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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음악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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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단비 Jul 16. 2020

권태 - 신해경

 -  ‘음악 쓰기’는 한 곡을 반복해서 들으며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글의 모음입니다.


https://youtu.be/4wXrEeXbxto


늘어진 일요일의 햇빛은 엿가락처럼 벽에 들러붙어 있었다. 컴퓨터는 두 대, 우리는 각자 할 일을 했다. 아니 ‘할 일’은 없었다. 그저 각자 무언가를 했을 뿐. 그중 하나는 멀리뛰기 플래시 게임. 각도와 강도를 정한 후 쏘아 올려 얼마나 멀리 갔는지 기록을 재는 게임이었다. 플래시 게임이기 때문에 우리의 캐릭터는 서로 만날 일이 없었다. 만나 지지 않는 것은 캐릭터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나의 시선도 만날 일이 없었다. 아무 말 없이 모니터를 보고 게임에 열중하던 우리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심심해.”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우리에겐 내일도, 지금도, 어제도 없었다. 있는 건 오직 심심함 뿐이었다. 늘어진 일요일의 햇빛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우리의 모든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섹스는 지겨웠다. 이야깃거리는 떨어진 지 오래였다. 우리는 아주 오래된 사이였고 아주 오래 멈춰 있었다.


나른한 음악이 늘 귀에서 들려왔다. 리듬은 늘 일정했다. 어떻게 이렇게 오래, 이런 모습으로 함께할 수 있었을까. 의문의 자리에는 관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라에서 돈을 받고 엄마에게서 돈을 뜯어내던 그때의 우리. 관성적으로 빌붙고 관성적으로 행동했다. 숨 쉬고 먹고 자는 것마저 우리에게는 관성이었다.


관성의 사이에 드럼이 잔잔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가 기다렸던 것. 기다렸지만 피하고 싶었던 것. 이대로 끝이 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한 두려움. 그에게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 


     



드럼은 어느새 큰 리듬을 그리고 있었다. 둥둥 울리는 리듬은 우리의 매일 속에 가득 찼던 햇빛을 깨부수고 있었다. 깨어진 금 사이로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우리는 그제야 서로를 바라봤다.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팔을 벌려 서로를 안았다. 서로의 초라함을 느끼고 받아들였다. 흩어진 유리 조각들 사이로 우리가 보였다. 작고 초라하고 여리던 우리.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가 깨어지듯 순간이었다. 순간이기에 강렬했고 소중했다. 사실은 처음부터 그랬다. 눈부심인지 따뜻함인지 나른함인지 모를 것에 잊고 있었지만. 따뜻한 품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 유리 조각을 바라보았다. 빗자루가 없었던 우리는 손으로 유리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아프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프기보다는 차가운 감각. 유리 조각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응당 그래야 할 일이었다. 바닥이 울었다. 그가 그리던 그림들은 번져갔다. 그러나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쓸어 내고 녹여냈다. 녹여진 그림들은 그의 살결과 닮아 있었다.     




그리운 것은 그의 살결뿐만이 아니다. 그의 숨, 다시는 맡을 수 없는 숨.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의 숨. 그리고 그의 그림들. 햇빛 같던 순간들. 그 뒤의 우리는 다시는 일요일의 햇빛처럼 살아갈 수 없었다. 떼어내듯 떨어져서 지내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세상 밖으로 손을 잡고 나왔으니까.


세상은 권태로웠다. 그것은 마치 여름날 정오의 느린 바람 같은 것. 요일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느리게, 느리게 버티다 보면 어떻게든 흘러가게 되는 것. 그의 탓이 아니었건만. 권태로운 풍경 속에 박혀있던 그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벽에 그려진 벽화와 같았다. 나는 그 옆에 그려진 작은 강아지. 나의 인생이 이대로 끝나버린 것 같은 그 기분.


손을 잡고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그의 세상을 찢고 나온 것은 나였다. 그리고 그는 곧 햇빛 속으로 사라졌다. 순간이란 이런 것이다. 지나고 나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 그대로 끝나버리는 것. 일상에서도, 햇빛 속에서도, 모든 요일에 권태를 느꼈던 나는 그만,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리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는 바라지 않을 것이다. 후회를 남길만한 순간은 실수의 순간뿐이니까. 그와의 어떤 기억도 실수로 남지 않기를 그도, 나도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햇볕의 따뜻함과 얼음의 차가움을 전부 기억하는 것이다. 그와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것.


그는 나의 늘어진 햇볕이었으며, 차가운 유리 조각이었고, 기쁨이자, 슬픔이자, 권태였다. 늘어진 일요일의 햇빛은 엿가락처럼 벽에 들러붙어 있었다. 나는 벽에 가만히 다가가 혓바닥을 대어 보았다. 아주 달고도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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