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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09. 2020

냉동실을 가득 채운 통 큰 선물

얘들아 고마워!


2018년 7월 25일.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 해 여름은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경험했던 가장 더운 여름이었고 하필이면 그때 조단(현재의 남편, 당시 남자 친구)이 한국에 있었더랬다. 6월 초에 한국에 도착한 조단도 그를 초대한 나도, 한국이 그 뜨거운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의 여름보다 한 수 더 뜰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조단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점심때 즈음에 집에 도착하였고 내가 정성스레 준비한 식사를 함께 한 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누가 현관문을 쾅쾅 두드렸다. 곧이어 들려오는 한 남성의 목소리. “택배요!” 그 말과 함께 짜증 섞인 욕인지 뭔지 모를 투덜거림이 이어졌다.


아니, 멀쩡한 현관 벨을 두고 왜 문을 두드리고 난리야? 그리고 욕은 왜 하는 거야?


처음 겪는 일이라 살짝 당황을 하며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어보았다. 문 앞에는 흰색 스티로폼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 문을 두드렸던 아저씨는 씩씩 거리시며 저만치 가고 계셨다. 한 손에는 상자를 싣고 왔던 끌개(?) 같은 도구가 들려있었다. 뒷모습만 얼핏 보아도 연세가 좀 있으신 분 같았다. 나는 눈길을 박스로 돌렸고 그 큰 물건을 움직여 보았다.


어머, 무슨 상자가 이리도 큰 거야? 아휴, 무거워서 난 안 되겠다. 자기~~~!


조단이 와서 상자를 끌어서 현관으로 옮겼다. 조단이도 꽤나 무거운지 낑낑대었다. 지금까지 내가 받아 본 택배 상자 중에 이렇게 큰 건 처음이었다. 그제야 그 택배 기사님이 이해가 되었다. 최고로 더운 날에 이렇게 무거운 걸 옮기셨으니 욕이 절로 나올만했다. 나라도 욕을 했을 것 같은 크기이고 무게였다. 덩치 좋고 젊은 조단에게도 쉽지 않은 건데 연세 드시고 바싹 마르신 분이 옮기셨으니 여간 고생이 아니셨을 것 같았다.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근데, 이 안에는 도대체 뭐가 든 거야?


발신자를 확인해 보았다. “헐, 설마?” 하며 가위를 가지고 와서 스티로폼 상자를 조심히 열었다. 두구두구두구. 상자가 열렸다. 순간 조단과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어.....라는 소리만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크디큰 상자는 여러 종류의 하겐 00 아이스크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가운데 커다란 얼음 한 덩이와 함께 그제야 수진(가명)이가 며칠 전에 전화를 해서 한 말이 생각났다.


언니, 25일 오후에 집에 있을 거죠? 그 날 택배가 도착할 거예요. 아이스크림은 녹으니까 언니가 직접 받아야 해요. 알겠죠?








조단이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나의 친구들과 언니, 동생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우리를 식사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린다가 그동안 그렇게 고생을 해서 힘들게 모셔온 남자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몹시들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맙게도 다 들 조단을 환영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시작은 나의 절친 은진(가명)이었다.


토요일 오후에 한국에 도착한 조단을 일요일 저녁에 은진이와 함께 만났다. 도봉구에 사는 은진이가 우리 동네까지 찾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줄 없이 못 들어가는 그 유명한 금돼지 식당에서 쫄깃쫄깃한 오겹살과 소주로 조단을 환영해 주었다. 다음 날 조단이 학교에 가면 필요할 학용품도 한아름 선물로 주었다. 나의 최애 장소인 약수 파전에서 전이랑 막걸리도 마셨다. 조단은 둘 다 맛있는데 소주가 좀 더 자기 입맛에 맞다고 했다. 당시 나는 소주를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은진이와 조단 둘이서만 한 병을 마셨더랬다.


