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종이가 무섭다. 쥐어 짜내듯, 혹은 텅 빈 공간을 허우적대듯 움직이는 나의 손끝. 너는 마음만 먹으면 빈 공간을 빼곡하게 너의 글 혹은 그림으로 가득 채우곤 했다. 나는 그런 네가 몹시도 부러웠다. 일말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는 너의 손끝.
그러나 삶 속에서의 너는 그렇지 못했다. 망설임이 많았고 의구심이 많았다. 어쩌면 너는 하얀 종이 위에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살아가는 세상은 만져지고 느껴지는 물질의 세계가 아니라 떠오르고 그려지는 비 물질의 세계였는지도.
나는 스스로 비 물질에 가까운 사람이라 여기지만, 너에 비하면 나는 한없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사람이다. 너는 어떻게 육체에 갇혀 이 지구에 태어나게 된 걸까. 그러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삶에 대해 강한 욕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너는 심장 소리 같은 비트를 좋아했다. 너의 그림에서도 비트가 느껴진다. 두근두근 뛰는 너의 심장은 네 몸에 갇혀 있지 않고 그대로 종이로 배어 나왔다. 배어 나온 소리는 하얀 종이를 까맣게 물들이고 또 물들였다.
내 심장은 여전히 이곳, 나의 몸에 갇혀 있다. 갇힌 나의 심장은 꺼내 달라고 울부짖고 있지만 나는 아직 방법을 모른다. 심장의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전혀 감이 오지 않기 때문에. 종이는 여전히 비어있다.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다.
어쩌면 너 또한 네 심장의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몰랐던 걸지도 모르겠다. 있는 것은 오직 종이를 채우겠다는 마음. 네 닉네임에는 filler가 붙어 있었다. 채우고자 하는 너의 마음이 그대로 담긴 닉네임이었다.
어쩌면 네가 채우고 싶었던 건 너의 공허. 오늘은 노트북 앞에 앉아서 나의 공허를 발견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채 무언가를 써 내려간다. 너를 닮아가는 것이 느껴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이렇게 뭐든 써 내려가는 것을 보면.
종이는 얇다. 얇은 종이는 너와 내 앞에서 펄럭이고 있다. 너의 마카는 진한 선을 그리며 미끄러져 간다. 나의 타자 소리는 미끄러지는 마카의 선 위에 점을 찍는다. 찍힌 점마다 종이는 작은 점을 그리며 찢어진다. 찌익, 찌익, 찢어지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카는 계속해서 미끄러져 간다. 곡선과 직선을 그리며 미끄러져 가는 마카의 꼬리는 길지 않다. 나는 길지 않은 그 꼬리를 부여잡으려 애를 쓴다. 키보드의 커버가 찢어질 것만 같다. 길어진 손톱은 너와 나의 종이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상처 사이로 잉크가 방울지며 떨어진다. 이게 다 종이가 너무 얇은 탓이다. 종이가 얇은 탓에 온몸이 잉크 범벅이 되었다. 잉크를 뒤집어쓴 너와 나는 서로를 보고 웃는다. 뭐든 좋아, 너와 함께라면 정말 뭐든지 좋아.
같은 잉크를 뒤집어쓴 우리는 손을 잡고 어디든 뛰어다녔다. 그리고 어디에든 숨어 있었다. 숨고, 뛰고, 나다니고, 호흡을 고르고, 소리를 지르고, 외치고, 말하고, 떠들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10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방안에는 우리의 몸짓이 가득했다. 그 방의 벽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처음으로 네 앞에서 우울을 보여준 날, 너는 ‘웃어봐! 웃어!’ 하면서 온 벽에 스마일 표시를 그려대며 뛰어다녔다. 그런 너를 어안이 벙벙한 채 바라보는 나를 보고 너는 히죽 웃어댔다. 네 방 벽에는 그렇게 낙서가 또 늘어났다. 볼펜으로, 크레파스로, 마카로, 물감으로 가득 찼던 너의 벽. 네 벽에 내가 그림을 그린 일도 있었다. 빨간 하이힐을 신은 채로 담배를 피우는 빨간 머리 여자 그림이었다. 너는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내게 잘했다고 해줬다.
우리는 잘해왔다. 그림을 잘 그린 건 아니었지만, 온몸이 잉크 투성이었지만, 그래도 잘해왔다. 얇은 종이 한 장을 가지고 참 잘도 그려왔다. 종이에 상처가 날지언정 두 갈래로 찢어지진 않았으니까. 마카의 짧은 꼬리를 나는 놓지 않았다. 그건 네가 펜을 놓는 그 순간까지도 그랬다. 아니 펜을 놓은 지금도, 나는 네 꼬리를 놓지 않고 있다. 살면서 가장 잘한 것은, 너와 함께 빈 종이 앞에 앉은 거다. 그리고 네게 가장 고마운 것은, 나의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준 것이다. 네 덕분에 그리고 있고, 살아가고 있는 나의 손. 나는 열심히 너를 따라갔다. 그리고 너를 이끌었다. 고마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따라가고 이끌어간 그 시간. 종이를 가득 채운 건 우리 둘 다였다.
아직 종이가 두 갈래로 찢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니, 느껴진다. 종이는 반으로 접힌 것에 가깝다. 너와 나는 이제야 비로소 만났다. 접힌 채로 만난 면은 온전히 나의 몸 안으로 배어 들어왔다. 나의 심장은 여기, 내 몸 안에서 뛰고 있다. 너의 심장이 뛰던 종이는 이제 나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나의 심장과 너의 심장은 내 몸이자 동시에 우리의 종이 위에서 함께 뛰고 있다. 함께 뛰는 심장. 함께 하는 기억. 함께 그린 그림은 여기 내 몸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제 남아 있는 심장과 기억과 그림을 가지고 반쪽짜리 종이를 나 홀로 채울 일만 남았다. 반쪽이지만 종이의 두께는 조금 더 두꺼워졌다. 타자로 종이를 채우는 나의 그림은 분절되어 있다. 연속성과 형태를 가지는 너의 그림과는 다르게. 분절된 그림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삶.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억, 심장, 그림. 내 삶이 이런 것이라고 말해준 이는 없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너의 그림을 보듯, 나의 그림 또한 내 눈에 선명히 보이니까. 이 또한 오만이 아닐까, 생각하다가 그만 또다시 네가 떠올라버린 것이다. 오만을 타고난 너는 아무런 주저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 나 또한 그만큼 너를 더 닮아간 것일 게다.
연인이라기보단 가족 같았던 우리. 너와 나는 잉크를 나눈 사이다. 삶을 나눈 사이고, 숨을 나눈 사이며, 심장을 나눈 사이다. 하나의 커다란 종이 앞에 나란히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 우리가 떠오른다. 발을 까딱거리며 커다란 연필을 쥔 채 그림을 그리는 우리는 여섯 살이다. 내 머리를 때리면 나는 빼액 울었지. 눈물 방울이 종이에 번졌지. 너는 그런 나를 보고 웃었지. 너의 미소는 여섯 살의 그것이었지. 나는 그런 너를 보는 것이 좋았지. 일부러 울었던 적도 있지. 네가 몹시도 보고 싶다.
하얀 종이가 무섭던 나는 너의 꼬리를 또다시 붙들었다. 붙잡은 채 타자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나의 발자국이 오늘도 종이 위에 찍힌다. 너의 마카선과 나의 발자국은 커다란 곡선을 그린 채 여전히 이곳, 내 심장 가까이에 그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