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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단비 Nov 10. 2021

[엽편소설]향수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라고 그녀는 말하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곳은 카페였다.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젊은 남성이다. 이미 15년 전의 일이었다. 카페에서 담배를 태우는 것이 이상한 광경이 아니던 시절.


둘은 아마도 조만간 각자의 길을 갈 것이다. 그러나 둘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지금 이 자리에서 동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오늘, 이 말을 하려 이 자리에 나왔다. 같이 살자. 서로의 보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전부 숨김없이 보여주며. 만난 지 2년여가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매일 같은 데이트가 지겹기도 했겠지. 그 지겨움의 끝에서 이별과 동거 혹은 결혼이라는 갈림길을 만났고, 그녀는 동거를 선택했다.


과연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고민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그는 한 번도 동거의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5살이나 많았던 그녀는 이미 동거의 경험이 있었다. 그래, 사실 그녀는 동거의 끝이 무엇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결혼이거나 혹은 이별이었다. 그녀는 동거를 통해 두 번의 이별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녀는 동거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 아니, 좋아했다.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이 그녀의 끝없는 공허를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입 밖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말이었다. 동거에 대한 수락도, 거부도 아니었다.


“나는 사실 향수를 싫어해. 그래도 나랑 동거할 수 있겠어?”


뜻밖의 고백이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지독한 향수 애호가였다. 그를 만날 때면 항상 가장 아끼는 향수를 아낌없이 뿌렸건만, 사실 그 모든 것이 헛된 일이었다니. 아니, 오히려 좋지 않은 일이었다니. 나와 몸을 섞을 때는? 그때는 그 모든 걸 어떻게 견딘 거야?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2년이라는 연애 기간이 짧은 기간은 아니었지만, 그와 그녀는 여전히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바랐던 것이 동거였다. 서로에게 100% 솔직해지고 싶어서. 사실 100%라는 수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녀도 안다. 하지만 가능한 한 솔직해지고 싶었다. 그 끝에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닿지 못하는 여지에 늘 숨이 막히던 차였다. 그 여지를 솔직한 모습으로 채우고 싶었다.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을 만큼 가 닿을 수 있기를 바랐다.


욕심이 많았다, 그녀는. 욕심은 채워질 수 없기에 욕심인 것이다. 그녀 자신보다 더 큰 욕심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도록 종용했다.


“그래, 향수 따위. 다 버리지 뭐.”


정말로? 그녀가? 그럴 수 있을까? 그녀가 가진 향수만 하더라도 이미 200만 원어치가 넘었다. 특이한 향수만 보면 그녀는 홀린 듯이 그 향수를 사고야 말았다. 심지어는 물담배 냄새가 나는 향수도 가지고 있었다.


그와 그녀가 살림을 합치던 날, 그녀는 소중한 향수들을 하나씩 전부 먼지를 닦아주며 예쁜 상자에 차곡차곡 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향수들을 마치 장례를 치르듯 한참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입관식을 바라보는 참담한 심정으로. 그러나 그 향수들을 차마 버리지는 못하겠는지, 그녀는 향수 박스를 본가에 맡겼다. 결국 그와의 약속을 어긴 것이다.


그 뒤로 그와 그녀는 7개월여의 시간을 함께한다. 그와 그녀가 이별하게 된 건 향수 때문이 아니었다. 어이없게도 그녀의 집착이 원인이었다. 자는 그의 휴대전화를 몰래 보거나, 조금이라도 늦는 날에는 그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걸어대며 영상통화를 요구하곤 했다. 예정된 이별이었다. 그와 그녀의 지난 이별들이 그랬듯이.


그녀가 가진 공허함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 모든 것을 채우고 싶어 한 그녀의 욕심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향수에, 혹은 그에게 집착하게 한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나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15년 동안 채우고 사라지는 것들을 전부 목격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여기, 이 자리에 누워있다. 향수들이 상자에 곱게 담겼던 것처럼, 여기 이 관에 고운 모습으로 누워있는 그녀. 공허함은 결국 그녀 자신보다 큰 것이었다. 그녀는 이제 이곳에 없다. 마치 끝내 날아가 버린 향수의 잔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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