두 번째 모임은 며칠 뒤인 수요일 저녁에 을지로에서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을지로 3가에 내리자, 태어나서 이렇게 모던한 건물을 처음 맞이한 조단은 시청과 높은 건물들 사진을 마구 찍기 시작했다. 화려한 도시 중앙에 둘러싸여 살짝 흥분을 한 조단은 걸음걸음마다 사진을 찍느라 이동이 느려졌다. 그래도 약속기간보다 일찍 나온지라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도시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어느 유명한 한우 고깃집이었다.


쿠바에서는 소고기 판매가 공식적으로 금지가 되어있고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소고기를 구해서 먹어보면 질기기가 흡사 고무와 같아서 씹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조단에게 소고기란 질건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질긴 소고기도 없어서 못 먹었더랬다.


그런데 그 날 고깃집 이모님이 숯불에 살짝 구워서 주신 한우를 처음으로 맛 본 조단은 깜짝 놀래버렸다. 소고기가 이리도 부드러운 고기라는 걸 생전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진정한 소고기의 세계로 입문하는 순간이었다. ‘고기가 입안에서 절로 녹는다’라는 걸 경험하게 된 그는 “너무 맛있어요!”를 연발했고 그 모습에 신이 난 친구들은 계속 추가로 주문을 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고마우면서도 괜히 미안해서(시작이 살치살이었다) 고기를 그리 많이 먹지 않았다.(원래도 난 많이 먹지 않았다) 다행히도 조단은 생각보다 고기를 많이 먹지 못했고 혼자서 한 삼인분 정도를 먹고 난 후 배가 부르다며 그만 먹겠다고 했다. 고기가 남아있었는데도 말이다. 요즈음에도 가끔 한국에서 처음으로 한우를 먹었던 때를 추억 삼아 얘기를 하곤 한다. 그리곤 미소를 지으며 입맛을 다시는 표정을 짓는다. 그때의 신선한 충격은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력했던 것이었다.


주말에는 대구에서 친구가 올라왔다. 그래서 당시 핫했던 종로 3가에 위치한 ‘익선동’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전에 종로에서 일을 했던 나는 그 동네뿐만 아니라 웬만한 서울의 핫 플레이스와 맛집을 꿰고 있었더랬다. 익선동에 처음 와 본 나의 친구들도 조단도 한옥 인테리어로 전통적인 듯하면서도 모던하고 감각적인 그곳을 아주 좋아했다.


우리는 한옥 인테리어의 퓨전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각종 맥주가 조금씩 나오는 샘플러를 시켜서 다양한 수제 맥주 맛을 보았고 이것저것 시켜서 다 함께 나눠 먹었다. 미영이(가명)는 뭐든 잘 먹고 양도 많은데 반해 지수(가명)와 나는 적당히 먹고 양도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결국 조단과 미영이의 활약으로 식사를 잘 마친 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할 말이 많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조단은 우리가 편히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밖에 나가서 구경을 하고 오겠다고 했다.


샘플러 수제 맥주세트와 첫 번째 음식


동창모임에서 지수와 나만 싱글이었는데, 지수와 나는 결혼에 관심을 접고 우리 둘이 재밌게 싱글라이프를 즐기기로 했었다. 그런데 조단을 만나고 내가 그 걸 깨어버리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지수는 조단과의 만남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약간 서운한 듯했다.


“가시나 대단타. 14살 연하를 그것도 쿠바 사람을! 어떻게 만난 건데?”


(이런저런 질문과 답변들)


“근데 조단은 어린데 오빠같이 듬직해 보이고 착해 보인다. 둘이 잘 어울리네. 잘됐다. 축하한데이!”


학교 다닐 때부터 친구들 중에서 가장 예뻐서 눈에 띄었던 지수는 미모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곱고 일도 잘하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친구이다. 지금도 아주 우아하면서도 고운 그녀는 많은 남성들에게 설레움을 안겨 주었지만 정작 그녀의 마음에 쏙 드는 남자를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지수는 남자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지수도 나처럼 여행을 좋아했는데 항상 회사에서 친한 동생이랑 가거나 언니와 함께 가니 일이 생기려야 생길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지수 맘에 꼭 드는 반쪽을 만날 테다.


한창 셋이서 깔깔대며 수다를 떨고 있는데 조단이 얼굴에 함박웃음을 띄우며 들어왔다.


