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9. 프랑스 뚜른헴술라헴 - 위스크
보통 순례길을 걷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발로 걷는 여정을 생각할 것이다. 사실 상상에서뿐만 아니라 많은 순례자들이 전체 순례길 여정을 걸어서 한다는데 의미를 두고 길을 떠난다. 이삭도 끝까지 도보로 마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앞서 말했듯이 이 길을 순례길보다는 신혼여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좋게 말하면 융통성이 있고 나쁘게 말하면 갈대 같은 성격이라 순례길 중에도 바퀴 달린 현대문명의 도움을 받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주로 나의 꼬드김으로 순례길 동안 오히려 여러 가지 이동수단을 체험해보곤 했는데, 오늘은 히치하이킹과 택시가 우리의 걸음의 중간중간을 많이 채워준 날이었다. 하하.
어제 잃어버렸던 고프로를 찾으러 돌아가야 하기에 6시 30분에 일어나 텐트를 부랴부랴 정리해서 바를 나왔다. 니콜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으로 열쇠를 말해주신 장소에 넣어두고, 어제의 그 광장을 나와 다시 길로 돌아갔다. 어제 사진을 뒤적거리다 우리가 언덕길을 올라가던 시점까지는 고프로가 이삭 배낭 옆에 잘 꽂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언덕길의 윗부분까지 돌아가서 찾아보면 되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몇 미터 앞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지만 우선 차도를 따라서 가장 빠른 길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이 길에는 버스도 마땅히 없고 프랑스의 택시를 경험해본 바로는 얼마나 기다려야 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일단 걷기 시작했다. 길을 나서긴 했지만 거의 반나절 동안 걸어왔던 10km를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막막했다. 오늘 가야 하는 데까지 또 20km를 가야 해서 총 40km 정도를 오늘 걸어야 하는데 아직 20km도 안 걸어본 우리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차도에는 차들이 간혹 지나가는 게 보여, 고민하다 난생처음으로 히치하이킹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들고 있던 워킹스틱을 허공에 저어가며 지나가는 차들을 잡아보았지만, 평일 아침 운전하고 지나가는 차들은 거의 출근하는 차들이었을 테고, 출근길에 배낭여행하는 외국인들을 태워주는 일은 사실 나라도 안 할 일이었다. 그래도 발레리부터 니콜까지 우리가 받았던 호의들 덕분인지, 누군가는 도와줄 거라는 배짱이 생겨서 좀처럼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히치하이킹을 해본다는 사실에 안갯속에서 계속 힘차게 스틱을 젓고 있는데, 한 여자분이 차를 세우셨다. 신난 강아지들처럼 다다다 달려가서 우리 신발이나 워킹스틱에 묻은 진흙을 차에 떨어뜨리게 될까, 먼지 하나 없는 미술관에 들어가는 사람들 마냥 열심히 흙을 털고 차에 탔다. 살금살금 차에 타서 앉아있는데, 그분이 어제 니콜의 바에서 잔 신혼부부 아니냐고 말을 거셨다. 오늘 아침에 바에 들렀는데 니콜이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해주었다면서 우리를 만난 것을 신기해하셨고, 우리는 오늘 아침까지 니콜과의 인연이 이어지는 것 같아서 더 신기해했다. 그분은 가시는 길이 우리 목적지와는 달라 중간지점까지 우리를 태워주시고 가셨고, 그 지점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한 분이 또 차를 세우셨다. 아이들 학교에 볼 일이 있어서 가는 길인데 좀 기다릴 수 있으면 우리를 태우고 가서 학교에서 일을 보고 목적지까지 태워 주시겠다고 하셨다. 뭔들 우리에게 괜찮지 않았을까. 잇츠 오케이를 연발하며 차에 올라탔다. 사실 그 운전자분은 만삭의 임산부였다. 운전하는 게 편하지 않으셨을 텐데도 일을 다 보고 부러 우리가 가야 할 곳까지 태워 주시고 다시 돌아가셨다.
연달아 이어졌던 호의들 덕분에 오전 중에 어제의 언덕길 초입에 도착했고, 불쌍한 미아가 되어 수풀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고프로를 찾으러 언덕길을 올랐다. 소중한 선물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이삭이 먼저 거의 달리다시피 걸었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어제 허허벌판에서 뛰어오던 모습과는 다르게 멀리서부터 밝은 얼굴로 한 손에는 고프로로 이미 셀프 비디오를 찍으며 밝게 인사하는 이삭의 모습이 보였다. 고프로를 찾은 것도 기쁘지만, 잃어버리고 부터 다시 찾을 때까지 우리가 받았던 도움들과 자기를 탓하지 않고 함께 찾으러 와준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정말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는 이삭의 말을 마지막으로 고프로 실종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오늘의 길을 시작하기로 했다.
비아프란치제나는 가톨릭에서는 꽤 역사적인 순례길이다 보니, 길 간간히 있는 수도원에서 잘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어떤 곳들은 무료로 내어 주시기도 하지만 수도원들도 사정이 좋지는 않아서 최소한의 금액은 받고 숙소 또는 숙식까지 제공해 주신다. 수도원 특유의 검소하지만 정갈한 정성스러움이 식사와 숙소에서 한껏 느껴지기 때문에 수도원은 순례자들이 선호하는 숙소 중에 하나다. 어젯밤은 작은 바의 뒷마당 텐트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잤지만, 오늘은 순례길 시작 처음으로 수녀원에서 잘 수 있는 날이라서 아침부터 기대감을 마음 한쪽에 챙겨 두었다.
