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퇴사여행 떠나기’ 편에서 제주도에 빠져 일주일 살이를 꿈꾸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번 편에서는 내가 제주도를 좋아하게 된 그 계기, 그 시작점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혼자 여행에 도전하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휴가가 있어도 친구들이랑 시간을 맞춰 여행 가기가 쉽지 않다. 특히 여름휴가처럼 길게 휴가를 쓸 수 있는 기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2년 전 여름휴가 때 그랬다. 5일 휴가를 쓰면 앞뒤로 주말을 붙여서 최대 9일을 쉴 수 있었는데, 정작 같이 갈 사람이 없어 아까운 휴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만 했다.
그때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라도 가지 않으면 1년에 딱 한 번뿐인 장기 여름휴가를 그냥 집에서 보내야 하는데 그것만큼은 회사원으로써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혼자 가도 괜찮을 만한 곳을 찾다가 떠오른 곳이 바로 제주도였다. 제주도는 국내라서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도 안전한 편이었고, 그러는 동시에 여름휴가 다운 해외여행 기분을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숙소를 찾아보니 게스트하우스의 바다가 보이는 오션뷰 1인실이 눈에 띄었는데, 넓고 깨끗한 방인데도 가격이 아주 저렴했다. 결국 그 자리에서 같은 곳으로 5박을 바로 예약해 버렸고, 약간은 충동적으로 여름휴가 행선지가 제주도로 결정되었다.
원래 혼자 떠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결국 반강제로 제주도로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전까지 혼자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혼자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겁도 많고, 외로움도 잘 타고, 혼자 있는 건 괜히 무섭고 불안했다. 심지어 혼밥조차 어려워하던 성격이었다.
그런 내가 혼자 여행을 간다는 건, 인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고 싶다"는 버킷리스트 같은 느낌이라기보다는 나에게는 내 한계와 두려움을 깨뜨려야 하는 "도전" 같은 일이었다.
혼자 여행을 간다는 게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소중한 여름휴가를 그냥 집에서 보내고 싶진 않았기에 용기를 내본 것이었다.
D-DAY
그래도 여행은 많이 다녀봤기 때문에 혼자 비행기도 잘 타고, 숙소까지 이동도 무리 없이 했다. 그리고 도착한 숙소도 대만족스러웠다. 혼자라서 살짝 외롭기는 했지만 비행기에서 창밖 하늘을 구경하고, 제주도에 와서 바다를 보니 집에 있는 것보다는 백만 배는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가장 먼저 할 일은 계획을 짜는 일이었다. 어차피 혼자이고 기간도 여유로워서 계획 없이 온터였다.
가장 큰 문제는 밥 먹는 것이었다. 식당에 가서 혼밥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숙소 근처에 대형 카페들이 있어서 점심은 간단하게 빵으로 해결했다. 혼자 카페에서 책도 읽고 노트북으로 글도 쓰다 보니 시간 훌쩍 지나갔고, 그렇게 저녁시간이 되었다.
저녁에는 게스트하우스 모임에 참석했다. 사실 게스트하우스도 처음이라 조금 걱정이 됐는데, SNS에서 요란한 파티를 여는 게스트하우스들을 보며 혹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조용한 소규모 게스트하우스로 예약을 했는데, 다행히 내 예상대로 저녁 모임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나를 포함해 총 여섯 명이었는데, 남자 넷과 여자 둘이었고 그중 형제인 남자 둘을 빼면 모두 혼자 여행을 온 사람들이었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꽤 큰 도전이었는데,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혼자 여행을 잘 다니고 있고, 또 혼자 여행 여행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다들 비슷한 나이 또래라 재밌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즐겁게 수다를 떨다가 밤 12시쯤 숙소로 올라가 잠에 들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이렇게 어울려 본 건 처음이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즐거웠고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내가 일하는 업계 쪽에 취업을 희망하고 있어서, 다음 날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 후에도 매일 다른 카페를 하나씩 찾아다니며 카페 투어를 하고, 해변 러닝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막상 혼자 여행을 해보니 혼자 여행하는 것에 나름의 장점과 재미가 있었다.
- 맞춤형 여행
혼자라서 계획 없이 다녀도 아무 부담이 없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면 되니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생각보다 잘 맞았다. 그때 제주도에서 '데미안' 책을 완독 했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지금까지도 그 순간이 기억에 남아 내 인생 책이 되었다.
- 새로운 사람들
여행 3일째쯤, 게스트하우스 저녁 모임에서 만난 또래 친구들과 엄청 친해졌다. 서핑이 그렇게 재밌다고 하길래 다음 날 같이 해보기로 했는데, 사실 살면서 서핑을 해볼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엄청 재밌었다.
서핑을 마치고 흑돼지고기까지 알차게 먹은 뒤, 각자 일정대로 다시 흩어졌다. 그때 만난 인연이 계속 이어져서 특히 친해진 언니와는 나중에 또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기도 했고, 후에도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고 놀기도 했다.
이렇듯 처음으로 혼자 떠난 제주도 여행이 너무 즐거워서, 나는 그만 제주도에 푹 빠져버렸다.
예전에도 몇 번 제주도 여행을 와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동선을 빽빽하게 짜서 관광지 위주로 다녔기 때문에 혼자 여행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인생 첫 혼자 여행.
혼자서는 밥도 잘 못 먹고 겁도 많고 소심하던 내가 씩씩하게 일주일 동안 혼자 여행을 했다니 뿌듯했다. 한층 성장한 느낌이라고 할까?
특히 나는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혼자 여행이 생각보다 잘 맞았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일부러 혼자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 글의 초안도 지금 강원도에 혼자 여행 와서 쓰고 있는 중이다.
제주도 혼자 여행은 처음엔 같이 갈 사람이 없어 반강제로 혼자 여행을 간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세상을 넓히고 틀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