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 프랑스 릭끄 – 뚜른헴 술 라 헴
점심은 항상 먹는 바게트와 햄, 치즈였지만 오늘은 조금 호사스럽게 올리브도 넣어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매일매일 바게트, 햄, 치즈를 먹으니 가족들과 친구들이 맨날 빵만 먹냐며 걱정하기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질리지 않았다. 프랑스의 바게트는 정말 맛있다. 괜히 프랜차이즈 빵집 이름이 파리바게트가 아닐 것이겠지만, 순례길 동안 먹었던 바게트는 싸면 1유로 미만, 비싸면 2유로의 그야말로 명품이었다. 보통 아침에 사서 길에서 먹어야 했기에 토스트 할 수도 없었는데도, 배낭 밖에 걸어 두며 바람과 햇빛을 바로 맞으며 반나절이 지나 먹어야 했는데도, 눅눅하거나 마르지 않았다. 아침에 바게트를 사면 아침을 먹었건 못 먹었건 빵 끝 꼬다리를 한입씩 떼어먹는 유혹을 이기기가 어려웠는데, 손으로 빵을 뜯을 때의 그 소리는 말 그대로 영화 라따뚜이의 완벽한 빵에서 나는 크러스트 소리였다. 물론 우리의 추억들이 많이 미화된 것일 수도 있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은 더 많은 재료를 넣어서 샌드위치를 해 먹어도 그때만큼 맛있는 샌드위치는 만들기가 어렵다. 아무튼 점심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고된 하루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네이버 지도처럼 길 찾기가 쉬운 것도 아니었지만, 순례자이니만큼 나침반과 책으로 되도록이면 길을 찾아가고 싶었기에 하루씩 돌아가면서 그날의 길 찾기 리더가 되기로 했다. 오늘의 리더는 나였는데, 옳은 길임에도 길에 진흙이 점점 많아지더니 결국에는 완전히 진흙탕을 걸어야 했다. 그래도 어지간히 긍정적인 이삭은 우리 신발이 고어텍스라서 방수가 잘된다며 이런 길도 걸어야지 하고 첨벙첨벙하며 걸었고, 덕분에 덩달아 신나서 사진도 찍고 이 정도면 우리 신발 협찬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농담도 주고받았다. 그런데 진흙탕을 지나고 나니 우리가 가야 하는 길목에 작은 산 정도는 되는 언덕이 있었다. 양말도 말리며 고프로로 영상도 잠깐 찍은 뒤에 심호흡을 하고 언덕길을 올랐다. 언덕길이 꽤 길어서 줄여보겠다며 중간에 길을 끊어 가파른 경사를 오르기도 하고, 숨을 가쁘게 몰아 쉬어 대며 언덕을 넘고 마을을 지나 1시간쯤 갔을까, 이삭이 놀람과 당황함이 섞인 얼굴로 말했다.
“Where is my go-pro? 내 고프로 어디갔지?”
배낭 옆, 주머니에 넣어두고 다니던 고프로가 그 자리에 없는 것이었다. 우리 둘 다 몇 km를 돌아가야 할지도, 어디쯤에서 잃어버린 지도 감도 안 왔다. 그렇지만 미국 친구들이 멀리서 돈을 모아 신혼여행 잘 기록하라고 사준 카메라였고, 받자마자 워낙 맘에 들어했던 물건이었기에, 가방을 내려놓고 찾으러 돌아가 보겠다는 이삭을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 허허벌판에서 바람을 맞으며 옷을 여며 쥐고는 가방 2개를 지키며 이삭을 기다렸다. 마음속에서는 스멀스멀 ‘왜 그걸 거기다 꽂아 두고 다니냐’, ‘이 상황에 꼭 그걸 다시 가지러 가야 되나’ 하는 생각들이 올라왔다. 이렇게 가다가는 이삭이 돌아왔을 때, 내 얼굴까지 원망이 올라 와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을 다스리고자… 웹툰을 보기 시작했다! 사람이 참 단순한 것이, 다른 곳에 집중하고 내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삭을 향했던 화살이 사르르 없어졌다. 명상을 했다라거나 책을 읽었다라면 좀 더 고상해 보였겠지만.