“자기, 여기 너무 좋아. 그리고 나 친구 생겼어. 이것 좀 봐!”


하더니 핸드폰에 있는 갤러리에서 어느 한복 입은 젊은 남자와 찍은 사진과 익선동 여기저기를 담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역시 조단은 초록을 좋아했다. 그리고는 그 한복 입은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나라에 와서 혼자 나가서 친구까지 만든 조단이 대견스러웠다.(그 젊은이와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이었지만)


우리 넷은 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함께 익선동을 구경하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는 지수는 서울역으로 향하였다. 결혼해서 서울에 살고 있는 미영이와 나는 전철역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월요일부터 또 다른 만남들이 이어졌고 그 만남은 6월에도 7월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7월 19일에 강남에서 일을 하는 수진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 조단과 결혼을 하기로 확정이 된 상태였다.


“언니, 형부 한국에 왔다면서요? 나도 만나야죠. 언니랑 형부 언제 시간 되세요?”


그렇게 해서 강남역의 한 삼겹살 식당에서 수진이를 만났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고기도 잘 굽고 소주 마시는 게 일품인 수진이와 조단은 술잔을 스스럼없이 잘 부딪쳤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하다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말을 했더랬다.


“조단이가 베스킨 000에 첨 간 날 눈이 휘둥그레져가지곤 얼이 빠졌다는 거 아니야. 쿠바엔 고작해야 바닐라, 딸기, 초콜릿 세 가지 맛인데 서른 한 가지 맛이 한 자리에 있으니 기절할 뻔한 거야. 하하하”


“어머 언니, 형부 아이스크림 좋아해요?”


“응, 정말 좋아하지. 난 울 동네에 6년을 살면서 베스킨 000 한 번도 안 가 봤는데 요새는 조단이 때메 거길 다 간다니까.”


“언니, 형부가 아이스크림 좋아한다니까 형부한테 선물 좀 보내야겠어요. 우리 회사에서 하겐 00 수입하잖아요. 언니 내가 며칠 내로 전화하면 언니 집주소 바로 불려줘요.”


“올~정말? 너무 고마워 수진아!”


조단이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조단이가 두 손으로 수진이 손을 잡고는 “오~수진,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고개를 꾸벅꾸벅하며 수진이에게 인사를 하였다.








수진이는 당시 미국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회사에서는 하겐 00 아이스크림 외에도 이것저것 수입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며칠 후 수진이에게서 전화가 왔고 그녀는 택배 받을 우리 집 주소를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수진이가 아이스크림을 보내준다길래 그냥 몇 통 보내줄 거라고 생각을 하곤 부담 없이 주소를 알려 주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통이 큰 수진이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조단이를 위해서 한 궤짝을 보낸 것이었다.


다행히도 냉동실을 정리해 둔 상태였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아이스크림이 다 냉동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머릿속에서 계산을 한 후 차곡차곡 냉동실에 넣기 시작했다. 양이 너무 많아서 쉽지 않았지만 결국 하나도 빠짐없이 다 넣을 수가 있었다. 냉동실은 아이스크림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조단은 매일 조금씩 먹으면서 냉동실 자리를 넓히려고 하였다. 하지만 워낙 양이 많아서 쉽사리 줄어들지가 않았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가끔만 먹었기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좌) 스티로폼 박스 안 아이스크림 / (우) 냉동실 안 아이스크림


그때부터 내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조단이가 냉동실을 열어 하겐 00 아이스크림을 보여주며 디저트로 어떤 걸 먹고 싶은 지 물어보았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살면서 조단의 소유물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이 아이스크림은 온전히 그의 것이었기 때문에 편안하게 인심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내 친구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줄 때마다 신이 난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해서 두 달 정도가 지나자 아이스크림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결국 냉동실은 다시 다른 음식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꽤나 오랫동안 아이스크림이 냉동실에서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많은 선물을 주고 많은 선물을 받아 보았지만 수진이가 형부를 생각하며 보낸 통 큰 아이스크림 선물은 아마도 아이스크림만 보면 떠오르는 트라우마처럼 우리 뇌리에서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고마워 수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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