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한 끼를 준비하는 이 시간이 좋다. 내가 나를 존중하는 느낌이랄까. 비록 인스턴트 음식으로 점철된 점심이지만, 카페처럼 차려 먹으니 기분도 좋고 맛도 더 좋다. 먹기 전에 예쁜 사진 남기려고 여러 장 찍다 보니 피자를 먹을 때쯤은 피자가 식어 있다. 창문 밖을 보면서 피자 한 조각에 여유로움을 찍어 맛있게 즐긴다. 이러고 있자니 지금 이 삶이 교환학생 때의 내 모습 같다. 1km가 넘는 마트를 내 집 마냥 매일, 하루에도 여러 번 걸어 다녀왔다. 매번 피자, 케이크, 과자들을 사 와서는 예쁘게 그릇에 담고 눈과 입으로 즐겼다. 생각해보니 벌써 1년이 흘렀구나..
그리고 9시, 고대하고 고대하던 새끼 고양이 누리가 우리 집으로 왔다!! 엄마 지인이 키우시는 고양인데 내일 서울에 가신 다기에 내가 그 고양이를 보살펴도 되냐고 부탁드렸다. 4월에 봤을 때는 한 주먹 사이즈의 완전 새끼였는데 이제는 두 주먹 사이즈가 되었다. 남의 아기 크는 건 왜 이리 빠른지. 1년도 안 된(이갈이도 하지 않은 아가다) 고양이라 그런가 더더더 사랑스러웠다. 거기다 이 아이는 미묘를 겸비한 개냥이다. 개보다 더 애교가 넘친다.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낯을 가리지도 않고 바로 우리 집에 적응해서 막 뛰어다니고 난리가 났다. 내 껌딱지가 되어서 화장실까지 따라온다. 가히 치명적인 생명체다. 내 품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내 무릎 위에서 그루밍하고 잠자고 장난친다. 누리의 매력에 빠져서 계속 놀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무한 사랑을 주었다. 오늘 밤 누리는 내 얼굴 바로 옆에서 똬리를 틀고 잠을 잤다. 누리의 치명적인 귀여움에 빠진 첫날밤이었다.
창문으로 아침 빛이 스며들어 눈을 떠 보니 귀여운 생명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른 안경을 장착하고 그 미친 귀여움을 열심히 관찰했다. 이 순간을 빨리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이불속에서 누리에게 말을 걸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어느샌가 누리는 이불속으로 들어와 내 옆에서 2차 취침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담으려고 또 열심히 카메라 버튼을 눌러댔다.
오늘부터 임시 집사의 업무가 시작되었다. 침대에서 나오자마자 화장실을 갈아주었다. 고양이 화장실 냄새가 익숙하지 않아서 더 진하게 느껴졌다. 앞으로는 싸면 바로바로 갈아줘야지! 그리고 아침밥을 주었다. 사료 봉지 소리가 들리자 좋다고 냐옹냐옹거린다. 먹는 것도 어찌 그리 귀여운지. 누리 밥을 주고 나도 아침밥을 준비했다. 작은방에서 먹으려고 이동하자 또 쫄래쫄래 따라와서는 내 밥을 탐낸다. 계속 책상에 올라와 낸 밥에 손을 뻗는다. 그럼 나는 한 손으로 들어 올려 다른 장소에 내려놓는다. 이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냥님은 포기하지 않고 내 식사가 끝날 때까지 식탁 등반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소파에 올라와 식탁으로 올라가더니 다음에는 내 팔을 타고 어깨로 올라가 식탁으로 점프한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는 바닥에서 식탁으로 바로 점프한다. 연습으로 발전하는 점프력이다.
한동안은 창문 앞에 앉아서 뭔가에 집중한다. 너도 이 아름다운 경치에 빠진 거니..라고 생각했으나 누리는 테라스로 놀러 온 새들의 움직임을 따라 그리고 창문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날벌레들의 움직임에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움직이는 것에 굉장히 예민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침을 먹고 잠시 책을 읽으려고 책을 폈는데 조용히 곁에 와서는 방해공작을 한다. 책 모서리를 깨물면서 책의 묘미를 알아가고 책 속으로 얼굴을 파묻어 지식 탐구에 열중하고 책을 넘기려 하면 아직 안 읽었다고 손을 뻗어 저지한다. 누리의 학구열은 대단했다.
계속 그렇게 책과 놀다가 낮잠이 몰려오는지 내 허벅지로 자리를 옮겨 잠을 청한다. 왼쪽, 오른쪽 허벅지를 오가며 꿀잠을 잔다. 허벅지를 내어주는 것은 집사의 의무랄까. 혹여나 잠이 깰까 봐 쥐가 나도 함부로 펴지 못한다. 고양이가 잠이 많은 동물인지는 알았지만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새끼인 점을 고려해도 말이다. 안 놀아주면 바로 허벅지에 자리를 깔고 눕는다. 그리고 세상 편한 표정으로 새근새근 잔다. 냥님 팔자가 상팔자다.
누리 사진을 찍다 보니 4시간이 훌쩍 갔다. 누리와의 시간은 블랙홀인가 보다. 누리 먼저 식사를 한 후, 집사인 나도 늦은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냉면. 누리가 또 나의 냉면을 탐낸다. 나만큼이나 식탐이 있는 냥이다.
