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다 보면 장기 여행을 가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 나의 업무를 대신 해줘야하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도 들고, 또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돌아와서 나도 일을 할 때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 퇴사를 하게 된다면 꼭 아주 먼 곳, 또는 오래 머물 수 있는 여행을 가리라고.
퇴사여행을 꿈꾸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제주살이’였다.
몇 년 전부터 제주도에 푹 빠져 해외여행이 여의치 않을 때면 제주도를 찾곤 했다. 그러다보니 한 달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주일 정도라도 제주에 머물며 책도 읽고, 요리도 해 먹고, 동네 카페를 오가며 그저 천천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퇴사가 확정되자마자 첫 번째 퇴사여행지로 '제주도'를 선택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머물며 관광보다는 ‘살아보기’에 더 가까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목표였다.
마침 엄마의 일정도 맞아 함께 가기로 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엄마와 나, 둘 다 운전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는 시골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에 운전을 못하면 이동에 어려움이 많았다.
결국 고민 끝에 운전을 잘하는 둘째 이모를 섭외했다. 나는 혼자 책을 읽거나 시간을 보내고, 엄마와 이모는 함께 놀러 다니면 되겠다 싶었다.
어쩌다 보니 막내 이모까지 합류하게 되었는데, 아빠가 자기만 가지 못하는 게 아쉬웠는지 시간을 내어 함께 하기로 했다.
다만 오래 머물 수는 없어, 이틀만 함께 있다가 먼저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이후로는 막내 이모, 둘째 이모와 엄마가 차례차례 돌아가고, 나는 혼자 며칠 더 남아 머무는 일정이었다.
참고로 나는 나름 MBTI 'J' 성향이라 여행을 가면 이동편과 숙박은 꼭 예약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내 인생 처음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예약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애초에 나는 조용히 책을 읽고 산책하며 ‘제주살이’를 즐길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었다.
하지만 막상 이모들의 여행 계획을 듣다 보니 나도 따라다니고 싶어졌다. 결국 일정은 이렇게 흘러갔다.
DAY1
저녁 비행기로 제주에 도착해 장을 보고, 숙소에서 해물찜을 해먹으며 첫날을 마무리했다.
DAY2
우도를 한 바퀴 돌며 알차게 여행을 즐긴 후, 저녁에는 회를 포장해 와서 숙소에서 맛있게 먹었다.
DAY3
새벽 일찍 일어나 한라산 등산을 갔다. 이모들은 백록담 정상까지 가고 나랑 엄마는 중간지점까지만 갔다 돌아왔지만 그래도 매우 뿌듯한 경험이었다.
DAY4
여유롭게 브런치를 먹고 동네 카페를 다니며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다.
DAY5
이 날부터는 혼자가 되었다. 이모가 끓여주시고간 육개장을 밥으로 먹고, 근처 오름을 구경가서 산책을 했다. 밤에는 먹다 남아 냉장고에 넣어놓은 한라봉 막걸리와 닭강정을 꺼내 티비 보면서 혼자 맛있게 먹었다.
DAY6
막상 모두가 돌아가고 나니 슬슬 심심해졌다. 숙소에서 뒹굴뒹굴하다가 혼자 버스를 타고 근처 시장과 바다에 다녀왔다.
DAY7
혼자 제주에 머문 지 삼일째 되니 조금 늘어졌다. 비도 오고 결국 숙소에서 종일 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다.
DAY8
여유롭게 일어나서 녹차 한 잔을 마신 뒤, 눈으로 한 번 더 풍경을 담고 비행기 타고 집에 돌아왔다.
제주도 퇴사여행은 물론 너무 행복하고,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혼자 보내는 제주살이는 생각보다 조금 심심했다. 그 시간을 통해 깨달았다.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결국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여행은 이모들과 함께한 첫 여행이었다. 퇴사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떠났지만, 사실은 가족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나눈 소중한 기회였다.
퇴사여행.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기보다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여서 더욱 특별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