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의 음악

by 위단비

음악 없이 무언가를 써 내려가는 것이 참 오랜만이다. 혼자 지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음악을 귀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일할 때, 밥을 먹을 때, 그냥 있을 때, 잠을 잘 때까지 음악을 늘 틀어놓고 지냈다. 그것은 일종의 해방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루 종일 들을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해방감. 그와 함께 지낼 때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그와 나는 음악 취향이 무척 달랐다. 그와 함께 지낼 때 그가 틀어놓는 음악은 가끔 내게 소음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에게 음악을 그만 틀어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우리는 뭐든 말하는 사이였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했다. 서로를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마지막 날 내게 투정을 부리며 한 말도 그것이었다. ‘네가 제일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렇지.’. 제일 소중하기에 서로에게만 보일 수 있는 모습들을 참 많이도 쌓아갔다. 서로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 그 믿음이 우리에겐 있었다.


처음부터 내가 그를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거짓말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나는 원래 사람을 좀 못 믿는다. 정확하게는, 사람의 마음을 믿지 못한다. 심지어 나 자신의 마음조차도. 지금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도 이 글에 담겨있는 나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진심을 다 말해. 종이에 진심을 정리해서 다 말해.’ 카톡으로 주고받은 그의 마지막 말. 그가 떠나고 나서 나는 내가 믿든 믿지 않든 나의 진심을 적어 내려가기로 했다. 그가 그러기를 바랄 거라고 믿고 있다. 내가 믿고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글과 음악은 내게 무엇이었고 무엇일까.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나 자신조차 믿지 못한다는 것은 지독하게 공허하다. 그 공허감을 음악으로 채우고 또 글로 뱉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공허감을 뱉어내는 일. 뱉어낸 공허감을 목격하는 일. 내가 두려워했던 일이지만 그의 마지막 말 때문에라도 계속해서 나는 뱉어내고 또 목격한다.


공허를 채우는 음악 없이 뱉어내기만 하다 보니 밑바닥이 보인다. 그 밑바닥에는 의자에 앉은 내 두 다리가 보인다. 두 발은 바닥에 닿아 있지 않다. 아니, 내가 이곳에 없는 것만 같다. 공허에 관해 쓰인 아래의 시에서처럼.




공허의 냄새


빈 의자엔 앉은 이가 없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는 뾰족한 바위 위에 놓여 있다. 끼익, 끼익 바람에 따라 의자는 기웃거린다. 의자는 비어 있지 않으나 다리는 설기게 엉겨 있고 갈라진 틈새는 촘촘하다. 오래된 서재의 냄새가 이곳에서 풍겨나온다. 아마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작은 방. 태어남은 죽어감과 같다. 죽어감의 끝에는 나무가 있다. 나무는 서재의 아래 누워 있다. 누워버린 나무에서 곰팡내가 난다. 죽어버렸을 때부터 풍겼을 냄새. 냄새는 절벽을 따라 내려온다. 기어이 뿌리에 닿아서 다시 절벽으로 나무로 서재로 작은 방으로 바위로 의자로




다시, 처음부터. 음악에 관해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고 싶다. 음악은 나를 다른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눈을 감으면 더욱 그렇다. 그는 죽기 얼마 전 자주 듣는 음악들을 한데 모아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와 함께 지낼 때 자주 듣던 음악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지막 날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밖에 없다. 마지막 날, 패티와 치즈가 4장씩 들은 어마어마한 햄버거를 먹은 그는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팔베개를 하라는 듯 팔을 쭉 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팔을 베고 누웠다. 그는 예전에 우리가 같이 듣던 노래를 틀었다. ‘옛날 같다-’. 나는 잠이 들었다.


향초의 향과 그의 묵직한 팔과 햇빛과 차가운 방바닥과, 그에 못 이긴 나의 나른한 잠은 그를 서운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는 내게 투정을 부렸고, 왜 내게만 투정을 부리냐 묻자 ‘네가 제일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렇지.’라고 답한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까지 그를 서운하게 했다. 내 옆에서 늘 심심해하던 그.


그는 아마도 늘 공허했던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 같아? 나는 누굴까?’ 그가 입버릇처럼 묻던 질문은 마지막 날에도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그가 환생할 것만 같다. 그 질문의 답이 궁금해서라도 다시 태어날 것만 같다.


나는 이번 생이 내 마지막 생임을 안다. 그냥 몇 년 전부터 그렇게 알고 있었다. 바라는 게 있다면, 내가 그곳에 갈 때까지 그가 기다려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나는 그를 배웅하고, 다시 그를 맞이할 것이다.




너는 어딘가에 건물만큼 큰 공을 만들고 싶다고 했어. 쇳덩어리로 아주아주 큰 공을 만들어서 세워두고 싶다고. 너는 그림을 그릴 때도 커다란 전지 여러 장을 붙여서 아주 큰 종이를 만들어서 그렸지. 그걸 다 채워내는 네가 참 신기했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자, 너는 이렇게 말했어. ‘채우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돼.’ 너의 닉네임은 ‘filler’였지.