어찌 됐든 다시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저 멀리서 빨리 뛰어는 오지만 힘이 없어 보이는 이삭의 모습이 보였다. 담담하지만 상심이 보이는 얼굴의 이삭은 꽤 많이 돌아가 봤지만 카메라를 찾을 수 없었고, 더 가고는 싶었지만 혼자 기다리고 있을 나 때문에 돌아왔다는 말을 전했다. 일단 우리는 내일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이미 시간이 늦어 저녁식사와 숙소를 찾으러 마을로 향하기로 했다.
진흙탕을 걸어서일까, 발목이 더 아파서 절뚝거리며 마을에 가까워졌을 때쯤에는 벌써 저녁 8시, 아직 저녁도 못 먹었고 숙소도 아직 못 찾았다. 숲 속으로 가서 텐트를 쳐야 하나 싶었는데, 그냥 아무 곳에서나 텐트를 치는 것은 불법이기도 하거니와, 이미 너무 어두워져서 텐트를 칠 만한 자리를 발견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일단 배가 고프고 추워서 마을로 들어서서 식당을 찾다가 한 바에 들어갔다. 인상 좋은 금발머리 아주머니가 우리를 맞아 주셨다. 그런데 영어를 거의 못하셨고, 손짓 발짓으로 나눈 이야기로는 그곳에서도 간단한 크래커 말고는 음식을 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바깥에 푸드트럭을 가리키시면서 저기서 음식을 사 오면 안에서 먹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셔서, 나는 간단한 음료를 시켜 자리를 지키고 이삭이 나가서 음식을 사 오기로 했다. 꽤나 푸드트럭 줄이 길기도 했고, 한국처럼 빠르게 나오는 시스템도 아니어서 이삭을 기다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오늘 숙소는 어쩌나 하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맥주나 마시며 바를 둘러보는데, 선한 인상의 그 아주머니가 한 무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계신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멋지기도 하고 왠지 같은 순례자인 느낌에 반가워서 주인아주머니와 휴지에 그림을 그려가며 바디랭귀지로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아주머니 이름이 니콜이고 비아프란치제나를 잘 알고 계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니콜의 인상이 워낙 좋아서일까, 나 혼자 만인지 서로인지 모르겠지만 심적 거리가 가까워지던 찰나, 바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외부에 있는 화장실로 연결되는 작은 뒷마당에 우리 텐트가 딱 알맞게 들어가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차마 말은 못 꺼내고 이삭과 함께 늦은 저녁을 먹으며 긴급회의를 나누었다. 이삭도 화장실을 다녀오고는 텐트 치기 딱이긴 한데 너무 실례인 것 같긴 하고, 여기서 나가면 어디 가지 하며 갈팡질팡했다. 그리고 결국 지금까지 해 주신 것도 감사한 거라고 생각하며 바를 나왔다. 하지만 프랑스 작은 마을의 광장은 너무 어두웠고, 벌써 시간은 밤 10시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를 돌아 다시 바로 향하는 데는 약 10초의 망설임 밖에는 필요하지 않았다. 바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갔을 때, 영업을 마감하며 여기저기를 정리하던 니콜 아주머니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맞아 주셨다.
순례길에서 돌아온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아주머니에게 손짓 발짓으로 “뒷마당에 텐트를 쳐도 될까요?”라고 여쭤보았을 때, 답으로 돌아왔던 얼굴도 그중 하나다. 환한 미소와 망설임 없는 끄덕임, 그리고 기쁜 “Yes!”라는 말은 그 모습 자체로 우리를 반겨주고 계셨다. 황송해하는 우리와는 달리 니콜은 너무 춥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하시면서, 아침에 떠날 때 열쇠를 두고 갈 장소를 알려주시고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고된 하루였고 카메라도 잃어버려 내일 아침 기껏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하지만, 화장실이 딸린 한 평 정도 되는 우리의 오늘 밤 신혼집에 감사하며 하루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