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일해보기

by 리나

서울의 3대 오피스 지역이라 하면 보통 강남, 광화문, 여의도를 꼽는다.


그중에서도 광화문은 청와대가 위치했던 곳이자, 우리나라의 중심으로 오랜 시간 전통과 권위를 상징해 온 곳이다.



제 꿈은 광화문에서 일하는 거예요



1. 이유


그리고 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번화가가 광화문이었고, 광화문 교보문고는 친구들과 자주 가는 아지트였다.


광화문은 나의 나와바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오피스 지역이었기에 '나중에 광화문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을 품었던 것 같다.


막상 인턴이나 졸업 직후에 다녔던 공연기획사는 모두 강남에 있었는데, 그때 출퇴근 시간마다 지옥철에서 매일 진이 빠지는 경험한 후로 그 소망은 더욱 강화되었다.




2. 과정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취업 준비를 할 때는 그저 어디든 합격하는 것이 중요하지 회사 위치를 따질 여유가 없었다.


내가 취업한 회사는 지원 당시 근무지가 '전국 발령'이었다. 보통 신입사원은 지역 근무를 먼저 거치는 순환 근무 구조였다. 본부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광화문에 위치해 있었는데 신입이 서울에 발령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했다.


그래도 연고지를 최대한 반영해 줄 거라는 인사팀의 안내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희망 근무지 1순위에 서울을 적었다. '제발 취업시켜 주세요'라고 매일 기도하던 내용이 '제발 서울 발령 나게 해 주세요'로 바뀌었다.


신이 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준 걸까?


마침내 발령 날. 20명이 넘는 신입사원 중 단 두 명만이 서울, 본부 건물에 발령을 받았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나였다.


그렇게 나는 꼬마 시절 친구들과 놀러 오던 광화문을, 이제는 직장인이 되어 출근하게 된다.



출근이 기대되는



3. 결과


실제로 광화문에서 일해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좋았던 점을 정리해 보자면,


1. 집에서 가깝다

제일 중요한 출퇴근 시간! 중앙차선 버스를 타면 한 번에 회사까지 갔고, 버스시간만 따지면 20-25분 정도 걸렸다. (도어투도어로 따지면 엘리베이터 기다리고, 버스 기다리는 시간 등 때문에 총 50분 정도) 회사 근처에 가고 싶은 맛집이 있으면 가족들을 불러서 퇴근하고 같이 먹고 집에 가기도 했다.


2. 심리적 안정감

익숙한 동네이다 보니 그 자체로도 심리적인 안정감이 컸다. 퇴근 후에 길을 가다가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거나 중학교 선배와 우연히 마주쳐서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3. 맛집이 많다

오피스 지역이다 보니 회사원들의 점심을 위한 건물 지하에 식당가도 많고, 주변에도 식당 자체가 굉장히 많다. 오래된 역사답게 몇십 년 전통의 한식 맛집들도 많다.


4. 접근성이 좋다

광화문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 지역 일대에 5호선 광화문역, 3호선 경복궁역, 2호선 시청역, 1호선 종각역 등 다역세권이다. 서울역이 근접해 있어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도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서촌, 북촌, 종각, 을지로 등 퇴근 후 도보 이동으로 놀러 갈 수 있는 곳도 많고, 서울 어디든 30분 안에 이동할 수 있어 약속 잡기가 편리하다.


5. 편의시설

맛집만큼 다른 가게들도 많다. 예를 들어 헬스장, 요가, 클라이밍, 필라테스 등 운동할 수 있는 곳도 다양하고, 병원 역시 영업시간이 회사원 맞춤으로 되어있는 곳이 많아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들르기 용이하다.


6. 문화생활

무엇보다 내가 광화문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다양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부터 소규모 갤러리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미술관/갤러리가 많은 곳이 광화문(종로) 일대이지 않을까 싶다.


또한, 서울시에서 무료로 공연이나 축제를 굉장히 많이 진행한다. 특히 광화문 광장이 조성된 이후로는 각종 공연과 행사가 더 많아졌는데 10cm, ITZY, 새소년, 크라잉넛 같은 유명 뮤지션 공연은 물론 야외 오페라, 오케스트라, 디제잉 파티 등 정말 다양한 공연들을 광화문에서 근무하는 덕분에 즐길 수 있었다.


얼마 전 SNS에서 "점심시간 때 매일 코노 가는 팀원 정상인가요?"라는 유머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나는 점심시간 때 공연이나 전시를 보고 오는 유별나고 부지런한 회사원이었다.




<나의 평소 일과 예시>

*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각색



월요일_


빠르게 다이어트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 가서 30분 정도 전시회를 보고 왔다. 퇴근 후에는 헬스장을 가기 위해 광화문 광장을 지나가는데 한복축제 일환으로 런웨이 패션쇼를 해주고 있어서 잠시 10분 정도 구경을 하다 갔다.



화요일_


내가 좋아하는 백반집에 가서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청계천 산책을 했다. 퇴근 후에는 버스정류장 가는 길에 교보문고 들러서 교보아트스페이스 전시회도 보고, 책도 구경하다가 집에 갔다.



수요일_


벚꽃시즌이라 점심을 빠르게 해결하고 덕수궁 산책을 갔다. 도심 속 이런 공간이 있다니! 퇴근 후에는 수요일이라 국립현대미술관이 야간개장 하는 날! 혼자서 조용히 1시간 정도 전시 관람을 하다가 집에 갔는데 평온하고 좋았다.



목요일_


점심시간 때 서울도서관 가서 책 좀 읽고, 책 대출도 하고, 퇴근 후에는 운동하러 길에 경복궁 미디어파사드 공연을 10분 정도 보다가 갔다.



금요일_


금요일은 책 읽는 서울광장 행사를 하는 날이라 햄버거를 테이크아웃해서 팀원들과 서울시청 광장에서 먹었다. 바이올린 공연을 해주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평일인 것도 까먹고 마치 피크닉을 온 것 같았다. 퇴근 후에는 청계천 광장에서 실버마이크를 하는 공연을 하고 있길래 잠시 구경을 하다 버스를 타러 갔다.


매일이 축제같은


4. 소감

나는 집순이라 평소 집에서 많이 늘어져 있는 편이다.


하지만 회사는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니까, 나가는 김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하고 오기로 마음먹었다. 덕분에 많은 직장인들이 주말만을 기다릴 때, 나는 평일이 더 기대되고 즐거운 경우도 많았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스트레스받고 힘들 일도 많지만, 광화문에서 누린 소소한 일상 덕분에 어려움을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사 동료들과 종종 농담으로 하는 말로 이번 글은 마쳐본다. "우리 회사 최고의 복지는 위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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