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살지 않았으면 어쩌면 평생 제대로 된 글을 써 보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테다. 한국에서 너무 정신없이 살다가 쿠바에 갔더니 어찌나 한가하던지. 그러다 보니 심심해서 글을 쓰게 되었고 쓰다 보니 브런치 글쓰기로 내 인생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쿠바가 더없이 각별하고 고마운 존재이다.
쿠바에서 <쿠바댁린다>로 쿠바인 남편과의 알콩달콩한 일상과 쿠바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글을 쓰다가 가끔은 돌아보니 아름다운 추억들에 대해서 쓰기도 했다. 그런 글들이 하나 둘 모이더니 이제는 책을 여러 권 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물론 퇴고를 아주 많이 거쳐야겠지만) 나에게도 <작가>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한국에 오게 되었고, 잠시 한국에서 몇 달만 쉬다가 쿠바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한국에 있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자(쿠바의 상황이 힘들다는 뜻이다) 계획이 조금씩 수정되기 시작했다. 상황에 따라 계획도 변하는 거니까 아주 당연한 일이지만 나도 이렇게 변할 줄은 예상을 못했었다.
그래서일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망설여졌다. 쿠바에서 쿠바 감성으로 글을 쓰다가 한국에 와서 글을 쓰려니 선뜻 써지지가 않았다. 왠지 나의 정체성에 반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쿠바댁린다>인데 그래서 쿠바에 관한 걸 많이 써야 하는 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지금 생각나는 소소한 삶에 대해서 쓰기가 힘들었다. 글이라는 것도 매일 자주 써야 느는 건데, 아직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글쓰기가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한동안 블로그도 해보고 인스타도 좀 더 신경을 써 보고 유튜브도 해 보려고 공부도 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근본은 브런치임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브런치에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작가>라는 엄청난(나에게는) 타이틀을 얻은 데다가 출판 계약까지 하지 않았는가!
글을 쓰지 않는 동안에도 구독자가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늘어나는 걸 보면서 브런치를 저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작고 소박한 나의 글을 구독해주시는 구독자 한분 한분께 얼마나 고마운 마음인지, 그분들 때문에 브런치를 떠나면 안 된다는 게 어쩌면 가장 큰 이유일 테다.
처음에 브런치에 글을 쓸 때 마음이 생각이 난다.
단 한 명의 독자뿐이어도 그분이 내 글을 읽고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계속 글을 쓸 테야!
오늘 다시 그 마음을 살살 다듬어 본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마음이 혼란한 요즈음일수록 브런치를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오늘도 브런치에 내 마음을 전해 본다.
비록 몸은 한국에 있지만 쿠바댁린다는 쿠바에서 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여전히 쿠바댁린다니까.
참, 어쩌면 정체성이라는 것도 이제는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 요즘은 부캐가 여러 가지가 있어서 활동하는 장소마다 정체성이 다르던데.. 그러면 사람들도 이제 더 이상 이런 고민을 하지 않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