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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Dec 19. 2020

쿠바댁 린다 한국에 오다

보고 싶었어요!


지난주 토요일 이 시간 저를 태운 대한항공이 인천공항에 스르르 미끄러져서 안전하게 착륙을 하였답니다. 비행기의 작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한국은 새벽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아 아직 깜깜했고 반짝반짝 불빛들만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어요.



아, 드디어 도착했구나!



쿠바에서부터 네 대의 비행기를 차례대로 타고 미국을 거쳐 30여 시간만에 도착한 2년 만의 한국이에요. 시국이 시국인지라 비행기의 좌석도 여유로웠고 항공업에 종사하시는 모든 분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기나긴 여행이 생각했던 것보다 편안했어요. 특히 미국에서 세 개의 공항을 거쳤는데 예전과는 다른 친절함에 감동도 했답니다. 물론 30시간이 넘도록 마스크를 벗지 못해서 귀가 몹시 아프긴 했지만 그건 이미 예상을 했던 일이라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인천공항에서 수속을 하고 쿠바에서 미리 예약을 해 두었던 방역 콜밴을 타기까지가 가장 정신이 없었지만 그 또한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어요. 살짝 어이가 없는 일도 있었지만 그런 일로 저의 기분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아 속으로만 욕을 한번 하고는 다시 웃었네요.


토요일 새벽인지라 도로에 차도 별로 없어서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할 장소에 두 시간도 채 안 되어 도착을 하였답니다. 저는 지금 강원도 시골의 어느 주택에서 자가격리를 하고 있어요. 한 지인께서 마련해 주신 곳이에요. 생각해보니 이번에 큰 신세를 지게 된 저의 지인도 브런치로 인연을 맺게 된 분이네요.


지난 2년간 쿠바에서의 삶을 돌아보면, 제 마음에 가장 깊이 남아있고 잘한 일이 브런치와 인연을 맺은 것이에요. 참으로 고마운 브런치입니다.


또한 제가 브런치에서 잠시 멀어져 있는 동안에도 꾸준히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새로운 독자분들께서 구독을 해 주시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린 저를 걱정해 주신 분들께 대한 감사의 마음은 표현하기가 몹시 힘드네요.








한국에 오니 기분이 좋네요. 사실은 억쑤로 좋아요. 이런 위험한 시국에 우여곡절 끝에 한국행을 결정했고 비자 문제로 남편은 쿠바에 두고 혼자 왔지만 그래도 오니까 너무 좋아요. 남편한테는 미안하지만요. 그 힘든 쿠바에서 그동안 어떻게 살았지? 하는 생각과 함께 한국에 있는 동안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려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그중에서도 부모님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네요.


한국에 오자마자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아요. 이제 차근차근 그분들을 만나서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코로나라는 복병으로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우렁각시 두 분께서 냉장고를 꽉 채워 놓으셔서 매일 요리를 하며 맛난 걸 먹고 편히 쉬며 무한정 연결되는 인터넷을 만끽하는 요즘입니다. 자가격리라기보다는 공기 좋은 강원도에 휴양을 온 기분이네요.


그동안 쿠바의 좁디좁은 부엌에서 없는 재료로 요리를 하다가 널찍한 부엌에서 넘쳐나는 재료를 보니 그저 행복할 뿐입니다. 두부, 애호박, 각종 버섯, 콩나물, 깻잎, 부산어묵 모두 쿠바에 없는 것들이에요.


두부된장찌개를 시작으로 버섯 두부전골, 콩나물 국을 해 보았어요. 된장찌개 외엔 처음 해 보는 것들이지만 그동안 쿠바에서 갈고닦은 요리 솜씨로 재료가 있으니 뚝딱 하게 되네요.


두부된장찌게, 콩나물국, 버섯두부전골

우렁각시님들께서 삼겹살과 횡성한우 그리고 춘천 닭갈비 양념이 되어 있는 것도 준비를 해 주셔서 혼자 아침부터 고기도 구워 먹었어요. 특히 횡성한우는 입에 녹네요 그냥. 소고기를 먹을 때에는 남편 생각이 나면서 참 미안하기도 했어요. 쿠바인들에게 소고기는 너무나도 특별하니까요.


노릇이 구운 삼겹살과 살짝 구운 횡성한우와 버섯 야채 모듬

무엇보다 신기한 건 그동안 잘 마시지 않았던 막걸리가 그렇게 맛있다는 거예요. 우렁각시님들께서 술도 종류별로 다 준비해 놓으셨는데 저는 막걸리에만 손이 가네요.(식사 때 반주로 한 잔 정도 하고 있어요)


좌측 상단 노란색이 제 입과 마음을 사로잡은 울금 막걸리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에는 눈까지 저를 반겨주어서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환영식을 하였답니다. 지금은 고요한 이 곳에 새소리만 들리는데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아침이에요.


간 밤에 다녀가신 동네 친구 고라니의 발자국이 보이네요:-)

남편이 전화 왔을 때 눈 내린 풍경을 보여주었더니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너무 예뻐! 를 연발하였답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 남편은 눈을 한번 보는 게 소원이었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11월 30일에 한국을 떠나게 되어 용평스키장에서 가짜 눈만 봤었더랬어요. 그것조차 너무 좋아서 흥분을 했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진짜 눈을 보면 얼마나 더 좋아할까요!


혼자만 좋은 걸 다 누려서 미안한데 남편은 제가 행복한 모습이 흐뭇한 지 맘껏 즐기라고 해요.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남편의 모습에 마음이 또 짠해집니다.


어제 오전에는 또 살짝 눈이 내려 며칠 전에 만들어 두었던 마당의 발자국이 하얗게 덮여서 다시 온 세상이 새하얘졌어요.


오늘은 고등어조림에 도전을 해 보려고 해요. 우렁각시님들께서 생고등어를 사 오셔서 얼른 먹어야 할 거 같아요. 새로운 도전에 기대가 되네요. 생선조림은 아직 한 번도 안 해 봤거든요.


이제는 여러분들과 같은 시간대여서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라고 인사도 맘껏 할 수 있어요.


저는 당연히 해야 하는 자가격리를 하고 있지만 많은 분들이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원치 않는 자가격리 중이시더라고요. 우리 모두 조금씩 더 조심하면서 힘든 이 시기를 잘 극복하길 바라봅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고요 저는 천천히 잠시 멈춤에서 벗어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 1차 코로나 검사에서는 음성이 나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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