고 하다 보면 되는 것도 있다. 대학 입시가 망했다고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바꿔갈 방법을 찾아나갔다면 학점교류나 편입 등 다른 대안들도 충분히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은 당연하지 않다 함부로 버리지 않아야하다. 즐거운 대학생활을 누리고 학교 커뮤니티를 활용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되었을 테니.
당장의 결과가 나중에 내 인생 전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지는 미지의 영역이다. 뛰어났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대학 레벨이 바뀐 친구들 중에는, 워낙 낭중지추라 주목을 받는 바람에 인생이 더 잘 풀린 경우도 있었다. 인생 1회차인 나 따위가 뭐라고 개별 사건들이 인생에서 성공인지 실패인지 판단하나.
내가 가졌던 말도 안 되는 생각 때문에, 너무 오랜 시간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는 이런 생각들을 바꿔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