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단비 Oct 23. 2021

주변 사람들한테 주제 받아서 쓴 시 몇 편


소크라테스



땅에 묻힌 기억은

옛 광장의 사람들이라고

 

파고드는 생각은

무형의 인간들이라고

 

너는 내게 묻는다

묻혀진, 잊혀진 어느 돌바닥 위에서

주워담을 수 없는 말들을 삼키며

 


 

지하철


 

시간은 돌아온다

너는 오지 않고

지하의 냄새가 도처에 흩어져 있다

 

소음이 들린다

괴롭지 않은 소리는

공기속에 너의 흔적 혹은 안부처럼

 

문이 열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너를 한 눈에 알아볼 것 같아서

지금 여기, 너를 놓친다.


 


 

허무


 

장필순의 음악을 좋아하던 너는

눈물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떨어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늘한 밤공기가 내내 잊혀지지 않아서

 

가위로 옷을 자른다

옷장속의 먼지는 아직도 푸른색이어서

깊은 도랑에 몸을 웅크리고

 



생쥐


 

채 가려지지 않는 것은

몸 뿐만이 아니었다

 

액자 속의 너는

생과 죽음의 경계에서 존재했고

 

생각은 사라졌다

이게 다 풀이 자란 탓이다

풀과 너는 어느새 허리까지 자랐고

잘린 몸을 품고서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너는

그 곳에 숨었고

 


 

42년


 

흔들리지 않는 것은

두 해 전의 일이었고

창밖의 여자는

아직 그곳에 남아

 

틀어져버린 세계 안에서

홀로 서 있는 것은

갈대 뿐이라고

 

너는, 나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슾지의 귀퉁이에서 뿌리를 내리고

 


 

첫사랑

 


벌거벗은 너는

눈만 껌뻑이고 있었고

나는 꽃잎 하나를 입에 물었다

 

향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그림자만이

 

나도 널 따라 가고 싶어

발자국만 남은 자리에서

까만 눈 두개가 남아 있다

 


 

모나리자


 

익숙한 얼굴이라고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낯설지 않게 다가온 너는

비밀 하나를 가슴에 품고 있었고

 

압도당한 것은 스며드는 것

나는 네 입가를 서성이며

골똘한 생각에 빠졌고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다시 내게 다가왔다

 


 

위단비

 


우리는 함께 비를 맞았다

늘 누군가가 내 옆에 있었고

나는 우산이 없는 채로 태어나서

 

괜찮아, 라고 너는 말했다

보고싶은 마음은 가눌 길이 없고

 

나는 창 밖을 또 바라본다

빗방울이 아프지가 않아서

가을 바람에 나를 맡기고

 


 

클럽하우스

 


실과 실은 연결되어 있었고

너와 나는 각자 다른 공간 속에서

 

닿은 것은 그것 뿐이었다

그러나 진동은 분명하게 전달 되고

 

광장에 모인 우리는

손끝으로 진동을 울렸다

그 소리가 제법 듣기에 좋아서

 


 

나비

 


그림자만이 남겨진 곳에

어디선가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 한 마리가 그 곳에 있었고

숨의 냄새는 이 곳까지 나는 듯 해서

 

다시 태어날거야, 라고

헛짖음이 많은 강아지가 울었고

뜻도 모른 채 날고 있는 너는

내 머리 위에 앉아서,

 


 

미술관

 


눈이 바라본 것은,

 

칠해진 것은 자국이 남아서 이곳 저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고, 남겨진 흔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수도 있었건만, 마치 나의 눈동자를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한 듯이 이 곳에 너는 여전히 남아서, 내 마음 한 귀퉁이에 머리 아픈 오일의 냄새를 묻혀 놓고서는, 그 곳이 사라지지나 않을까 걱정하기 보다는 그저 내 두 눈으로 너를 좇아 가면서,

 

네모난 틀에 갇혔다

그러나 사과는 달지 않았고

다리는 제법 아파 왔지만

차마 주저앉지는 못했고,

작가의 이전글 사주팔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