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는 못 누릴 것들
3층에서 딴짓을 하고 있는데 1층에서 나를 부른다.
"토끼 왔다. 마당에 토끼 왔어~"
나는 슬리퍼도 벗어던지고는 막 뛰어갔다. 토끼를 놓칠세라 바로 밖으로 나갔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토끼 보는 게 더 중요하다. 할머니가 검질 하셔서 토끼 풀도 없을 텐데 왜 왔을까. 할머니가 뽑은 잡초들을 한 곳에 모아두셨는데 그것을 먹으러 왔나 보다. 내가 과자 여러 개를 펼쳐 놓고 맘껏 먹으며 느꼈던 즐거움을 얘네도 느끼고 있을까. 아니 신선하지도 않은 풀을 저렇게 맛있게 먹다니. 계속 관찰했다.
두 마리가 한 번에 우리 마당에 오는 것은 드문 일이라 더 신이 났다.
흰 토끼가 조금 더 우위에 있나 보다. 점박이 토끼가 흰 토끼의 주먹에 잽싸게 도망간다. 토끼가 이렇게 빠른 동물이었지 새삼 느꼈다. 우리(cage)에 갇혀서 답답하게 사는 도심의 토끼를 보다가 이렇게 자유분방 뛰어다니는 토끼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고 마음이 편안하다. 가끔 놀러 오는 토끼가 내게 주는 기쁨이 크다. 이곳에서의 큰 낙이다. 얘네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간다.
서울에선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시간 낭비를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할 일을 찾았다. 분 단위로 할 일을 계획했고 노는 것도 계획을 세워서 놀았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알람을 맞추지도 않고 목적 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토끼를 보는 등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들을 보낸다. 약간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나 괜찮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항상 균형이 중요한데 그게 참 어려운 것 같다. 깨어 있으려는 노력을 좀 더 해야겠다.
오늘은 사촌 언니, 사촌 동생과 놀러 가기로 했다. 주희 언니가 "일요일에 시간 비워놔이~"라고 카톡을 보냈다. 운전 못하는 나를 집에서 구제해주겠노라는 사촌 언니의 손길. 신이 나서 일요일만 기다렸다. 동민이가 주희 언니랑 같이 왔다. 사촌 언니는 29살이고 사촌 동생은 18살이다. 거의 10살 차이가 나는데도 둘이 잘 다닌다. 원래 그 나이에는 누나랑 잘 안 다니지 않나? 남자 형제가 없어서 모르겠다.
동민이랑 나랑도 나이차가 있다 보니 오랜만에 본 동민이가 나에게 존댓말을 한다. 내 기억 속에 동민이는 애교 많은 마늘똘래기다. 초등학생 동민이는 늦둥이라서 그런지 애교가 많았다. 우리가 노래를 불러주면 모델처럼 런웨이 하고 춤추고 그랬던 쪼꼬미였는데. 어느새 키도 나보다 커버렸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애월의 "요리하는 목수". 미친 목수 버거가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우리는 미친 목수 버거랑 돈가스를 주문했다. 이름처럼 미친 비주얼의 버거였다. 맛은 사실 특별할 게 없었다. 비주얼로 승부하는 가게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점원분께 부탁하면 예쁘게 먹을 수 있도록 잘라 주신다는데 그걸 모르고 우리는 약간 지저분하게 먹었다. 맛있게 먹었으면 됐다.
배불리 먹고 우리가 향한 곳은 금능 해변. 협재 해수욕장은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금능으로 갔는데 여기도 사람이 많았다. 하긴 연휴를 맞아 어딜 가든 사람이 많을 때다. 우리는 여기저기 사진도 찍고 해변도 걸었다.
예전에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사촌들이랑 제주 바다에 많이 왔었다. 그때는 보말도 잡아서 삶아 먹고 했었는데 요즘은 보말 잡는 것도 금지가 되었다고 한다. 관광객이 와서 하영 잡아가서 남아나질 않는다고. 우리 어렸을 때 했던 즐거웠던 활동들 중 많은 것을 사촌 동생은 해 보지 못했다. 아마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것들 중에 미래 세대들이 못할 것들이 또 많겠지.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땅, 바다, 공기, 산, 이 모든 것들이 우리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 쓰는 것인데 공유재라서 그런지 함부로 쓰는 경향이 있다. 나부터가 반성한다. 나도 옛날의 맑은 공기가 그리운데 미래 세대는 지금의 공기조차 누리지 못 할 것을 생각하니 암울하다. 지금부터라도 더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개인적으로 환경을 아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서 꼭 실천하겠다고 다짐한다.
예쁜 곳에 가고 맛있는 것을 먹고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촌이 있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