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면서 깨달은 건, 완벽한 직장은 없다는 것이다.
대체로 만족스러운 회사생활이었고 앞서 ‘광화문에서 일해보기’ 글에서 썼듯 누구보다 재밌게 회사를 다닌 편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쉬운 점도 쌓여갔다.
퇴사를 꿈꾸다
우선,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회사를 다니며 학생 때는 몰랐던 산업 구조나 업무 방식들을 배우게 되었고, 외부 업체와의 미팅을 통해 다양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세상이 훨씬 넓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 경험하지 않은 환경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졌다.
가치관 역시 변했다.
예전에는 워라밸이 최우선이었지만, 어느 정도 워라밸을 누리며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놀만큼 놀다 보니 이제는 성취·성공·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더 크게 자리 잡았다. 친구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오래 공부하던 친구들조차 자격증을 따 어엿한 의사·변호사가 된 모습을 보면서, 나도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무시하지 못한다.
대학생 때는 월 30만 원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첫 월급을 받았을 때는 아주 풍족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씀씀이가 커지고, 내 집 마련 같은 현실적인 목표를 떠올리다 보니 지금보다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그 목표를 이루려면 결국 변화를 선택해야 했다.
무엇보다 퇴사의 자유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완전한 자유와 해방감. 종종 회사에서 퇴사하시는 분들을 보며 드라마처럼 사직서를 품에서 꺼내 흩뿌리는 상상에 잠기고는 했다. 물론 전자결재 시스템이라 그런 식으로 사직서를 작성할 일은 없겠지만, 아무튼 퇴사 그 자체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나는 올해, 2025년 5월에 퇴사를 했다. 이직을 하면서 퇴사하게 됐는데 이직 관련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쓰거라, 이번에는 나의 '퇴사 경험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첫 출근이 떨리듯이, 첫 퇴사도 굉장히 떨리는 일이었다. 보통 퇴사 한 달 전에 말하는 게 도리라고 해서 이직이 확정되자마자 최대한 빨리 말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떨려서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았다.
미션#1. 팀장님께 얘기하기
팀장님께 퇴사 얘기를 꺼내려고 결심한 날, 심장은 쿵쿵거리고 손은 떨리고 일에는 도통 집중이 안 됐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점심시간 이후 팀장님께 말을 건넸다.
“팀장님, 혹시 커피 드셨나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우리는 회사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눴다. 정확히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라고 했는지, '퇴사를 하게 될 것 같다'라고 했는지, 너무 떨렸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팀장님은 잠시 당황한 듯 보이셨지만 곧바로 “이직하는 거야?”라고 물으셨고, "그렇다"고 답하자 “정말 잘 됐다”며 축하를 해주셨다. 그리고 퇴직금, 인수인계, 인사 절차 등 챙겨야 할 것들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평소에도 워낙 좋은 분이셔서 감사한 점이 많았지만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해주시니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미션#2. 퇴사날짜 정하기
정해서 통보를 할 수도 있었지만 최대한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팀장님과 논의를 하려고 했다.
공식적인 퇴사 날짜는 통상 그렇듯 한 달 후로 잡았지만, 실제 마지막 출근을 언제 하느냐는 또다른 문제였다. 하필 올해 거의 휴가를 쓰지 않았어서 대체휴가까지 연차가 16개 정도 많이 남아 있었다.
팀장님께서는 회사는 어떻게든 돌아가니 신경 쓰지 말고 꼭 퇴사 후 쉬는 기간을 충분히 가지라고 따뜻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고민 끝에 바쁜 시즌까지만 딱 마무리하고 남은 며칠은 휴가를 쓰기로 했다.
팀장님께서 본부장님께도 확정된 날짜로 내 퇴사 소식을 전했고 퇴사까지 1달, 마지막 근무까지 D-23일, 주말과 연휴를 빼면 실 근무날은 12일만이 남아있었다.