1시간 만이라도 공부해야지! 하고 인강을 틀었다. 어김없이 시작되는 방해공작. 사실, 그 귀여운 존재 자체가 방해다. 계속 시선이 가고 계속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노트북 키보드를 핑크 젤리(발바닥)로 누르면서 인강을 정지시키고 펜을 가지고 놀다가 아예 노트 위에 앉아 버리고 그러다가 또 내 팔뚝 위에 자리 잡고 앉아 글씨를 못 쓰게 한다. 인강 듣다가 어느새 졸고 있는 모습이 꼭 나를 보는 것 같다. 결국 한 시간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계속 카메라만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핸드폰 충전기로 놀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관심을 주느라 내 할 일을 아예 못 했다. 임시 집사로서 하루를 살아보니 전업을 해야겠더라. 그 귀여움을 뿌리치지 못하겠더라. 관심을 갈구하는 그 눈빛을, 품 속으로 파고드는 몸짓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의 하루는 누리로 가득 찼다. 그리고 나의 잠옷과 양말은 누리의 간택으로 누리 장난감이 되었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덩어리 누리의 집사가 되어서 행복했던 하루였다. 오늘도 누리는 내 옆에 똬리를 틀고 잠들었다.
어김없이 자연의 알람에 일어났다. 이제는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잘 때가 많다.
눈을 떠보니 누리가 보이지 않는다. 누리야~라고 부르자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난다. 2층에서 올라오는 소리다. 일찍 일어나서 혼자 놀고 있었나 보다. 침대 위로 점프하여 큰 눈망울로 나를 쳐다본다. 사랑둥이다. 고양이에게 방울 소리가 스트레스라는 사실을 알고는 목걸이 자체를 떼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버클 형식이 아니라 풀기가 어려웠다. 지인 분께 전화로 물어보니 3층 집에서 못 찾을까 봐 단 것으로 오늘 밤 집에 데려가서 방울을 떼신다고 놔두라고 하셨다.
한참을 침대에서 놀았다. 리모컨을 가지고 잘 논다. 이갈이를 하려고 하는지 모든 것을 깨물려고 한다. 덕분에 내 잠옷과 양말은 구멍이 생겼고 내 손과 발 여러 군데에 피가 났다. 누리랑 놀다 보니 또 4시간이 사라졌다. 어제랑 마찬가지로 오늘 하루 전부 누리로 가득 찼다.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누리에게만 집중했다. 계속 핸드폰 충전기로만 놀아주니 재미없을 것 같아서 집에 있는 상자에 구멍을 내서 장난감을 만들어 줬다. 처음에는 경계하면서 손만 집어넣더니 나중엔 들어갔다 나왔다 혼자 잘 논다. 고양이는 처음 키워보는데(이틀뿐이지만) 신기한 점들이 꽤 많다. 일단 고양이의 용변 습관.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는 뒤처리를 자기가 알아서 한다. 화장실 모래로 자기 변을 덮는다. 요리조리 굴리면서 덩어리로 만들어준다. 청결이라는 개념을 인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몸에서 그르릉 그르릉 소리가 계속 난다. 나는 이게 처음에는 기계 소리처럼 들렸다. 어디가 아픈가? 낯설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편안함을 느끼면 나는 심장 울림소리란다. 마치 기계처럼 계속 저 소리가 나는데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고양이의 점프력에 놀랐다. 1m가 넘는 곳까지 점프하는 모습에 살짝 걱정이 들었다. 어느 곳까지 치워둬야 하나, 깨질 위험이 있는 것들을 다 옮겨야 하는지. 그런데 신기하게 깨질 것들은 잘 피해서 구석구석 다닌다. 갑자기 놀라게 했을 때 반사적으로 튀어 오르는 것도 한 번 목격했는데 마치 만화 캐릭터처럼 순간이동을 한다.
마지막으로, 고양이도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한 번은 얘가 놀아주니까 너무 흥분해서 내 허벅지로 점프해서 매달렸다. 숨겨놓은 발톱을 아주 힘껏 내 허벅지에 내리찍은 것이다. 바지 속 내 살까지 발톱이 파고들어 피가 났다. 누리는 날 다치게 하려 한 건 아니고 좋아서 놀다가 그런 건데 내가 막 화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우는 연기를 했다. 엉엉엉~ 흐흐흑 미간을 엄청 찌푸리면서 큰 소리로 우는소리를 냈다. 내가 우는 척하자 자기도 당황한 듯 조용히 의자 안으로 들어가 내 눈치를 본다. 잔뜩 움츠린 어깨를 하고 앉아서 땡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고개를 숙인다. 가만히 내 눈치를 보는 데 그게 너무 귀여워서 계속 우는 척을 했다. 그랬더니 내 옆으로 슬그머니 와서는 반성의 자세로 조용히, 가만히 앉아 있는다. 동물도 눈치라는 것이 있구나. 고양이도 강아지처럼 사람과 교감하는구나. 정말 귀여웠다.
밤 9시가 좀 넘은 시간, 누리가 원래 집으로 돌아갔다. 짧았던 나의 집사 인생은 끝이 났다. 1층과 3층을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누리가 집에 가자 뭔가 허전하다. 벌써 누리가 보고 싶다. 누리도 분명 우리 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거다. 내 48시간이 전부 누리 거였으니까. 지금부터 나는 고양이 앓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