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지만 자랑하고 싶은 성과인 이유
한 달 간 새벽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아니, 참여하려 시도했다. 네 번의 모임 중 제 시간 참여 1회, 미참여 1회, 심각한 지각 2회.
매주 일요일 새벽 6시에 zoom에서 만나 각자 글을 쓰고 서로 피드백을 나누는 것. 백수가 되기 전 야근과 주말근무에 시달리는 직장인 좀비로서는 시도해볼 수 없는 호사였다. 그리고 기 빨리게 외출하지 않아도 되고 미리 글을 써야되는 부담도 없다는 게 마음에 쏙 들었다. 글을 놓은 지 오래됐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자꾸 포기해 온 나에게, 누군가와 함께 글을 쓰며 아침을 여는 이 모임은 마지막 동아줄 같은 존재였다. 구정까지 지나보내면 정말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거 같아 이 기회를 꼭 잡고 싶었다. (그 전에 2주 이미 신청해놓고 실패함)
첫 주(2.22)에는 모임에 참여하지 못할까봐 전날부터 동동거렸다. 아침 6시에 일어날 자신이 없어 전날 밤 10시부터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가 밤을 꼴딱 샜다. 그렇게 간절하게 모임에 참여했다보니 잔뜩 설렜고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졌다. 그래서 대번에 모임장님께 또 어떤 모임들이 더 있는지 문의드리고 다시 거창한 계획들을 세웠다. 두 번째 주부터 어떤 글을 써야 조각 모음들이 하나의 큰 서사를 이룰 수 있을까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이 글을 모아서 40대까지 100편의 다듬어진 글을 쓰고, 10년 주기로 Best 10을 뽑아서 책으로 만들고, 말년엔 젊은 날들의 내 기억을 복기하며 행복하게 추억여행하는 뜨개질 모자가 잘 어울리는 귀여운 할머니가 돼야겠다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첫 주에 쓴 글: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주(3.1) 모임 당일, 일어나보니 6시 10분이었다. 하필 지난 주에 계획만 세우고 안 하는 버릇을 꼭 고쳐보겠다는 내용의 글을 쓴 터라 대단히 민망했다. 고민을 하는 동안 다시 또 시간이 흘러갔고 벌써 5를 가르키고 있는 분침을 보며 이제 접속해봤자 제대로 글을 쓰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게 중요한 거니까 이렇게 불완전하게 쓸 바에는 다른 한 날을 정해서 더 정돈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데도 괜히 찔려서, 날짜를 착각해서 못 들어갔다며 그래도 글은 썼다고 해명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이미 20분 넘게 뚫어지게 보고 있었던, 모임장님의 zoom link 톡도 마치 아직 못 읽은 것처럼 몇 일을 안읽씹하고 있었다. 바빠서 못 읽었다해야되나 톡이 너무 많아서 묻혔다해야되나 고민하는 소모적인 일을 반복하다 일주일이 흘러가버렸고 결국 그 주에 대한 글은 쓰지 못했다. 이 나태함에 대한 유일한 면죄부는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너무 우스워지지 않게 다음 주에는 꼭, 꼭, 꼭 30분 더 먼저 일어나서 미리 준비해 모임에 참여하고 더 또렷한 정신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드디어 셋째 주(3.8). 30분 먼저는 커녕 30분 늦게 일어나서 엄청나게 고민이 됐다. 그런데 오늘조차 참여하지 않으면 다음 주에는 더 참여하기 싫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미 40분이 지났지만 민망함을 무릅쓰고 들어갔고 변명 대신 그냥 늦잠을 잤다고 했다. 나의 불안함과는 달리 아무도 나를 형편없다고 비웃지 않았다. 심지어는 글도 만족스럽게 완성했다. 이 날 쓴 글감은 그 동안 하고 싶은 말이 많다보니 머리가 둘 달린 샴쌍둥이처럼 기형적인 글이었는데, 시간 부족이 의외의 묘안이 되어주었다. 애초에 글을 완성하기엔 짧은 시간이라 생각하니 구조화된 글을 써야된다는 강박이 적었고, 시간 내 게재하기 위해 쓴 것들 중 그나마 나은 파트만 건져냈더니 간결한 글이 되었다. 그래서 생각 외로 너무 괜찮았던 일요일 아침을 보내고, 푹 자서인지 이후 일정도 더 가뿐한 컨디션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셋째 주의 글: 쓰레기통에서 건져낸 구겨진 그림이 알려준 것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주(3.15). 일찍 자려고 생각하면 왜 자꾸 새벽에 일이 잘 되는 지.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 사이, 뭐에 씌인 듯이 번역을 하다가 보니 어느새 새벽 두 시 반. 황급히 잠자리에 들며 15개의 알람을 맞췄지만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늦게 참여해도 된다는 모임장님의 톡에 위안을 받으며 7시라는 지각 신기록을 세웠다. 예전의 나라면, 이렇게 엉망인 내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아마 새로운 달의 시작을 기다리거나 다른 모임을 찾아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해보는 건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결점투성이 인간인 내가,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부족하다고 자꾸 포기하다보면 결국에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게 하나도 없을 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주는, 새벽 글쓰기 모임의 참여 점수는 D+다. 낙제가 아닌 이유는 그래도 과정을 통해 이뤄낸 나름의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글 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알게 되었다. 모아 놓은 글감들을 열어보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나의 생각들을 톺아보는 과정에서 꿈을 찾게 되었다! 낭만이 무르익어서 그걸 실현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Thiriving Thirties 프로젝트의 물꼬.