미션 #3. 사직서 제출하기
팀장님과 본부장님께 말씀을 드린 후 전자결재 시스템으로 인사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인사팀에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당일에 바로 처리를 해줬다. 그리고 잔여 휴가 사용, 퇴직금 지급, 4대 보험 정산 등 절차를 안내받았다. 엄청 고생해서 어렵게 들어온 회사였는데, 나가는 건 이렇게 한 순간이라니 조금 허무하기도 했다.
미션 #4.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기
동료들에게도 퇴사 소식을 전하기 위해 연락을 돌렸다. 우선 회사에서 제일 친한 또래 동료들은 이미 퇴사 준비를 할 때부터 소식을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으로 같이 점심도 먹고 저녁에도 술 한잔 하면서 송별회를 하기로 했다.
다른 친했던 동료들에게도 말하니 다들 너무 갑작스러워 아쉬워했다. 매일 점심 약속이 있어서 넘치는 사랑에 입사 후 제일 바쁜 시기였던 것 같다.
팀 동료들에게는 직접 한 명씩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모두 정말 잘됐다며 진심으로 축하해 줘서 '내가 회사를 헛 다니지는 않았네' 하며 마음이 뭉클했다.
이후 팀에서 송별 파티를 열어주었고, 선물까지 챙겨주었다. 정말 좋은 분들이었고 여러모로 감사한 점이 많아 나도 퇴사선물을 준비해서 드렸다.
미션 #5. 기타
이 외에 업무적으로 일도 마무리하고, 인수인계서도 작성해야 하고, 퇴사여행 계획도 짜야하고, 회사 근처 운동하는 곳, 피부관리받는 곳 등등 매장에 멤버십 구매해 놓은 것도 다 써야 해서 정말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퇴사 D-DAY
마지막 출근날, 전날에 이미 대부분의 짐을 빼둔 터라 책상 위에 남은 몇 가지 물건들만 챙기면 됐다. 올해 초 새해 때 한 번 짐 정리를 해둔 덕분에 생각보다 남은 게 많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마무리해야 되는 업무를 처리하고, 컴퓨터를 포맷하고, 개인적으로 친하지는 않지만 같은 부서였던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하기 위해 쿠키 사 와서 하나씩 돌렸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12시 반. 마지막 날은 오후반차였기에 이제 정말 회사를 떠날 때였다. 왠지 마지막 출근 날에는 퇴근하자마자 바로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서 오후반차를 쓰고 부산행 KTX를 예약해 뒀었다.
마지막 짐을 싸서 사무실을 나오는데 지난 4년 동안 매일 같이 출근하던 곳인데 이제는 올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텅 비어있는 책상을 보니 애틋하기도 했다.
하지만 KTX에 몸을 싣는 순간, 놀랍게도 회사 1도 생각 안 났다. 기분 너무 좋았다. 창밖 풍경이 휙휙 스쳐 지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퇴사하면서 느껴보고 싶던 그 해방감과 후련함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특히 ‘수고한 나에게 주는 퇴사 선물’로 부산에 유명 5성급 호텔을 예약해 둔 상황이었다. 부산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오늘은 퇴사날이니까, 부산역에서 호텔까지 이동하는 것도 택시를 플렉스 했다. 호텔에서 사우나도 하고, 수영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시간을 만끽했다.
이제 당분간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도, 눈치 볼 일도,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놀면 된다!!! 평소 잘 쓰지 않는 표현이긴 하지만, 기분이 정말 째졌다.
내가 꿈꿨던 '퇴사'는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새로운 곳을 향한 시작이길 바랐다.
‘이 회사 도저히 못 해 먹겠다’며 때려치우는 게 아니라, 박수받으며 떠나고 싶었다. “일도 잘하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지만, 그래서 더 좋은 곳으로 갈 인재”라는 평을 들으며 나가길 원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의 퇴사는 내가 그렸던 그림 그대로였다. 사람에게, 일에,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했고 ‘이제는 떠나도 되겠다’는 확신이 든 바로 그 시기에, 나는 회사를 나왔다.
그래서일까. 아쉬움은 1도 없었다. 회사에 대한 애정이 컸지만, 퇴사 후에는 신기하게도 전혀 미련이 남지 않았다. 재직하는 동안 후회 없이 하루하루를 살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당당하게 떠날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