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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단비 Dec 28. 2022

커피와 초록과 향수

쓰던 글을 지웠다. 나오지 않는 글을 꾸역꾸역 밀어낸다. 오늘의 글이 누군가에게 닿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 커피는 자꾸 줄어만 간다. 닿지 않는 평행선은 이곳에 있다. 나와 타인. 내 글과 독자. 닿지 않는 평행선일 것 같다.

나는 작은 파동을 그리며 몸부림친다. 싸늘한 바람이 다리에 머문다. 자꾸만 놓치는 것들. 감각들. 초록이 자꾸만 보인다. 초록은 희망처럼 부질없이 앞을 맴돈다. 아주 오래된 색깔. 잡아먹을 듯 거대한 색 앞에서 나는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한다.

듣는다. 목소리가 들린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은 벌레뿐만이 아니었다. 다시 돌아오는 것은 기억 또한 마찬가지. 어째서 그리움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지. 욕심처럼 거대한 붉은 색이 발끝에서 뚝뚝 떨어진다. 붉은색은 바닥을 적셨고 벌레가 맴도는 원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내가 저 초록을 침범할 수 있을까. 깊은 밤. 안개. 뜨거운 낮. 햇살.

반복되는 태양의 몸부림 속에 달은 그림자처럼 태양의 뒤를 바짝 좇았고 나는 여전히 나오지 않는 구역질을 따라하면서 끊긴 음악을 재생했다 멈추다가 그만 향수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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