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은 사람이 있는 삶

by 어른이 된 피터팬

오늘 제대로 힐링했다. 사실 힐링할 것도 없는데 기분 좋으면 힐링했다고 말하는 입버릇.
오전에 회색 구름이 우중충하길래 비가 올 줄 알았는데 서서히 하늘이 개었다. 맑은 하늘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 좋아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도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요 아이들!
음메~


집 근처에 있는 소들이 풀을 뜯어먹는 초원! 오늘따라 소들이 더 사랑스럽다. 우적우적 느긋하게 풀을 뜯어먹는 모습이 왜 이리 귀여운지. 그렇게 한 참을 바람맞으면서 소를 바라보았다. 소들의 눈은 참 크고 맑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 바보스러움도 사랑스럽다. 얘네들은 풀이 맛있어서 먹는 건가? 소들에겐 풀 맛이 인간이 느끼는 풀 맛과 다른 맛일까? 얘네들도 생각이란 것을 할까? 계속 풀만 뜯는데 심심하진 않나? 별별 생각을 다한다. 어렸을 적 엄마가 키웠던 송아지가 그렇게 영특하고 사랑스러웠다는데. 이 아이들을 보니 나도 소를 키우고 싶다.


회색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쨍쨍하다. 비 온 뒤라 그런지 하늘이 더 깨끗하게 보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대하던 토끼를 만났다. 우리 집 마당에 토끼가 놀러 왔었다는데 그게 정말이었다!

몽실몽실한 흰 엉덩이가 보이길래 조심조심 다가가 찰칵! 그러나 내가 다가가자 부리나케 도망간다.

소 한 마리, 토끼 한 쌍, 개 한 마리 데려다가 살고 싶다.


오늘은 한라수목원에 있는 카페에 갔다. 날이 좋으면 이 카페에 가고 싶어 진다. 카페에서 갖는 혼자만의 시간. 아끼며 읽었던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2주 전부터 만난 故신영복 선생님. 그분을 너무 늦게 만난 것이 안타깝다. 내가 신영복 선생님을 만난 것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감옥에서 보내신 편지들을 엮어서 책으로 만든 것인데 편지일 뿐이지만 선생님의 깊은 철학과 인품을 느낄 수 있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하지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게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이로만 느끼게 합니다.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 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여름에 유럽여행을 하면서 극강의 뜨거움을 경험했었다. 웅장한 고대 유적과 아름다운 조형물들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햇빛과 숨 막히는 더위는 그냥 짜증을 유발해 예민하게 만들었다. 비교할 수도 없지만 그보다 더한 상황에서 신영복 선생님께서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던 것은 열을 유발하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인식의 왜곡과 자기 자신의 한계였다. 그분의 깊이를 알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사람에 대한 애정과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편지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선생님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 졌다. 선생님을 더 만나고 싶어 졌다. 서울 집에 엄마가 예전에 구매하신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이란 책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다. 서울에 돌아가게 되면 1순위로 읽어봐야지. 이렇게 나의 인생 책이 한 권 더 늘었다.



밖으로 나오니 이미 어두워졌다. 긴 하루였고, 기분 좋은 하루였다. 인생의 스승(신영복 선생님)을 한 분 더 모시게 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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