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by 위단비


잊힌 꿈의 한 귀퉁이에는

늘 네가 나올 거다

매일 그렇게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너를 만날 거다


석 달이 지났다. 이미 잊힐 것들은 많이 잊혔다. 더는 너를 곱씹지 않는다. 이제 너를 보냈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 나오는 노래는 선우정아의 ‘그러려니’. 석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은 게 아닌가. 너를 이렇게 지난 시간의 뒤편으로 밀어 두기엔.


자고 일어나면 기억나지 않는 꿈처럼 네가 흐릿하다. 선명한 건 네가 존재했다는 사실, 지금도 네가 존재하고 있다는 조금은 억지스러운 믿음. 예전에 너와 나의 이야기로 쓴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제는 우리 쁘띠가 죽었다. 쁘띠는 차혁이와 내가 함께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키우기 시작한 토끼인데, 쁘띠를 잃은 슬픔보다 차혁이와 내가 함께 나눈 모든 것들이 이렇게 하나씩 사라질 거라 생각하니 너무너무 무서워졌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날 때마다 우리의 이야기를 조금씩이나마 남겨보려 한다.’


소설 속 차혁이는 죽어버렸지만 너는 죽지 않았다고 우리는 웃었다. 6년 뒤의 일은 알지 못한 채.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이런 글을 써서 네가 죽어버린 게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생각. 내가 쓴 글대로 네가 죽은 건 아니겠지만, 내가 쓴 글대로 나는 네가 사라질까 봐 이렇게 글을 남기곤 한다.


지금 나오는 노래는 lucy dacus – night shift. 우리가 참 좋아하던 노래. 너의 유튜브 뮤직 리스트에도 이 노래가 담겨 있더라. 우리는 서로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노래로, 글로, 영화로, 웃음소리로, 의성어로, 의태어로, 말로, 몸짓으로, 눈으로, 품으로.


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종이컵 전화기로 전화하는 것 같애. 아니면 새를 보내서 메시지를 전달해. 그러면 메시지 받고 음. 하고. 실시간으로 같이 활동하는 건 잘 안 맞는 것 같애.”


정말 우리는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가 연인에서 친구가 된 후로 더더욱 그랬다. 함께 할 때 뭔가를 같이 하기보다는 그저 멍하니 있거나 뭘 할지 모르는 상태가 많았으니까. 우리는 카톡으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요즘도 나는 너와 나눈 카톡을 자주 본다. 카톡의 내용은 따뜻하다. 아직도 너와 카톡을 나누던 그 느낌이 생생하다. 너와 나의 카톡은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느낌을 서로에게 전달하는 것 같은. 너와 나만 아는 암호 어로 서로에게 속삭이는 듯한.


우리의 대화를 본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막 뭐라고 되는 대로 말하면 너는 그냥 응 그래 하고 그 말들을 그냥 뒤로 넘기는데, 그게 그대로 대화가 된다고. 또 너는 내게 이렇게도 말했다. 너는 큰 바위고 나는 그 주위를 돌면서 속삭이는 아이나 새 같다고.


네 주위를 맴돌면서 속삭이고 싶다. 손짓과 발짓을 섞어가며 아이같이 조잘대고 싶다. 너는 내게 큰 바위였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바위. 지금의 내 앞에 네가 나타난다면 아마도 나는 바위의 품에 안긴 채 엉엉 울어버릴 것이다.


어제 꿈에는 네게 네가 죽을 줄 알았냐고 물었다. 너는 몇 번을 아무 말도 없다가 내가 재차 묻자, 확실하게 알았던 건 아니지,라고 답했다. 아마도 너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날 내게 휴대전화 패턴을 알려주고, 죽기 전에 뭘 남길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만 봐도.


이제 너와 나는 꿈에서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모든 건 내 마음속에 있다는 너의 말처럼.



한동안 감정의 편린들이 기억 속을 떠다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채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유리벽을 치고, 반짝이며 묻어났다. 떠다닌 조각들은 이제 대부분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톡 건드려지면 슬쩍 씩 위로 한두 조각 튀어 오를 뿐.


튀어 오른 조각들은 글자가 된다. 글자는 나의 가슴으로 흘러나온다. 흘러나온 글자의 획이 나를 찌른다. 획의 표면은 거칠다. 갈고리 같은 표면이 톱처럼 내 마음을 갉아댄다. 나는 기꺼이 그 고통을 받아들인다.


기꺼이가 아니라, 반갑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동시에 한숨이 나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아플까, 언제까지 이렇게 반가울까, 사라지지 않으면 어쩌지, 사라지면 어쩌지. 너의 말들이 내 가슴과 귀에서 들린다. 마음이 가슴에 있을 리가 없잖아. 내 뇌를 찌르는 말들, 말들.


어쩌면 마음은 가슴도, 뇌도 아닌 나의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을 거라고 네게 말한 적이 있다. 네가 떠나갈 때 너의 세포 하나하나에 찌릿하게 전기가 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너를 다시 만난다면 묻고 싶은 것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마지막 날의 나의 대답. 너를 왜 떠났냐는 너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


너에게 편지를 써. ‘난 너에게 편지를 써’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를 너는 자주 불렀지. 나의 글들은 전부 네게 쓰는 편지. 너는 영화를 본 나의 소감을 늘 기다렸지. 나는 네가 보라는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어. 마지막 날에도 네가 함께 보자던 영화 대신에 다른 걸 봤지. 기억은 날카로운 톱니 같아서 내 마음을 갈아내고 또 갈아내. 네가 바라는 것은 이런 게 아닐 텐데 말이야. 너는 언제나 내가 행복하길 바라겠지? 네 미소를 떠올리면, 알 수 있어.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살고 있어. 처음에는 너 없이 살 30년의 시간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 시간이 그저 멈춰있는 시간 같아서.



‘그’에 대한 그의 글은 오늘도 편린처럼 떠다닌다. 맥락을 갖추지 못한 활자 같은 글들. 편지는 일목요연하게 쓰이지 못한다. 이것은 편지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까운 글. 이 글은 네게 가 닿을까, 내게 와 닿을까. 그는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리고 곧 그의 세포 하나하나에 ‘그’가 새겨져 있음을 깨닫고 놀란다. 그에게 와 닿는 글은 곧 ‘그’에게 닿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는 그는 펜을 다시 고쳐 잡는다.


“광히야. 나 아무것도 안 보여. 단비야. 모든 건 마음속에 있는 거야. 히히!”


‘그’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면 그의 온몸의 세포가 벌떡 일어난다. 뾰족하게 일어난 세포들은 사포의 표면처럼 그의 마음을 긁어댄다. 사부작 거리는 소리는 마음을 깎아내며 가루를 만들어낸다. 가루들은 허공에 폴폴 날린다. 날려진 가루들 때문에 재채기가 나온다. 에취! 튀어나온 침방울에 기억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그에 대한 기억들, ‘그’에 대한 기억들, 그와 ‘그’에 대한 기억들. 기억들은 메시지가 되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닐 것이다.


어디선가 익숙한 향기가 난다.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이 향에 묻어난다. 아마도 오늘 그의 꿈에는 ‘그’가 나타날 것 같다. 기억나는 꿈이 아니더라도, 잊힌 꿈에서라도. 그리고 ‘그’의 냄새를 잔뜩 맡고 ‘그’에게 냄새를 전달해줄 것 같다. 그와 '그'가 메시지를 나누는 방식은 원래 그런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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