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알람이 울리기 전, 창으로 들어오는 밝음이 먼저 나를 깨웠다.5시 반에 눈을 떠서 6시까지 꿈뻑꿈뻑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가만있음을 못 견디고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주희 언니가 9시에 출발한다고 했으니 준비할 시간 1시간을 빼고도 여유가 있다. 쿠키랑 머핀 구워서 가져가야지. morning baking. 아침부터 분주했다. 이번엔 계량에 성공했다. 반죽의 점도가 아주 딱이다. 다만 쿠키 커터가 없어서 모양은 단순하다. 아쉬운 대로 컵의 원을 이용해 원형, 달 모양, 타원을 만들었다.
베이킹은 효용가치, 부가가치가 높은 활동이다. 만들면서는 받을 사람이 받고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며 즐겁고 받는 사람은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즐겁고 같이 먹으면서는 맛있어서 즐겁다. 주희 언니가 지난번 내 쿠키를 먹고 맛있다고 감탄했던 것이 생각나 이번에도 쿠키를 구워보았다. 할머니 댁 가서 함께 먹어야지.
주희 언니가 왔다. 이모도 함께 오셨다. 할머니네 가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사촌동생의 사춘기, 사촌오빠의 근황, 할머니 건강, 정치 이야기 등. 떠들다 보니 금방 할머니 댁에 도착했다. 할머니가 현관문도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오늘은 진달래같이 예쁜 옷을 입고 계신 할머니, 바로 달려가 할머니 품에 안겼다. 언제부터인가 할머니가 애정표현을 잘하신다. 기쁜 일이다.
가자마자 이것저것 먹을 것을 주시는 할머니. 우리는 부처님 오신 날 행사가 중계되는 TV 주위에 둘러앉아 스님의 말씀을 배경음악으로(할머니는 천주교 신자, 이모는 기독교 신자다) 대선 관련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3대가 모여 이야기를 하면 정치적 벽을 느끼게 된다.
그 벽의 원인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인 공포와 그것을 이용하는 미디어, 그리고 각 세대가 겪은 각기 다른 시대의 모습이 아닐까. 나는 지금 이 시기, 우리나라에 필요한 리더는 현명한 협상가이자 외교관,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행정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완벽한 리더를 찾기 어렵겠지만 그러한 철학을 가지고 그러한 방향성과 공감능력, 실천력을 가진 인물이 우리 사회의 리더이기를 바란다.
삼대가 모여 앉아 각자가 바라는 정치인 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점점 고령화되는 사회, 60대 이상 인구가 가장 많은 지금 이 사회구조는 진보적인 정당이 이기기 어렵다. 사실상 우리나라는 거대 정당들이 진보보다는 보수에 가깝기도 하지만. 거기다 TV 언론도 보수적인 거대 자본의 피를 마시고 있어 편파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나는 우리 사회가 현상을 유지하는 게 좋을 정도로 살기 좋은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노력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방향성이 100% 맞는 정당도 없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와 검증, 관심과 비판을 통해 가려내야 한다. 어떤 선택이 우리의 최선인지 또는 최악은 아닌지. 가족끼리 정치 이야기는 피하라고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들을 교환하는 것을 통해 어느 정도 서로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어차피 정답이란 것이 없는 게 정치이니, 그것이면 됐다.
요즘 제비들이 짝짓기 할 때인가 보다. 제비집을 지을 곳을 탐색하러 바삐 날아다닌다. 할머니네 집 현관 안에까지 여러 번 드나든다. 서울에선 제비를 보지 못한 것 같은데.
한참을 얘기했다.
밥을 먹기 전에 대청소를 하자는 이모의 의견에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모는 화장실 청소를 하시고 주희 언니랑 나는 안방과 거실의 물건들을 끄집어내어 먼지를 제거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밀었다. 이불이랑 요도 마당으로 꺼내서 먼지를 털고 무거운 카펫들도 모조리 꺼내 먼지를 탈탈 털었다. 양말이 새까매지고 나서야 청소가 끝났다. 할머니도 깨끗한 방이 맘에 드신 지 싱글벙글 웃으셨다. 이모 말씀으론, 할머니는 옛날에도 밭일에만 관심이 있고 청소는 다 이모에게 시켰다고 한다. 삼촌들은 남자라서 청소를 시키지도하지도 않았고 우리 엄마는 항상 어디론가 도망가서 이모가 거의 혼자 다 했다고.
