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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Feb 18. 2021

그러니까 나는 추억을 먹은 거였다.

막창 이야기


이번에 한국에 와서 새로이 깨달은 게 하나가 있었다. 내가 입이 굉장히 짧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 족발도 잘 먹을 것 같고 순대국밥도 한 그릇 뚝딱 잘 끝낼 거 같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러하지가 못하다. 그렇다고 내가 채식주의자인것도 아니다.


예전부터 나는 물에 들어간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설렁탕, 순대국밥, 갈비탕, 도가니탕, 곰국 등먹지 않았고 약간이라도 이상하게 생긴 음식들은 아예 못(안?) 먹었더랬다. 닭발, 족발, 곰장어 등이 대표적인 예일 듯하다.


지난달에 럭셔리 자가격리를 했던 강원도 원주를 다시 방문을 했었다. 그러자 격리 당시에 우렁각시 역할로 감동을 한 아름 안겨주셨던 고마우신 분께서 "린다씨, 장어 좋아해요?"라고 물어보셨다. "아니오. 저 장어  먹어요."라고 대답을 하자 약간 당황을 하시며 "아... 그럼 과메기는 좋아해요?"라고 다시 물어보셨다.


갑자기 민망해졌다. 또 아니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어쩌지 하다가, "제가 입이 저렴해서 비싼 걸 잘 못 먹어요."라고 말하며 하하하 웃어버렸다. 쿠바에서 몇 달간 생활을 하셔서 쿠바 상황을 잘 알고 계시는 그분은 쿠바에서 온 나를 위해서 큰 맘을 먹고 몸에 좋은 제철 음식을 대접하시려고 준비를 하고 계셨는데 어떻게 두 개 모두 내가  먹는 음식들인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장어도 과메기도 한 두번씩은 먹어봤는데 또 먹고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러니 정확히 표현을 하면 못 먹는건 아니고 안 먹는게 맞다. 결국 우리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두부 전문 식당에 가서 구운 두부에 두부전골을 배 터지게 먹었더랬다. 쿠바에서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먹을만큼 나는 두부를 아주 좋아한다. 물론 두부 콩이 아니어서 묵이 되었지만 말이다.


아주 친한 동생이 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면 스테이크만 썰게 생겼다고 하는데 아저씨 입맛을 가진 그녀는 순댓국도 장어도 닭발도 아주 맛나게 잘 먹는다. 아니, 없어서 못 먹는다고 하였다. 나도 그렇게 아무거나 다 잘 먹고 싶은데 가리는 음식이 많다 보니 그런 그녀가 몹시나 부러웠다. 


그런 와중에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이상하게 생긴 음식이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막창이다.(번데기도 몹시 좋아한다) 곱창도 대창도 안 먹는 나는 유독 막창만 좋아해서 대구에 가면 가족들과 막창을 먹으러 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부모님께서 식당에 아예 가시지를 않아서 막창을 집에서 구워 먹었더랬다. 그것도 맛있긴 했지만 나는 식당에서 왁자지껄 구워 먹던 막창이 몹시도 그리웠다.


한국에 온 지 2개월이 막 지난 며칠 전이었다. 이번에 건강검진을 통해서 허리에 디스크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허리디스크에는 산책이 좋다고 하여 옷을 따뜻하게 입고 걷기 시작했다. 동네를 쭈욱 걷다가 쿠바에 다 두고 와서 하나 사려고 했던 선글라스도 구입을 하고 잡화점에 가서 벽에 걸 후크도 하나 샀다.

그날 구입한 후크에 쿠바를 담아보았다(원래 커피잔을 거는건데 마스크 걸이로 용도 변경)

런데 산책을 하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어느 한 장소가 맴돌고 있었다. 아리조나 막창이었다. 잡화점에서 그곳까지는 십분 정도면 가는 거리였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50분경이었다. '요즘은 9시까지만 영업을 하니까 일찍 문을 열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그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새로 구입한 신형 핸드폰을 꺼내어 지도를 켜 보았다. 길치인 나에게 이 지도는 몹시도 고마운 존재였다.


