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삵의 꼬리를 밟고 지나간 일은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아이 캔 스피크>라는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피해자를 그리는 영화의 방식이었다. 피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당위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방식으로 그려낸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피해자는 영화 속 옥분 할머니처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주변에 있다. 그럭저럭 혹은 잘 살아가며. 피해자 다움에 대한 억압은 이미 이야기되어온 지 오래다. 보편적인 피해자의 고정된 이미지를 피해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억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라면 약자여야 하고 고통스러워해야 한다는 강요. 경찰에 신고하며 울지 않아서 피해자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피해자가 약자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억압은 아직 완전히 해체되지 않았기에 영화 속 옥분 할머니의 모습은 반갑기 그지없다.
피해자에게 자행되는 억압은 유독 여성 피해자에게 가혹하게 씌워진다. 이는 여성에게 허용된 감정, 허용되지 않은 감정과 연관이 깊다. 여성에게는 분노가 허용되지 않는다. 분노는 강자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분노는 짜증이라는 단어로 대체된다. 여성 피해자는 분노보다는 수치심 혹은 좌절감을 느껴야 한다는 억압. 감정은 언어로서 표현된다. 여성의 언어는 남성의 언어와는 달리 약자의 언어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현실에 반감을 갖고 여성이 남성의 언어를 가져오자는 운동이 몇 년 전의 미러링 운동이다. 강자의 언어(조소, 분노 등)를 가져와 그 언어의 피해자가 느껴온 감정을 강자, 즉 남성 집단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걸 목적에 둔 운동이었다. 그러나 미러링 운동이 더 큰 작용을 한 건 남성 집단이 아닌 여성 집단이었다. 여성들은 미러링 운동을 목격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억압되어 온 분노의 표출 도구가 생긴 것이다.
이제는 여성 피해자의 분노가 낯설지 않다. 아니, 피해자라면 분노해야 한다고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여성 피해자의 분노는 만연하다. 반면에 분노하지도 수치스러워하지도 않는 피해자가 있다면 어떨까.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끝없이 의문을 가지며 분노도, 수치스러움도, 고통도 아닌 그저 의문과 방황에 갇혀 있는 피해자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어떤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은 피해자. 본인이 겪은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피해자. 이 낯선 피해자의 등장은 그 자신에게도 낯선 일이었다. 그는 본인이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피해자가 피해자임을 깨닫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적인 일인 것일까, 혹은 학습에 의한 것일까.
피해자가 피해자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가해의 규정이다. 가해의 규정이 명확하게 되어 있으면 피해자와 가해자는 명확해진다. 가해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 재산, 명예 따위에 해를 끼침. ‘해를 끼침’으로 순화.> 즉,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가해이며 누군가에게 손해를 입었다면 피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를 끼친다’는 것은 어떤 걸 의미할까. 이 지점에서 가해의 규정 범위가 달라진다. 무엇이 해인가. 손해는 어떻게 입증 가능한가. 일반적 가해 규범에서 벗어난 경우, 손해를 입증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경우 감정에 호소한다. 분노 혹은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호소하며 손해를 호소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강한 감정을 호소하는 점으로 피해자를 구분하기도 한다. 그 구분은 거의 학습의 영역에 이르렀을 만큼 이 사회에선 당연한 상식으로 통한다. 그러나 강한 감정을 느낀다고 무조건 피해자는 아니다. 반대로 강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피해자가 아닌 것 또한 아니다.
그는 그 사실을 몰랐다. 피해자라면 응당 강한 감정을 느껴야 하고 피해자라면 분노하거나 수치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본인이 겪은 일은 당시 사회에서 규범 짓는 가해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다. 어떻게 그가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느낄 수 있었겠는가. 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가 어떻게 그 일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 일은 그에게 그저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할 치부 정도로 이해되는 일이었다. 그 자신이 피해자임을 안 것은 10년이 지난 뒤였다. 10년의 세월 동안 그에겐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일들은 24살의 그의 발목을 아주 꽉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라도 알게 되어 자신을 더는 미워하지 않아도 되니 기쁘다고 생각했다. 피해자로 규정되는 일이 기뻤을 만큼 그에게 10년은 혼란과 자책과 상처의 시간이었다.
이제 그 10년에서 6년이 더 지났다. 그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옥분 할머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갔을까. 혹은 여전히 동굴 속에 갇힌 채 상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까.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아닐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든, 그에게 상처는 상처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의 상처가 그의 존재와 삶을 규정지을 순 없지만, 그 상처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다. 그는 정말로 헷갈렸다. 잘 살아가야 하는지, 잘 살아가는 척을 해야 하는 것인지. 내가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잘 살아가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인지. 본인이 겪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혼란의 시간처럼, 겪은 일에게 삶의 어느 영역까지 내어줘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최근에 조울증이 심해져서 입원을 했다고 한다. 그의 입원에 16년 전의 그 일이 어디까지 영향을 줬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병원에서 면담 시간에 그는 몇 번이나 울었다고 한다. 어째서 그에게 16년 전의 일은 아직도 진행 중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에겐 분노도 수치스러움도 슬픔도 없었다. 다만 그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던 본인에 대한 연민만이 남아 그를 괴롭게 하고 있었다. 그의 어떤 부분은 여전히 동굴 속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그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잊어버릴 필요도, 되새길 필요도 없다는 건 안다. 그저 그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그러나 그러기에 10년의 시간은 너무나 길고 아직도 그의 마음 일부는 현재 진행 중이다. 도대체 그가 겪은 일은 어떤 일이었는지, 그 일은 왜 그를 이렇게 오래도록 힘들게 하는지 이제 그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