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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14. 2020

두려움이 없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도장깨기 하듯 두려움을 하나씩 부시고 싶다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였을 때 물을 보면 신기하게도 그 많던 스트레스가 물에 다 흘러 녹아내리듯 사라져 버렸다. 물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물 옆에만 있어도 힐링이 되었다. 사람들이 산과 물,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나는 머뭇거림 없이 물을 택했다. 산도 좋아하지만 그 좋아하기가 물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휴가도 섬나라로 많이 갔더랬다. 그리고 지금 나는 섬나라에 살고 있다. 물을 참 많이 좋아했고 지금도 변함없이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물이 두렵다. 수영도 잘 못한다. 늘 바닷가로 휴가를 갔고 멋진 수영장을 갈 기회도 종종 있었는데 수영을 못하는 나는 그저 선탠만 할 뿐이었다. 휴가의 묘미는 바닷가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선탠 하는 거라고 위로를 하면서 말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수영장이나 바닷가에 풍덩 뛰어들어 멋지게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몹시나 부러웠다. 특히나 몇 해 전 스위스의 취리히에 갔을 때 도시 한가운데 있는 공공 수영장에서 너, 나 할 것 없는 수많은 이들이 물에 첨벙 뛰어 들어서 수영을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수영을 못 하고 그들을 바라만 보고 있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여겨졌다. 스위스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신들은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모두 수영을 배웠다고 했다. 키프러스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람선을 바다 한가운데에 세우면 모든 이들이 순식간에 첨벙 하면서 물속으로 점프를 하고 수영을 하며 물을 맘껏 즐기는 데 나만 혼자 덩그러니 배 안에 남아서 그들이 즐기는 모습을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어느 날 마음을 먹고 수영장에 등록을 했다. 일주일에 두 번 회사를 마친 후 수영장에 가서 배우는 단체반이었다. 보조판을 잡고 할 때에 나는 아주 열심히 했다. 두 명씩 대결을 시키면 무조건 이겼다. 요령 있게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경쟁심 때문이었다. 그런 식으로 수영을 했더니 수업이 끝나고 나면 녹초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단체로 수영을 하다 보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내 자세가 괜찮은 건지 알 수가 없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지지 않고 잘하려고 용을 쓰는 내 모습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결국 두 달 정도 다니다가 그만두게 되었다. 첫 번째 수영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났다.


다음 해에 또다시 도전을 하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 내리라는 큰 마음을 먹고 다시 한번 시도를 해 보았다. 하지만 또다시 결과는 실패였다. 같은 방법을 또 적용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두 달도 채우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데 나는 왜 두 번씩이나 실패를 할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곳에서(그들은 나에게 신경도 안 썼겠지만) 나는 자유롭지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단체 수업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 방식으로는 도전을 하고 또 해도 나는 계속 음파에서 헤매면서 그 단계를 넘어가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고 개인 교습을 알아보았다.


한 애플리케이션에서 여자 선생님이 일대일로 수영을 가르쳐주는 것을 발견하였다. 총 5회 동안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선생님 말로는 다섯 번을 배우면 수영의 기본은 할 수 있다고 해서 신청을 했다. 내가 물에 빠져 죽는 일이 없도록 선생님이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을 하는 개인 수업이 좋았다. 물을 계속 먹으면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몸에 힘을 빼고 반복을 해 보았더니 결국 나는 음파 단계를 벗어나는 데 성공을 하였고 다섯 번의 수업 끝에 자유형과 배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보조판 없이 그냥 물에 떠서 레일을 왕복을 하는 나를 보면서 어찌나 뿌듯하고 기뻤는지 모른다.


다섯 번의 수업을 마치고 자신감이 붙자 친구가 일 하는 학교의 수영장에 함께 가서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사람들을 인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별로 없으면 편하게 수영을 할 수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많으면 나는 괜히 민폐를 끼치는 것 같은 생각에 선뜻 출발을 할 수가 없었다. 잘하던 못하던 다른 사람에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묵묵히 해야 하는 데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긴장이 되어서 나는 그게 안 되었다.


그러다가 쿠바에 왔다. 이 곳에는 마실 물은 한정적이지만 수영을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수영할 곳을 가까이에서 찾을 수가 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장소는 바다이고 호텔 수영장의 경우는 실외 수영장이다. 실내 수영장은 이 곳에서 아직 본 적이 없다.


수영장에서 겨우 음파를 떼고 기본적인 수영을 하는 내가 바다에서 수영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가장 쉬운 배영도 바다에서는 혼자서 할 수가 없었다. 학창 시절 때 수영선수였던 물개 같은 남편이 옆에서 잡아 주면 겨우 할 정도였다. 물속, 특히 바닷속은 나에게 아주 두려운 존재였다.






대학교 일 학년 때 여름방학이었다. 엄마 몰래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곳에서 알게 된 한 오빠와 골프장 캐디였던 그의 여자 친구와 함께 택시기사였던 오빠 친구의 차를 타고 새벽에 시속 140km로 고속도로를 달린 적이 있었다. 택시 기사 오빠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틀자 우리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다 잠시 후 차가 공중에서 붕 돌고는 물속으로 내동댕이쳐 버렸다.


내 몸은 점점 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엉덩이가 차가워지면서 그 물이 가슴팍으로 올라오고 목을 지났다. 순간 엄마, 아빠의 모습이 떠 올랐다. ‘다음 날 사망 사고로 이 소식이 신문에 실리고, 내가 이런 언니 오빠들(당시에는 ‘껄렁하다’고 불리었다)이랑 놀다가 죽은 걸 알면 엄마 아빠가 나한테 실망하실 텐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남과 동시에 차가운 물이 내 머리 위를 다 덮어버렸다.