지도가 알려주는 데로 십여분을 걷다 보니 드디어 내 눈앞에 커다란 식당 하나가 나타났다. 그날따라 바람도 불고 쌀쌀한 날씨였지만 그곳을 보니 괜히 마음이 따스해져 왔다. 몇 년 전에 마지막으로 갔을 때에 넓은 마당에서 먹었던지라 출입문이 어디 있는지 몰라 건물을 따라 돌아보니 코너에 출입문이 나왔다. 통유리로 된 곳이라 손님이 한 테이블만 있는 게 보였다. 다행이다 싶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청년들의 인사 소리가 들려왔고 여느 식당처럼 나의 정보를 적어야 했다.


"몇 분이세요?"

"아... 저 혼자예요."

"... 아.. 네..., 이쪽으로 오세요."


먼저 온 손님의 테이블과 아주 멀리 떨어진 창가에 앉아서 바로 막창 2인분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혹시 진로 있으세요?"

"네, 있습니다."

"그럼 진로도 한 병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쿠바에 가기 전에 나는 소주는 입에도 대지 않았었다. 막걸리도 거의 마신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이번에 한국에 오니 막걸리가 너무 맛나고 소주도 달달하니 입에 맞았다.


'입맛이 계속해서 바뀌는 건가? 아니면 쿠바에는 없는 게 땡기는 걸까?' 하고 생각하다가 말았다. 아무렴 어때 맛있으면 된 거지.


곧이어 내 앞으로 상이 차려졌다. 그리고는 벌겋게 불씨가 붙은 숯불도 자리를 잡았다. 숯을 보니 쿠바 생각이 났다. 쿠바의 수출품 중 하나가 품질이 아주 좋은 숯이라는 걸 남편에게서 들은 기억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는 막창을 먹기는 많이 먹었는데 직접 구운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한번 삶은 막창을 숯불 위에 덮인 불판에 올리자 서서히 익어가기 시작했다. 한 면이 익자 큰 덩이를 집게로 들고는 가위로 잘게 잘라주었다. 2인분을 모두 불판에 올리고는 동그랗게 잘린 막창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구웠는데 숯불이 활활 타오르자 막창도 덩달아 빠른 속도로 굽혀지고 있었다. 막창의 핵심은 막장이지. 막장을 듬뿍 찍어 하나씩 입 안으로 넣기 시작했다.



그래, 이 맛이야!



적당히 잘 굽혀서 쫄깃쫄깃하면서도 고소한 게 맛이 기가 막혔다. 2인분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메뉴판을 보니 원래 기본이 3인분이라고 적혀 있어서 1인분을 추가해 보았다. 양이 줄어들어 3인분을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씩씩한 청년이 "여기 있습니다." 하면서 막창 1인분이 담긴 접시를 주었고 나는 그것을 받자마자 불판에 모두 올려주었다. 금세 노릇노릇해졌다. 이번에는 조금 더 두툼하게 잘라주었다. 너무 잘게 자른 걸 먹었더니 쫄깃한 식감이 아쉬웠던 것이었다.


사실은 2인분을 먹고 났을 때 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1인분을 더 먹으니 역시 배가 불렀다. 앗! 막창을 먹느라 소주를 많이 못 마셔서 이제 소주를 마실 차례였다. 그래서 된장찌개를 하나 시켰다. 밥은 괜찮다고 했다. 막창 3인분을 다 먹고는 된장찌개를 안주삼아 소주를 한 잔씩 따러 마셨다.

내 사랑 막창과 된장찌게 그리고 진로

이른 저녁에 중년의 여인 혼자서 막창집에 가서 막창 3인분을 다 먹고는 된장찌개에 소주라니... 어쩌면 그곳에서 일하는 청년들은 내가 실연을 당한 줄 알았을 수도 있었으리라! 


6시가 지나가자 손님들이 들어오면서 테이블이 하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없을 때에는 괜찮았는데 2명, 3명 손님들이 들어오자 내 마음이 조금 급해지는 걸 느꼈다. 그래서 마지막 소주잔을 비우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비스로 주어진 칠성사이다는 이미 가방에 잘 넣어 두었다. 모든 게 귀한 쿠바에 살다 오니 알뜰히 챙기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계산을 하고 식당 밖을 나오니 어느덧 어둠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배가 몹시 불렀다. 그리고 바람이 차가웠다. 롱 패딩에 모자까지 쓰고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가 그리도 가고 싶었던 아리조나 막창을 갔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에게 막창은 음식이 아니라 추억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날 나는 추억을 먹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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