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바댁 린다 Jan 14. 2021

머리를 잘라버렸다 싹둑!


이 글은 2020년 11월의 어느 날에 쿠바에서 써 놓았던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눈을 뜨니 새벽 5시 15분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싱크대 위쪽 벽에 걸려 있는 가위를 집어 들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남편은 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지라 남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화장실 문을 살그미 닫고 불을 켰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서 핑크 빛 빗을 들고는 머리를 빗었다. 머리를 몇 번 빗고 난 후, 나는 오른손에는 가위를 들고 왼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 잡았다. 정면에 있는 거울 속에서 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머리카락을 왼쪽으로 모아서 어깨 위로 성큼 잘랐다.


싹둑!


순식간에 잘린 머리카락 뭉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잘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잡고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머리카락을 모은 후 같은 길이로 또 잘랐다. 이번 머리카락 뭉치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내 생애 첫 번째 셀프 헤어컷이었다.



머리카락 뭉치를 휴지에 싸서 변기 위에 살포시 놓아두고는 따뜻한 물을 틀어 샤워를 했다. 머리카락이 아무래도 목덜미 쪽에 좀 떨어졌을 것 같아서 몸을 깨끗이 하고 싶었다. 성큼 자르고도 아직도 내 머리에 남아있는 머리카락은 제로 웨이스트를 위해서 도브 비누 하나로 모든 걸 씻는 나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조금만 비누칠을 해도 머리를 충분히 씻을 수가 있었으니 진즉 자를 걸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머리도 몸도 꼼꼼하게 씻고 열심히 헹구고 있는데 갑자기 온 세상이 깜깜해져 버렸다. 전기가 나간 것이었다. 아직 6시가 되지 않았고 남편은 꿈나라였지만 위급한 상황이라 애타게 남편을 불러대었다.


자기~~~~~


나의 애타는 외침에 남편이 금방 일어나서 화장실에 전등 하나를 놓아주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시작할 때가 아니라 끝날 때여서. 속도를 조금 빨리해서 샤워를 마무리했다. 남편이 주위를 살펴보더니 우리 집 전기만 나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건물 아래층에 있는 차단기를 확인해보겠다며 나간다고 했다. 순간 나는 혹시나 이상한 사람이 그곳에 있어서 남편을 해치지는 않을까 하는 이상한 생각이 떠올라 남편에게 몽둥이를 하나 가져가라고 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일까 아니면 쿠바의 상황이 나를 그런 상상력의 세계로 데려간 것일까?


남편이 내려간 지 잠시 후에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남편도 곧이어 돌아왔다. 내가 상상했던 이상한 사람 따위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단지 우리 집 전기 차단기만 내려가 있었다고 했다. 왜 우리 집 차단기만 내려간 거지? 하는 생각을 하며 드라이기를 사용하는 순간 차단기가 또 내려가 버렸다. 차단기 자체의 문제였다. 1년 2개월을 한 집에 살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문제들이 돌아가면서 나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집을 떠날 때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자연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고는 머리를 살며시 빗어 보았다. 여기저기 삐죽한 머리카락들이 보였다. 그런 아이들을 모두 찾아서 말끔히 정리해 주었다. 다행히 내 머리카락은 직모가 아니라 반곱슬이어서 굳이 딱 맞추지 않아도 단발머리가 제법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여기는 쿠바여서 아는 사람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잘 보일 사람은 더더욱 없으니 머리카락이 삐뚤삐뚤한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머리카락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생각 없이 자른 것에 대한 일말의 후회는 더더욱 없었다. 머리카락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길 테니. 내가 기술이 있어서 좀 더 짧게 잘랐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한때 나는 숏컷을 한 적이 있었다. 어릴 때 말고 나이가 들고 나서 내가 기억을 하는 숏컷은 두 번이었다. 한 번은 미국에서, 한 번은 한국에서였다. 미국에서 머리를 자른 건 2001년도였는데 그때에도 미국은 숏컷을 하는 게 꽤나 비싸서 50달러를 내고 컷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워 두상이 예쁘지 않은 데에도 나는 그  숏컷이 꽤나 마음에 들었었다. 미국에서의 숏컷이 내 생애 가장 짧은 머리였을 테다.


한국에서의 숏컷은 머리를 자를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었다. 간 수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몸 상태가 나빠지자 담당 의사 선생님이 주사를 매주 맞을 것을 제안했고 나는 그의 제안대로 매주 월요일이면 주사를 맞았었다. 그런데 그 주사는 아주 독해서 머리카락이 빠지고 근육이 아주 아팠다. 아픈 건 참으면 되었지만 머리카락이 빠지는 건 내가 가릴 수도 없고 참 난감하였다.


다행히도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제안하여서 당시 나는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갈 일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계속해서 빠지자 기분이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그래서 미용실을 갔다. 그리고는 머리를 잘라버렸다. 그것도 아주 짧게. 내 맘 같아서는 아예 밀어버리고 싶었는데 두상이 안 예뻐서 보는 이들에게 혐오감을 줄까 봐 그 건 차마 하지 못하고 거의 스포츠 수준으로 잘라버렸다.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관리였다. 짧은 머리는 그냥 가만히 두고 기를 수만은 없어서 4주 혹은 5주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야 했다. 그리고 조금씩 다듬어가면서 머리를 길러야 했다. 시간도 돈도 꽤나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그렇게 했다. 머리가 어느 정도 길어서 더 이상 미용실에 가지 않아도 될 때까지는.



한국에 있었으면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내가 스스로 머리를 잘라야겠다는 생각은 할 수 조차 없었겠지? 그런데 쿠바에 사니까 머리도 혼자 자르고, 그것도 새벽에 갑작스레 말이다. 이 또한 나에게는 아주 생소하지만 신선한 추억으로 남아있겠지?


쿠바는 나에게 그런 곳인가 보다. 내가 평생 하지 못했던 일을 하게 하고 낯선 일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하는 마법을 가진 그런 나라. 이 곳에 계속 살다 보면 나도 그녀들처럼 빨간색 레깅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니게 될까?


다시 잠들었던 남편이 일어났다. 화장실에 잘린 한 움큼의 머리카락은 남편이 잘 보관했다고 했다. 일전에 남편이 잘라준 나의 머리카락과 함께.


그리고 열흘이나 지났을까? 거울을 보다가 그새 머리가 긴 것 같아 또 한 번 머리를 잘랐다. 머리를 자를 때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 그리고 한국에 왔다. 자가격리를 마치고 집으로 와서 미용실을 찾았다. 헤어디자이너님께 내가 머리를 직접 잘랐다고 하자, "어머, 정말요? 너무 잘 자르셔서 전혀 모르겠어요!"라고 하시며 칭찬을 해 주셨다. 그리고는 더 이상 묶을 수가 없을 정도의 길이로 머리를 잘랐다. 몇 년 만에 전문가의 손길로 드라이를 한 머리가 어색하기만 했다.


이제 한동안은 머리를 자르지 않아야지. 그리고 머리가 또 많이 길면 그때는 미용실에 가지 않고 내가 잘라볼까? 마치 쿠바에 있는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 쿠바댁 린다 한국에 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