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by 위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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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우저의 검색어는 그대로다. 새로 검색하는 것들은 전부 검색하는 족족 삭제한다. 그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멈춰진 시간을 자꾸 들여다보고 고통을 곱씹으며 나는 이곳에 살아있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마지막 날 함께 햄버거를 시켜 먹으며 딸려왔던 콜라 한 캔이 여전히 그대로 있다. 그날의 쓰레기를 버리는 것마저 힘들었건만, 이제 이 정도의 흔적만 남아 있다.


내 꿈속에서 너는 꼭 얼마간의 말미를 준다. 하루, 혹은 일주일의 말미. 그 시간 동안은 꼭 좋은 햇살이 우리를 비춘다.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집에서 우리는 편안하고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내 내 머릿속에는 네가 떠날 날이 떠나지 않지만 그게 그리 어색하거나 초조하게 하지는 않는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그것이 내게 위로라면 위로. 나의 시간이 흘러가고 흘러가다 보면 언젠가는 시간이 없는 그곳에 도달하게 될 거다. 혹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그곳에. 너는 시간이 아깝다는 말을 자주 했지. 마지막 날에도 그랬고. 더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곳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부검 전에는 너의 얼굴을 확인해야 했다. 3일의 시간 동안 너의 눈에는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네 얼굴을 알아보려고 또렷이 너를 쳐다봤다. 어쩐 일인지 네 얼굴이 네 얼굴 같으면서도 네 얼굴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또렷이 바라보려 애를 썼다. 손잡아도 돼요? 안돼요. 입관식 때 시간을 드릴 거예요.


너와 함께 응급차에 올랐다. CCTV로 다 찍고 있으니까, 손잡으시거나 그러시면 안 돼요. 참기 힘들었지만, 꾹 참고 네게 노래를 불러줬다. 성시경의 ‘두 사람’. ‘때로는 이 길이 멀게만 보여도,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흘러도, 모든 일이 추억이 될 때까지, 우리 두 사람 서로의 쉴 곳이 되어 주리.’


너의, 우리의 사랑을 기억하는 일로 여태 버텨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보다 네가 더 그립다. 기억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너를 만지고 싶다. 부질없는 말들. 허공에 흩어질 먼지 같은 나의 손끝. 이 글 안에 내 마음이 담길지 의구심이 든다. 전혀 담기지 않을 것만 같아. 한참을 멈춰 서다 다시 쓴다. 나의 진심을 전부 다 종이에 쓰라는 너의 마지막 말.


내 마음속을 헤집어 널 향한 진심을 찾아낸다. 그때는 널 향한 마음이 차고 넘쳤는데, 지금은 시간 속으로 흘러내려가 버린 건지. 군화와 고무신 시절에 우리는 이 말을 참 많이 했다. 시간은 정직하게 흐른다는 말. 그때는 그 말이 위로가 되기도, 절망이 되기도 했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 내게 위로가 되고 절망이 되는 말.


시간이 주는 위로는 너를 흘려보낸다는 것. 시간이 주는 절망은 너를 흘려보낸다는 것. 말끝이 턱턱 막힌다. 막히는 순간마다 네가 걸린다. 걸린 너는 입지 않는 겨울옷 같아서 이 더위가 밉다. 더위 속에서 담배를 피울 때, 길을 걸어갈 때, 혹은 커피를 마실 때 네가 더 생각나서. 함께하던 시간이 더 끈적하게 내게 스며들어서.


어떤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나의 감정은 문단과 문단으로, 시간과 시간의 연속으로 풀어나가질 것이다. 끝이 있을까. 문단의 끝이, 시간의 끝이. 나는 끝을 바랄까, 끝을 바라지 않을까. 시간을 끊어내는 것은, 담배 한 개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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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담배를 문다. 카페에서 작업을 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그의 시선은 화면이 아니라 내내 키보드만 쳐다보고 있던 중이었을 것이다. 시간을 끊어내듯 일어나서 담배를 피우러 갔을 것이다. 다리를 꼬려다 만다. 그는 더 쓸 말이 없다.


자리로 돌아온 그는 다 마신 커피에 남은 얼음을 입에 한 알 털어 넣는다. 뒷목이 아파온다. 그는 무엇을 위해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것일까. 그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대부분 카톡, 페이스북을 하며 흘려보내는 시간이다. 때로는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그렇게.


그는 쓰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든. 그러나 손은 저절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저절로 걷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손끝으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는 문장이 만든 글이었다. 그때의 글은 턱턱 걸리는 것 없이 저절로 잘도 나왔었다.


이제 노트북을 접을 시간이에요. 그에 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비워내요. 이제 자유를 찾아 떠나가요. 마음의 한구석에 그를 놓아줘요. 그의 꼬부라진 엄지발톱을 붙잡고 하늘로 떠나가요. 하늘의 한구석엔 그를 닮은 구름이 떠 있어요. 그는 구름 안에 자주 가던 모텔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대요. 군대에 있을 때 말이에요. 행군을 하며, 하나, 둘, 하나, 둘, 이주에 한 번은 면회를 가고, 아주 가끔 외출, 외박, 시간은 정직하게, 지나치게 정직하게, 하나, 둘, 하나, 둘, 제자리에 서!


다시 멈춰 선 그의 손끝. 다시 끊어내는 시간. 연기가 내뿜어지는 동안,

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 본다.


동생은 네가 부럽대. 같이 카페에서 이야기하다가 한 번씩 그래. 아, 광희형 존나 부럽다. 시간의 끝은 누구에게나 정해져 있는데, 너의 끝이, 끝났다는 사실이 부럽대. 너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순식간이었을까, 서서히였을까. 어쩐지 나는 상상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손끝에서부터 저릿저릿하게 빠져나가는 너를.


아직 네 집에 가지 못했어. 혼자서 한 번은 가고 정리하고 싶은데. 가서 네가 쓰던 샴푸 겸 바디워시를 잔뜩 담아올 생각이야. 마지막 일주일 동안 우리가 모두 매일 만나던 때, 네게선 진하게 코튼 향이 났어. 향은 시간을 따라 흘러가. 네 향을 맡으면, 네가 다시 떠올라.


새벽 4시가 되면 이상하게도 너의 옷에선 짙은 향이 난다. 귀신이 이승에 머무는 시간이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

라지. 아마도 그 시간 동안 네가 머무르는 건지, 침대에 누운 내게 너의 향기가 와르르 덮쳐온다. 그래서 집에서는 잠을 잘 수가 없어. 네 향기를 맡고 싶어서, 맡고 싶지가 않아서.


분절된 그의 글이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이어진다는 게 다행이어서, 그는 다시 화면을 바라본다. 키보드를 바라보고 써 내려가던 글은 노트북을 타고 올라가 화면에 안착한다. 얼음은 다 먹어버렸다. 입안이 다시 따뜻해진다. 시간의 온기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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