그러다 잠시 후 나는 그곳에서 낚시를 하던 아저씨들에 의해 구조가 되었다. 저수지에서 새벽 낚시를 하던 아저씨들은 차가 돌진하는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고 말해 주셨다. 아저씨들 덕분에 우리는 모두 목숨을 구했고 나는 언니 오빠들과 함께 그들의 숙소에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씻고 옷을 말리고 잠을 청했다. 내 생애 첫 미통보 외박이었다.


다음 날 오후에 엄마에게 혼날 각오를 하고 집에 도착을 했는데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닭죽을 해 주셨다. 평소 같았으면 이것저것 물어보시며 난리가 났을 터인데 너무 조용했다. 그래서 나도 아무 말씀을 드리지 않았고 그렇게 그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물을 두려워하는 게? 나는 인지를 하지 못하는데 내 안 깊숙한 곳에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계속해서 자리를 잡고서 나에게 물은 두려운 거라고 세뇌를 하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은 물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자동차도 두렵다.


남들이 나를 보면 “린다 너는 한 손으로도 운전하게 생겼는데 네가 운전을 못한다고? 그건 좀 놀랍다!”라고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운전면허증 1종 보통을 1997년도에 취득했으나 지금까지 운전대를 잡아 본 것은 도로주행 실습을 할 때 1톤 트럭 열 시간이 다였다. 그때는 옆자리에 강사님이 계셔서 편하게 운전을 할 수가 있었고 나름 재미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혼자서 운전대를 잡는 건 항상 두려움으로 다가와서 큰 오빠가 자신이 타던 차를 주겠다고 했을 때에 거절을 했더랬다. 그리고 난 늘 뚜벅이의 삶을 살아왔다.


나는 도시를 질주하는 차들이 너무 무서웠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끼어드는 차들도 무서웠고 창문을 내리고 다가와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는 운전자들도 무서웠다. 어두운 지하 주차장에 혼자 주차를 하는 것도 무서울 것 같았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던 탓일까?


하물며 내가 직접 운전을 하지 않고 조수석에 타고 있을 때 조차도 옆에 큰 트럭이나 큰 차가 와서 거의 붙을 듯 말 듯하면 ‘엄마야!’ 하면서 겁부터 먹으니 운전대를 잡았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결과가 보일 정도다. 운전을 해 보지도 않고 사고 날 것을 두려워하며 나는 차를 멀리했다.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게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가끔 혼자서 차를 몰고 바닷가로 가서 스트레스를 풀고 오고 싶을 때에는 운전을 못 하는 나 자신이 책망스럽기도 했다. 만약에 전생이 있다면 나는 혹시 끔찍한 차 사고로 죽었을까? 도대체 나는 차가 왜 이리도 무서운 걸까?라는 생각도 수차례 해 보았다.


나에게는 공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어릴 적부터 공놀이를 하면 공에 맞을까 봐 무서워서 공놀이를 싫어했다. 골프를 할 때에도 골프공에 맞기라도 할까 봐 봐 겁을 먹었더랬다. 그래서 나는 어떤 공이 되었던 공놀이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어두움도 두려웠다. 예전에 부모님과 함께 살 때, 밤에 화장실을 가려고 방에서 나왔는데 어둠 속에서 아빠를 보고는 놀래서 소리를 지르면서 주저앉아버린 적도 있었다.


모든 죽은 것들과 동물, 식물, 물고기 할 것 없이 거대한 모든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스쿠버를 하며 물속에서 거대한 가오리와 거북이를 만났을 때에도 나는 몹시 두려웠다. 깊은 물 속도 물론 두려워서 반드시 누군가의 손을 잡고 가야 했다.


그리고 친구와 승마를 해 보겠다며 등록을 하고도 말이 무서워서 결국 세 번만에 그만 두기도 했다. 말 얼굴이 너무 커서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숲 속에서 만나는 아주 큰 나무도, 잎이 굉장히 큰 식물을 보아도 두려운 마음에 가슴이 떨려왔다. 큰 개나 큰 짐승들은 말할 것도 없다. 고요함 속에서 들리는 소리도 두려웠다.


이렇게 많은 두려움을 안고 그동안 참 잘 살아왔다. 최대한 두려움과 부딪치지 않고 두려움을 피해 가면서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남은 평생도 계속해서 이렇게 살아도 될까? 아니면 어떻게든 하나씩 극복을 하며 좀 더 내 역량을 키워보는 게 좋을까?








몇 년 전에 셰릴 샌드버그의 ‘린 인(Lean In)’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셰릴이 페이스북에 처음으로 방문을 했을 때 페이스북의 벽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다고 했다.



두려움이 없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인간은 두려움으로 인해서 포기하는 것이 아주 많다고 한다. 그리고 두려움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자신이 원하는 걸 성취한 사람들을 보면 극심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씩 이루어 낸 사람들이다. 이제는 두려움의 종류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고 앞으로 더 많은 새로운 두려움들이 나와 우리에게 닥쳐올 것이다. 현재 우리가 바이러스에 두려움을 가지는 걸 보면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다. 그 두려움으로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우리의 두려움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기도 한다.


지금 내가 직면하고 있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곰곰이 살펴보아야겠다. 사람일까, 로봇일까? 기계일 수도 있고 미디어일 수도 있다. 공기일 수도 있고 바이러스 일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도대체 어떤 두려움이 지금 나를 막고 있을까?

그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두려움이 없다면 무엇이 가장 하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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