수도원까지는 지금 있는 곳에서 30km 정도 걸어야 하고 이미 시계는 12시를 향해 가고 있어서 우리는 자기 합리화를 시작하며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숙소를 못 구해 허덕였던 지난밤을 교훈 삼아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내일 머물 순례자 숙소도 미리 전화를 걸어 예약해 두었다. 예상했던 바긴 했지만 택시는 3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아, 이삭이 핸드폰 최근 통화목록에서 전화를 걸어 대체 택시가 언제 오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아뿔싸! 내일 예약해둔 순례자 숙소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었다. 숙소 주인분이 답하셨다.
Are you not that pilgrim? 아까 그 순례자 아니에요?
그 말이 그런 뉘앙스는 아니었을 테지만 “너네 순례자가 맞기는 맞는 거야?”라고 들렸다. 히치하이크도 하고 버스도 타는 날라리 순례자지만, 순례자가 택시 찾는 전화를, 그것도 왜 안 오냐며 화를 내며 전화했다는 것이 퍽 부끄러웠다. 멋쩍음을 감추려 우리 둘 다 크게 웃었지만 내일 숙소에 가서 주인분을 만나는 순간이 괜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여차 저차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부터 10km 정도 떨어진 마을까지 타고 갔다. 그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을 부지런히 걸어 수도원에 가보겠다고 우리 나름대로 순례자 마인드와 신혼여행마인드를 타협했기 때문이었다. 만만치 않은 택시비를 내고 시작한 오늘의 길은 드디어 봄이 왔음이 느껴지는 길이었다. 날씨도 많이 포근해져서 더 이상 칼바람을 맞으며 점심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에 택시의 힘을 빌린 덕분에 시간도 여유로워서 중간에는 햇살을 맞으며 들판에다 텐트를 펴 놓고 낮잠도 잤다. 그래도 몸이 좀 익숙해져서 인지 이제 10km 정도는 가뿐하게 걸을 수 있었고, 저녁이 되기 전에 수도원에 도착했다.
오늘 도착한 수도원은 노트르담 수녀원으로 베네딕토회에 속한 봉쇄 수도원이었다. 우리가 볼 수 있도록 허락된 장소는 예배당과 저녁식사와 아침식사를 위한 식당뿐이었음에도, 성스러운 분위기가 절로 느껴졌다. 예배당에서는 유럽의 오래된 대성당에 들어가면 항상 만나게 되는 높은 천장과, 화려하지 않지만 정교한 스테인드 글라스. 흐린 날이지만 워낙 성당 안이 어두워 창문에서부터 바닥까지 뿌리부터 줄기까지 보이는 햇빛과 발걸음 소리만이 울리는 고요함은 우리를 엄숙하게도 만들었지만 동시에 편안함을 주었다. 건축물에서 오는 분위기뿐 아니라, 오직 신을 위해 벽안에 스스로를 가둔 분들의 장소라는 사실이 더 우리의 마음을 울렸으리라.
우리가 머물 곳은 순례자뿐 아니라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서 피정을 하러 오시는 분들을 위한 숙소였는데, 숙소를 관리하시는 수녀님과 만나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알이 작은 안경을 넘어서도 인자하고 따뜻한 눈빛이 전해지는 글라라 수녀님은 이 수녀원에서 40년이 넘도록 계시며 순례자들을 맞고 계시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근방의 순례자 숙소 주인 분들은 모두 글라라 수녀님을 알고 계실 만큼 이 지역의 대모 같은 분이셨다. 수녀님은 사실 남자 순례자는 수녀원 바로 밑 쪽에 있는 남자 수도원에 머물 곳이 마련되어 있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우리가 부부인걸 그것도 신혼부부인걸 감안해서 같이 머물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도착한 방은 벽난로와 소파 옆으로 찻잔과 주전자가 준비되어 있고, 포근한 두 개의 침대가 나란히 있는 소담스러운 공간이었다. 도착해서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차도 한잔 마시며 일기도 쓰는 여유를 누리다 보니 말씀해주신 저녁식사시간에 빠듯해져서 헐레벌떡 식당으로 뛰어갔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부러 이곳을 찾아오신 다른 손님들은 이미 이 곳에 오신지는 일주일이 넘어 수녀원의 분위기처럼 차분하게 식사를 하시며 불어로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그 틈새에서 촐싹거리며 식사에 늦어서는 따뜻한 식사에 감탄하며 천진스럽고 명랑하게 나름 조용하려고 노력하지만 맛있다고 한국어로 조잘조잘하고 있는 우리는, 수채화에 등장한 크레파스들처럼 튀었다. 절제된 분위기의 식사에서 다들 수프를 한 그릇 씩 다 마쳐갈 즈음, 그릇을 가져가기 위해 수녀님이 더 드실 분 없냐고 여쭤 보셨다. 하루 종일 걷고 먹었던 수프가 너무 맛있기도 하고 배가 고파서 더 먹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다들 충분히 먹었다는 듯 입을 닦으시며 괜찮다고 하셔서 눈치가 보였다. 이삭이 나한테 먼저 “더 먹는다고 하면 실롄가?”하고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당연히 괜찮지!! 더 먹는다고 해!!”하고 이삭을 부추겨서 떠나가는 수프 그릇을 잡게 만들고 나는 “Me too.”라는 단 두 마디로 수프를 얻어 내었다. 다행히 그런 모습이 경박하기보다는 명랑해 보였는지 수녀님과 함께 머무시는 분들이 웃으시며, 어떻게 여기 왔는지 물어보시기도 하고, 비아프란치제나와 신혼여행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었다. 내일 아침에는 그레고리안 성가로 진행되는 미사가 있고, 그 미사에는 수녀님들도 창살을 사이에 두고 함께 하신다고 하셔서 그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미사를 드리고 내일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