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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음악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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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단비 Jul 09. 2020

Night Shift - Lucy Dacus


 -  ‘음악 쓰기’는 한 곡을 반복해서 들으며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글의 모음입니다.


https://youtu.be/0WDZdT04ls4

Lucy Dacus의 Night shift



음악은 감정이 담긴 그릇이다. 그릇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차고 넘쳐흘러 내 귀로 흘러들어온다. 내가 술을 마시는지 술이 나를 마시는지 모르겠다는 말처럼, 나는 내가 음악을 듣는 건지 음악이 나를 듣는 건지 모르겠는 경험을 하곤 했다. 인체모델을 할 때는 일할 때와 잘 때를 포함하여 24시간 음악을 들으면서 살기도 했다.

이 노래는 그 시절에 자주 듣던 곡 중에 하나다. 영어를 잘 모르는 나는 이 곡의 가사를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목소리와 반주에서 흘러넘치는 감정은 내 세포의 감각을 건드리기에 충분하다. 어두운 새벽의 안개 낀 밤거리가 떠오르는 이 곡. 아마 그 거리에는 붉은 옷을 입은 한 여자가 천천히 걷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그 여자는 안경을 쓰고 있다. 검은 폴라티와 붉은 망토를 입은 여자의 머리는 부스스한 파마머리다. 그는 시종일관 편안한 듯한 표정을 짓고 걷고 있다. 오늘도, 어제도 같은 표정으로 같은 거리를 걷고 있는 여자. 그의 걸음걸이는 땅에 발을 뿌리내리듯 묵직하다.




오늘은 여느 때처럼 힘든 하루였어요. 별일 없는 세상에서 왜 나의 일은 늘 별일이 되어버리는 걸까요. 한 편으로는 정말로 별일이 아닐까 봐 두렵기도 해요. 나는 별일을 바라면서 별일을 버거워하는 사람이에요. 별것 아닌 것처럼 살고 싶다가도 별것이 아닐까 봐 두려워요. 오늘은 그 사람의 생각이 났어요. 정말 보잘 껏 없는 나의 하루. 정오쯤 나는 일어나요. 슬금슬금 밥을 먹고 가방을 챙겨 카페로 나가요. 어제의 나는 이렇지 않았어요. 매일 바쁘고 별일이 많아서 그 모든 게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죠. 지금의 나는 별일이 없어서 작은 일도 별것인 것처럼 느껴져요. 나의 발걸음이 작은 돌멩이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요. 돌멩이들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요. 가로등이 깜빡거리네요. 이제 집으로 가서 쉬어야겠어요.     


작은 방 안에 들어온 그는 한참을 불을 켜지 않고 있다. 방에는 눅눅한 먼지의 냄새가 난다. 바닥에는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불 꺼진 방에서야 그는 주저앉는다. 아무에게도 외칠 수 없었던 외침이 마음속에서 터져 나온다. 소리는 밖으로 새지 않는다. 안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소리. 혼잣말의 울림이 생각보다 크다. 아무도 듣지 않을 걸 알면서도 외치는 숨소리는 그의 마음과 귀에 흘러들어 온다.

한참이 지나서 그는 불을 켠다. 어지러운 책상 앞에 앉는다. 만년필을 쥐고 일기를 써 내려간다. 펜 짓은 거칠다. 그에게 그 시간은 하루 중 유일하게 솔직한 시간이었다. 곡의 클라이맥스는 쓱싹이는 펜을 따라 흘러간다.   

   

속삭이듯 시작되는 시작. 잔잔한 기타 소리가 들린다. 낮의 햇살은 눈이 부셨다. 어디선가 꽃의 향기가 나는 듯도 했다. 멈칫 이는 발걸음에 햇빛이 사로 감 긴다. 발걸음에 힘이 들어간다. 카페에 도착한 그녀는 카푸치노를 한 잔 시킨다. 모든 것이 별일 없어 보이던 그때, 다시, 속삭임이 시작됐다. 아주 별것 아닌 사소한 일로. 기타가 징- 울린다. 그의 마음속에 드럼이 친다. 허밍이 들린다. 연주는 겹쳐진다. 허밍은 점점 높아진다. 기타가 치고 나온다. 보컬이 날카롭게 그의 마음을 찌른다. 보컬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보잘 껏 없는 인생의 끝에는 허무한 외로움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 안에서 너는 몸부림치며 괴로워하겠지. 노래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끝나 버릴 거야. 끝난 지 눈치채지도 못한 채.


종이를 구겨버린다. 책상의 고르지 못한 나뭇결은 그의 얼굴로 다가온다. 그는 그대로 얼굴을 묻어버린다. 잉크는 번진다. 번져진 잉크가 책상을 타고 아래로 뚝, 떨어진다.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다시 고르는 숨. 노래는 다시 시작된다.


그는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 겨울밤의 냄새는 건조하면서도 날카롭다. 담배 연기는 밤안개와 서로를 안는다. 섞여버린 연기를 바라보며 그는, 이제 그만 써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 일기의 마지막 장면이 둥둥 맴돈다. 종이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떨어진다. 종이는 그의 발걸음만큼의 무게를 가지고 아래로, 아래로 떨어진다. 떨어지고 떨어지다 결국 바닥에 닿아서는 사방으로 찢겨버리는 종이. 찢긴 종이 사이로 잉크가 흘러내린다. 처참한 광경을 내려다보던 그는 그만 생각을 접는다.

다시 집으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깜빡이는 가로등이 비춘다. 걸음은 땅에 발이 뿌리를 내리듯 묵직하다. 아마도 그의 일기는 계속 써 내려져 갈 것이다. 일기의 마지막을 머릿속에 구겨진 종이처럼 치워둔 채로, 그러나 분명하게 그곳에 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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