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가 들은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머리를 곱게 묶은 연주는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더는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니까? 나 봐봐, 인생이 얼마나 즐겁니.”
시화의 잔뜩 부푼 짧은 히피펌은 시화가 어조에 힘을 줄 때마다 더욱 빳빳하게 세워지는 듯했다. 그렇지만 연주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나는 시화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결국 중요한 건 네 마음 아니겠니? 내 인생은 내 마음에 드는 게 우선이야.”
희일의 입버릇은 ‘나는’이었다. 언제나 세상의 중심에는 자신이 있다고 믿는 희일.
“그렇지만 연주의 입장도 나는 이해가 돼. 그래도 가족이 우선이잖아. 그렇지 연주야?”
월희는 단정한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의 월희는 연주를 보듬듯이 말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쌍둥이 자매인 넷은 연주의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주 오래 만난 연인과 결혼을 앞둔 연주. 자매의 모친은 둘의 궁합을 봤고, 비극적 이게도 궁합이 그다지 좋지 않게 나온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될 경우 머지않아 연주는 사별하게 될 운명이었다. 결혼은 곧 난관에 부딪혔다. 연주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결혼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화와 희일의 생각은 달랐다. 넷은 그 문제로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결국 모든 선택권은 연주에게 있었다. 타고난 팔자를 거스를 것인가, 혹은 순응할 것인가.
그러나 연주의 모친을 포함한 그들 중 누구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다. 연주의 남자 친구는 사주가 불분명했던 것. 어릴 적 입양된 남자 친구는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사주를 지어내서 연주에게 알려줬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연주와 그녀의 가족들. 그리고 자신이 지어낸 사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까맣게 모르는 연주의 남자 친구.
이미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 연주는 오늘도 출근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출근길은 유난히 막혔다. 아마 사고가 난 모양이다. 엠뷸런스가 바쁘게 지나갔다. 그날따라 엠뷸런스 소리를 듣는 연주의 기분은 이상했다. 회사에 도착해서는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후가 지나서, 연주에게 연락이 하나 왔다. 부고 연락이었다. 연주의 머릿속엔 지난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 그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연주의 인생은 지금과 다른 결의 인생을 살고 있었을까. 지금 이 순간, 어떤 기분이었을까. 연주에게 그 결정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그날 어떤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모든 일과 선택이 이미 지난 일이 된 연주는 멍하니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