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날 동안 퇴사가 마려웠다./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게 퇴사라고?/아니, 생계인에게 퇴사는 시원하게 배출 못하는 변비처럼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만성변비 환자가 무기력하게 변기에 앉듯, 꾸역꾸역 출근을 했다./머릿속을 계속 맴도는 멜로디. 나도 모르게 읊조리고 있는 노랫말./도망가자.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말자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너라서 나는 충분해
나를 봐 눈 맞춰줄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멀리 안 가도 괜찮을 거야
너와 함께라면 난 다 좋아
너의 맘이 편할 수 있는 곳
그게 어디든지 얘기 해줘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가보는 거야 달려도 볼까
어디로든 어떻게든
내가 옆에 있을게 마음껏 울어도 돼
그 다음에
돌아오자 씩씩하게
지쳐도 돼 내가 안아줄게
괜찮아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나만은 너랑 갈 거야 어디든
당연해 가자 손잡고
사랑해 눈 맞춰줄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선우정아 님의 <도망가자>-
정확히는, 퇴사를 원하는 게 아니다.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워라밸과 이 정도의 월급과 이 정도의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 나쁘지 않은 삶이다. 그러나 지금은 도망가고 싶다. 내가 있는 이곳을 떠나,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주만 도망가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그냥 떠나고 싶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다.
많은 현자들이 "지금"을 살라고 했지만, 지금의 나는 "지금"에서 도망가고 싶다. "지금"이라는 시공간에서 벗어나고 싶다. 무거운 군장처럼 지고 있던 지금의 고민과/ 지금의 무료함과 /지금의 답답함을 내려놓고 다른 시공간에 가 있고 싶을, 그뿐이다.
모든 걸 다 버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떠날 생각은 없다. 완전한 도피, 온전한 도망을 원하는 건 아니다. 나는 나와 내 삶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니까. 나와 관계된 사람과 사회를 완전히 끊어내고 싶은 것은 아니니까. 이 삶이란 게 분절되지 않아서 도망 이후의 삶도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삶이란 걸 아니까. 그래서 나에게 필요한 건 단지 "잠시만". 잠시만 내게 시간을 주길 바랄 뿐이다. 잠시면 된다. 영원을 바라는 게 아니다. 내가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다시 지금으로, 다시 여기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을 주길 원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잠시만" 도망가는 걸 택했다. 불완전한 도망, 잠시의 도피, 그거면 충분하다.
<도망가자>의 작곡가 선우정아 님은 본인이 힘들었던 시기, 사랑하는 이가 자기와 함께 도망가자고 말했던 그 기억과 감정을 노래로 풀어냈다고 했다. 그런데 내게는 이 노래가, 내가 나에게 건네는 위로로 다가왔다. 너무 힘들 땐 도망가자고. 나는 너가 다 내려놓고 도망가도 함께 가줄 거라고. 너가 그럴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러니 도망가고 싶을 땐 언제나 말하라고. 내가 나에게 하는 위로로 들렸다. 원래 쉽게 포기하고 쉽게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아니까(엄마는 이걸 신뢰 마일리지라고 말씀하신다. 항상 나에 대한 신뢰 마일리지가 있기 때문에 나의 일탈을 응원한다고.) 그런 마음이 든다면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그래서 나는 내게 "도망가자"고 했다.
내가 그토록 외치고 다녔던 도망. 이상하게도 딱 떠오르는 구체적인 대상이 없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그렇게 도망가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이 나를 그토록 힘들게 하고, 숨통을 조였던 것일까. 실체 없는 답답함과 억누름, 터져버릴 듯한 무료함과 불안이 한데 섞여서. 상상의 괴물을 만들고 있었던 것일까. 잠시의 도피 시간, 나는 나의 숨통을 누르는 그 괴물을 마주한다. 내가 왜 이렇게 도망가고 싶은지, 나는 무엇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솔직한 나를 만난다. 부풀려진 괴로움을 확인한 후, 한결 가벼워졌다. 도망 오길 잘했다.
내 영혼이 나를 잘 따라오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 그전에,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잠깐 나를 기다려준다. 윷놀이에서 잠시 앞서 나가는 말을 멈추고 뒷말을 움직여 겹쳐질 때까지. 두 말이 업히면 그다음은 수월하다. 더 빠르게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퇴사 같은 완전한 처방이 아닐지 모른다. 우리에겐 단지 "잠시만"이 필요할 뿐이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산업화 시대 이래, 우리에게 "잠시만"은 비싼 옵션이다. 잠시 멈추는 것. 컨베이어 벨트가 몇 초만 멈춰도 손실이 크다. 물류센터에서는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이 게으름으로 간주되는 시대다. 잠깐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멈춰 생각해보면, "잠시만"을 포기했을 때의 기회비용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잠시만이 없다면, 숨을 고를 시간이 없다면, 뒤를 돌아보고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면 ,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거나 무너지거나 전체를 소실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잠시만"이 희박해 큰 사회적 손실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의 리듬에 몸을 싣고 폭주하다 보면 "잠시만"을 잊게 된다. 무언가 계속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린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잘하고 있는데도 계속 나를 채찍질한다. 잘 쉬지 못하는 병. 우리는 이것을 "특목고병(病)"이라고 부른다. 특목고 시기를 함께 한 동창들을 만나면 우리는 여전히 열심히 살면서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서로에게 "특목고병(病)"이 도졌다고 한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그만 좀 열심히 하라고. 의식적으로 휴식을 취하라고 자조 섞인 위로를 건네곤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열심히 병(病), 이건 몸이 고장나봐야 진단받으러 갈 생각이 든다.
돌아오자.
애초에 완전히 떠날 계획이 아니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현실에 발을 굳건히 딛고 서서 내 한 몸 건사하고, 일상을 나답게 살아가는 것. 그러기 위해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 것.그거면 됐다. 돌아오자. 다시.
잔 생각)
잠시 일상을 떠날 때면 이해인 수녀님의 <휴가 때의 기도>를 꺼내 읽는다.
"저희의 휴가도 게으름의 쉼이 아닌
창조적인 쉼의 시간으로 의미 있는
하얀 소금빛 보석이 되게 해주십시오
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여 주시고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다양성을 이해하게 해주시며
때로는 새소리, 바람소리에 흠뻑 취하는 자유의 시인이 되어보고
별과 구름과 나무를 화폭에 담아보는 화가의 마음을 닮아 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숨겨진 보물을 새로이 발견하고 감탄하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살던 아름다움의 발견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들도
문득 자신의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즐거이 봉헌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휴가의 순례길에서 저희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좀더 고요하고 슬기로운 사람으로 새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넓디넓은 바다에서는 끝없이 용서하는 기쁨을 배우고
깊고 그윽한 산에서는 한결같이 인내하는 겸손을 배우며
각자의 자리에서 성숙하게 하십시오.
항상 곁에 있어 귀한 줄 몰랐던 가족, 친지, 이웃과의 담담한 인연을
더없이 고마워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은혜로운 휴가가 되게 해주십시오. "
내가 바라는 쉼/여행/휴가의 모습이다. 게으르게 흘려보내는 쉼이 아닌 둔해진 오감을 활성화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정화하고, 고마움과 사랑을 끌어올리는 창조적인 쉼. 그런 쉼이야말로, 지금까지 버겁게 느꼈던 운해 가득 낀 일상을 뚜렷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내가 있던 곳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며, 삶을 기꺼이 감당하고자 하는 용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