매일 하진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느슨하게 맥을 이어가는 루틴을 만들었다. 가능한 매일 간 영양제를 챙겨먹고 긍정명상을 했고, 한 달 동안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다섯 개 씩 이력서를 냈고, 너무 하기 싫은 날은 패스하되 나머지 날엔 뉴스를 읽고 다이어리를 썼다.
언젠가해야지라고 영원히 미루던 브런치에 글 올리기, 미용실 가기, 감사했던 분들께 연락을 드리기, 계륵 같은 관계 정리하기를 했다.
요요가 와서 이미 망한 몸뚱아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폭식을 덜 자주 한 결과 아주 미세하게 감량을 하고 있다.
새로운 걸 시도하며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았고, 그걸 원동력으로 또 내가 원하는 삶의 조각들을 또 하나씩 추가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2번씩 TED 강연을 듣고, 일주일에 4번씩 산책을 하고, 뉴스 무예독 영상을 올리는 스터디에 가입해 루틴들을 스태킹하고 있다.
이런 소소하지만 확실한 결과물들 덕분에, D+일 지언정 나에겐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성과다. 한편, 나의 다음 인생 학기에서 A+을 노리기 위한 셀프 피드백은 이렇다.
“X 정도의 것은 반드시 X 수준으로 해내야 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일주일에 한 번 새벽 6시에 일어나 글을 쓴다’는 단순한 것의 1/4조차 못해낸 내 자신을 마주하는 건 쪽팔린 과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이것조차 못하는 내 자신이 왜 다른 더 거창한 것들을 꼭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싶자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야 너 뭐 안 돼”라는 현실 직면은 한 편으론 “안 되도 그럴 수 있지. 원래 안 되는 거였을 수도?”라는 자기합리화의 여지와 함께 나 자신을 덜 미워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망했다”를 재정의하자. 내 새로운 모토는“I may have a bad moment, but I never have a bad day.”다. 해당 건이 종결되지 않고 진행형인 이상 더 나아지게 만들어서 결말을 덜 나쁘게 만들면 된다. 그래서 애써 좋은 면을 찾아보려 노력한다. 늦잠을 자서 모임엔 늦었다면 대신 푹 쉬었으니 좀 더 활기차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에, 폭식을 해서 살이 쪘다면 대신 맛있는 걸 먹어서 행복했다는 것에 집중하자 모든 하루가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얼렁뚱땅 하다보면 언젠가 되겠지!”라는 걸 믿자. 내가 완전히 망했어라고 내 자신을 매도하지 않는 이상 나는 적극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잖아라는 마인드로 임하는 순간 아직 할 수 있는 것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본능적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했다. 시간에 쫓기며 호다닥 써 낸 글은 투박했지만, 워낙 적은 인풋이 들어갔기에 가심비가 최고였다. 30년차 프로-미룸러로서 ‘번갯불에 콩 볶아먹기’에 전문가가 된 내 자신을 믿기로 했다.
앞으로는 단발성의 작은 성공들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하며 "근거 있는 자신감"을 쌓아갈 초석으로 활용해야겠다. 그리고 욕심 내지 않고 차근차근 조금씩 더 큰 도전들을 해나가야겠다. 커다래보이지만 금방 무너질 모래성보다는 천천히 차곡차곡 쌓아올린 작은 벽돌집이 더 좋으니.
어쩌면 긁지 않은 복권보다 긁었는데 꽝인 복권이 나을 수도 있다. 왜냐면 아무도 이 세상에서 딱 한 장의 복권만 사라고 정해놓지 않았거든. 꽝이면 돈은 아깝겠지만 별 수 없으니 셀프 희망고문할 시간에 꽝인지 아닌지 확실히 확인하고, 아닌 건 얼른 갖다버리고 새 복권을 살 수 있게 돈 벌 것. 일단 꼭 긁어야 되는 이유: 긁으면 꽝일 것 같다는 찜찜한 예감에 희망 들고 있겠다고 뭉게다 유효 수령 기간 놓친 어느 날 문득 긁었는데, 정말 만에 하나 내가 예비 복권 당첨자면 억울해 죽을 테니까.
(중요) 유념해야 할 다음 화두: 스스로를 지나치게 탓하기 안되 자기 합리화로 빠지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