대청소를 끝내고 먹는 점심. 할머니가 바지락 넣고 끓이신 김치찌개에 이모가 직접 채취한 고사리로 만든 육개장까지. 과자 먹고 떡 먹고 청견 먹어서 배 부른데 계속 더 먹으라고 떠 주신다. 밥 두 공기를 뚝딱했다.
밥을 먹고 주희 언니랑 나는 밖으로 나왔다. 정말 놀랍게도 이 시골에 내가 찾은 카페만 두 군데다. 몇 년 전만 해도 경운기랑 트럭만 다니고 옛날 집들밖에 없었던 곳인데 동네에 하나 있는 슈퍼에 가려면 길 끝까지 가야 했던 곳인데.. 카페라니. 격세지감이다. 우리는 그 카페를 구경하러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화려한 야생화들을 만나고 엄마가 다녔을 조수 국민학교를 지나고 할머니가 요즘 다니시는 노인정도 지났다. 우리가 들어간 카페는 유람이라는 곳인데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도 정말 관광지가 되었구나. 카페에는 책들이 가득했고 편하게 앉아서 즐길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아늑한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할머니 댁으로 돌아오는 길, 청보리와 강아지들, 여러 나무들과 꽃들을 만났다. 제주시와는 다른 조수의 공기와 분위기를 만끽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할머니랑 이모가 누워서 TV를 보고 계셨다. 나이가 들어도 엄마와 딸은 이런 모습인가 보다. 할머니보다 키가 더 큰 이모와 할머니가 나란히 누워 있는데 너무 보기 좋아서 카메라를 들었다. 할머니는 쑥스러워하시면서도 은근히 사진 찍는 것을 즐기시는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더 많이 웃으시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 할머니에게는 우리와 함께하는 지금의 기쁨을 우리에겐 미래의 추억이 될 보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쉬지 않고 할머니의 지금을 사진에 담았다.
우리가 5시 즈음 할머니 집을 떠날 때, 할머니는 오늘도 된장이며 나물이며 얼린 귤이며 아주 한 가득 싸 주셨다. 그리고 아쉬운 표정으로 우리를 배웅하셨다. 할머니랑 함께 살 수 있으면 그런 아쉬운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될 텐데 뭔가 마음이 아프다.
오는 차에서는 이모의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엄마의 할아버지는 무려 세 분이랑 결혼하셨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 할 남아선호 사상과 남존여비를 알 수 있었다. 본처가 남아를 못 낳자 두 첩을 두셨다고 한다.(첩이라는 단어가 싫지만...) 근데 마지막 첩이 본처를 쫓아내고 본처의 아이들을 괴롭혔다. 그 후, 믿기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 첩의 3대가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다 같은 장소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분의 업보가 후손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이모의 이야기에 소름이 돋았다. 무슨 전래동화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모두 두 번째 결혼이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너무 인색해서 첫 번째 부인에게 이혼을 당하셨고(그 옛날에 이혼을 요구한 그분은 정말 신여성이다.) 할머니의 첫 남편은 폐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아버지 동생의 아내 분이 미모의 과부였던 할머니를 할아버지께 소개해드렸고 두 분은 그렇게 결혼하셨다. 오늘 처음 들은 이야기라 무척 놀랐다.
이혼까지 당했던 할아버지의 인색함 때문에 할머니는 평생 자기를 위해 돈을 써본 적이 없으시다. 평생 일만 하셨고 그래서 지금도 그게 습관이 돼서 쉬지 않고 일을 찾으신다. 제주도, 작은 마을 조수에서 평생을 그렇게 일만 하신 우리 할머니.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그 넓은 세상을 한 번도 보지 못 하셨다. 그런 할머니가 너무 가엽다. 너무 착해서 많이 당하시기만 했다고.. 할머니 가슴속에는 억울함과 풀지 못한 응어리들이 가득할 것 같다. 지금이라도 우리랑 같이 여행 다니시면 좋은데 조금만 차를 타셔도 힘드시다고.. 내가 여기에 있을 동안이라도 할머니를 자주 찾아뵙도록 해야겠다. 우리 할머니... 너무 가엽다ㅠ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 외에도 과수원 이야기, 이모랑 엄마의 학창 시절 이야기, 사촌 오빠의 여자 친구 이야기, 취업 이야기, 인생의 가치 등 오는 내내 대화가 끊어지지 않았다. 오늘 하루,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금쯤 우리 할머니는 뭘 하고 계실까. 할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다. 할머니가 건강하셔서 우리와 더 많은 행복을 만드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