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벗어나기
혼자 살게 되면서 깨닫게 된 새삼스러운 점 중 하나는, 바로 하루 세끼를 챙겨 먹어야 한다는 법은 따로 없다는 것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에는 집에 있으면서 끼니를 거른다는 게 굉장히 특별한 일인 것처럼 다루어졌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든가, 아프다든가 정도의 일이 아니면 ‘그래도 한 숟갈이라도 먹어’라는 말에 어김없이 식탁 위에 앉곤 했기 때문이다.
사실 식사를 해야 좋은 특정한 시간도, 먹어야 하는 메뉴도 획일화되어 정해진 것은 없다. 스스로가 원하면 아침으로 8시부터 삼겹살을 구워 먹어도 되는 것이고, 점심부터 와인과 스테이크를 먹어도 괜찮으며 저녁으로 밤 10시에 브런치(토스트+계란+베이컨) 메뉴를 먹어도 무방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본인의 생활 패턴과 리듬에 달린 것이지만, 사실 이건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해야 하는 삶이라면 마냥 멋대로 하긴 어려운 영역이다.
이런 깨달음 이전에 한 가지 집착하던 것이 있었다면 바로 외식을 할 때에는 반드시 ‘특별하게’ 한 끼를 먹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외식으로 한정되었던 이유는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집밥은 너무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지금은 집밥 메뉴가 그리워서 매일 헤매고 다닌다.) 하여 가족끼리 외출했을 때 밖에서 식사를 해야만 하는 경우라든가, 누군가와 여행을 가서 식사를 할 때에 이 유난스러움 때문에 메뉴를 정하거나 식당을 알아보는 것은 보통 나의 몫이었다. 심지어 초등학교 시절에도 푸드코트에서 신중하게 메뉴 고르느라 혼자 5분 이상씩 고민하기도 했고 나의 이 유별난 태도는 가족 및 친척들 사이에서 나름 알아주던 부분이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메뉴를 잘 고르지 ‘못하는’ 것이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친척 언니와 함께 갔던 여행에서, 저녁을 위해 찾아간 식당 음식들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사과를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친척 언니는 뭐 그냥 먹으면 되지 이런 거로 미안해할게 어딨냐고 하였고, 그 말에 그래도 한 끼가 망쳐지면 속상하지 않냐는 나의 물음에 언니는 이렇게 답하였다.
그냥 배고픔을 채우는 게 끼니인 거지, 매번 뭔가 맛있는 거나 특별한 거를 먹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유난히 네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긴 하더라.
너무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나는 새삼 유레카스러운 이야기였다. 국어사전을 보면 끼니라는 것은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 또는 그렇게 먹는 일’로 정의된다. 그냥 식사를 하는 행위일 뿐이었다. 허기를 달래고 하루를 지내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 1차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지, 매번 의미를 부여하고 특별함을 찾는 것은 부가적인 이슈였었다. 그래서 저 이야기를 들었던 여행에서는 그 뒤로 정말 편하게 식당을 찾고 그냥 적당히 맛있어 보이는 메뉴를 먹었다. 방콕에서, 몰 안에 있는 햄버거집을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는데 참 맛있고 푸짐했다.
이젠 끼니를 챙긴다는 것은 살아가기 위해 꼭 해야 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마치 숨을 쉬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은 필수 요소인 것이다. 우리는 나의 컨디션이나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 이 두 가지를 컨트롤하려고는 하지만, 늘 ‘더’ 멋진 숨을 쉬기 위해서나 ‘더’ 만족스러운 잠을 자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일상에 편하게 녹아들 행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는 ‘적당한’ 끼니를 먹기 위한 노력만 해보았다. 점심에는 본가에서 공수한 반찬 2종과 햇반, 그리고 저녁으로는 사과 한 개와 단백질 쉐이크. 이 정도면 충분히 여름을 대비하는(이미 여름이기에 망했을 수도 있는...) 절제된 하루였다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