눈을 감아 보았다. 네가 만든 커다란 공이 보였다. 그 공에는 수많은 실금이 그어져 있었다. 아마도, 쇠를 가공한 흔적일 테다. 수천 번, 수만 번의 가공 끝에 공은 만들어졌다. 그 공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나는 쓸모없는 그 일을 해낸 너를 이제는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


네가 자랑스럽다. 순수하게 태어나서 순수함을 잃지 않은 채로 떠난 네가. 그러나 떠나고 나서도 네 안에 공허는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공허했기에 뭐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너는. 네가 남긴 수백 장의 그림이 너의 공허를 증명한다.


쓸모없는 것은 순수하다. 순수한 존재의 의의가 있다. 너는 너의 쓸모를 무척이나 찾고 싶어 했다. ‘나 무슨 일하는 사람 같아?’ 네가 자주 하는 질문 3번이었다. 나의 공허에 대해서는 많은 글을 썼지만, 이렇게 너의 공허에 관해 쓴 적은 별로 없다. 나는 너의 공허를 들여다보지 못했다. 순수하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지만. 아니, 어렴풋이 아니라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지만.


강렬하게 순수한 너의 존재 앞에서 나는 고마움을 느낀다. 말로 해도 되는 말이다. 광희야, 고마워. 순수한 존재로 내 옆에 있어줘서, 기억해줘서, 내가 순수를 믿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말에는 진심이 담기지 않는다. 나의 진심은 이곳이 아니라, 옛날 음악을 듣던 마지막 날의 그곳에 있다.


요즘에는 하나의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는 작업을 시작했어, 광희야. ‘음악 쓰기’라는 작업인데, 생각보다 글이 잘 안 나와. 음악이 어떤 강렬한 감정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내 글에 그 감정이 담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음악은 그저 블랙홀에 던져지는 음표였나 봐. 블랙홀로 사라진 음표들이 내 손끝에서 나와줄 리가 없지. 그래서 나는 쓸모없는 글들을 써 내려갈 수밖에 없나 봐. 감정도, 생각도 담기지 않은 버려진 종잇장 위의 낙서.


그러나 이 글은 너를 닮아있지 않다. 너는 아마도 날 따끔하게 혼낼 것이다. 채우려는 마음 없이 그저 흘려보내기만 한다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글의 꽁무니를 뒤쫓아 갈 뿐이라고. 너의 공허는 공허를 채우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러니 너의 공허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글은 비어 있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 본다. 이 의자에는 시와는 다르게 등받이가 있다. 너의 의자는 등받이가 없었을 테다. 사람이 사람의 등받이가 되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나, 나는 그러기를 자처했다. 너는 등이 많이 휘어있었다. 혼자 버티기 버거웠다는 듯이.




버티기 버거운 것은 당신뿐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내게는 등받이가 있었어요. 발가벗겨진 당신의 모습이 보여요. 살이 여리고 차가웠어요. 나는 차가운 당신의 손톱 끝에 매달렸어요. 왜 나는 매달린 나에 대한 글을 이리도 많이 쓰는 걸까요. 온몸에 끈적한 기억들을 뒤집어쓴 채로 끈질기게 매달려 있는 나에 대한 글을.


내 몸에서는 당신에 대한 기억이 뚝뚝 흘러내려요. 나의 빈자리에는 이제 당신이 들어앉아 있어요.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해봐야…….


여자는 말끝을 흐렸다. 흐려진 말끝에는 손톱이 나 있었다. 손톱을 벽에 긁어 보았다. 다섯 줄의 선명한 오선지가 그려졌다. 오선지에는 음표가 박혔다. 음표가 그리는 음악은 오케스트라와 같이 거창한 음악은 아니었다. 간단한 멜로디의 음악은 단조였다. 현악기가 들려왔다. 비올라 소리였다. 소리는 적당한 볼륨으로 여자의 귀에 들렸다. 여자는 제법 그 음악이 마음에 들었다.


떠다니는 음표 하나를 손으로 잡아보았다. 아주 세게. 음표는 손 안에서 꿈틀거리다 이내 축 늘어졌다. 푹 익은 콩나물마냥 흐느적거리는 음표를 쥔 여자의 손에서 음표는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검은 잉크가 말캉댔다. 말캉대다가 흘러내려 버리는 잉크를 바라보는 여자의 표정은 상상할 수 있는 딱 그 표정이었다. 소리의 한 조각이 비어버렸다. 비어버린 소리를 다시 채울 수는 없었다.


되돌려 줘. 스스로 쥐어 터트린 음표였건만, 여자는 어리석게도 ‘후회하고 있었다.’ 순간의 즐거움은 순간일 뿐이다. 그러나 비어버린 조각은 영원히 다시 채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채울 수 없는 것을 채워내야 한다고, 적어도 채우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그렇게 말한다. 후회하지 말라고, 가장 소중한 것은 나,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너라고. 또 여자를 따끔하게 혼낼 것이다.


따끔한 일침에, 음악은 클라이맥스를 향해가고 있다. 음표는 하나, 둘 되살아났다. 현악기의 소리와 타악기의 소리가 겹쳐진다. 겹쳐진 소리는 비어 있는 딱 그 자리만큼 절뚝이며 위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올라가고 올라가다 결국 도달한 곳은 그와 여자의 곁이었다. 여자의 손에 다시, 음표가 새겨졌다. 새겨진 음표는 다시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는 그 순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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