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이 안 되었다. 그나마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 겨우 되었다. 그렇게라도 글을 쓰니까 괜찮다며 위로를 하고 위안을 삼았다.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조용한 집을 두고 굳이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 마시면서 글을 써야 하는 건지. 그 돈도 모이면 적은 금액이 아닌데 말이다.
그러다 바람이 불었고 정신이 들었다. 집에서도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날씨 때문이었을까? 그건 아닐 테다. 일 년 내내 덥지 않은 날이 얼마 없는 쿠바에서는 카페에서 글을 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곳이지 글을 쓰는 공간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글은 늘 집에서 썼다. 에어컨이 고장 나고 선풍기가 멈췄지만 글을 썼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얘기지만, 할 일이 없어서 글을 썼다. 인터넷도 잘 안되고 가져온 책도 몇 권 없었고 딱히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글이나 썼다.
그런데 글쓰기가 이렇게 좋아질 줄이야. 글쓰기가 내 인생을 바꿀 줄이야. 정말 몰랐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생존을 위한 것처럼 썼으니까. 아무거나 썼다. 쿠바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야기,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들, 퇴사 후 이야기...
제목도 없이 그냥 썼다. 그런데 글을 다 쓰고 나면 제목이 생각이 났다. 지금이라고 별반 나아진 것 없지만 요즘엔 제목을 써 놓고 글을 써 내려가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은 것 같다.
다른 분들은 구성부터 해서 체계적으로 계획을 만들어놓은 후 글을 채워가는데 나는 그렇게 하는 걸 몰랐다. 이제는 그렇게 해야 제대로 빨리 한 권의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난 왜 아직도 이렇게 쓰고 있는 건지. 습관이 무서운 것일까?
돌아온 한국에는 모든 게 풍족했다. 인터넷 속도는 세계 일등이다. 그러니 내 관심은 여기저기로 분산이 되었고 어떻게든 다 누려봐야지 하는 욕심이 생겼다. 마케팅은 또 얼마나 잘하는가? 이걸 보면 이렇게 해야 할 것 같고 저걸 보면 저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몇 년 안 되는 시간 동안 쿠바에 살면서 쿠바의 삶에 흠뻑 젖어 있어서였을까? 자본주의에 오니 예전에는 마치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모든 게 새로웠다. 그래서 하나씩 다 손을 대어 보았다. 그중에서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아보리라는 마음으로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았다.
점점 내 마음은 붕 뜨고 집중력은 분산이 되었다. 그러다 혼돈의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핸드폰 소리를 껐다. 처음에는 잘 때만 무음으로 해 놓았는데 엊그제부터는 낮에도 무음으로 해 두었다. 필요할 때에만 소리를 켰다. 가끔 중요한 문자를 늦게 볼 수도 있고 전화를 못 받을 때도 있겠지만 나에게 그 정도로 중요한 문자나 전화는 별로 없다. 남편이나 엄마 전화를 놓치면 다시 하면 되었고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랬더니 집중력이 돌아왔다.
무언가를 좀 해볼까 하면 '까똑' '띵똥'하는 소리에 핸드폰을 보게 되는데, 대부분이 광고였다. 그렇게 핸드폰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딴짓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하던 일을 까먹은 채 말이다.
그런데 그 소리가 사라지고 내가 필요할 때만 핸드폰을 보니 일의 집중도가 확실히 높아졌다. 그리고 시간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가 있게 되었다.
덜 바빠서 그래,라고 말씀을 하실 수도 있다. 그런데 맞는 말이다. 바쁘면 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겠지. 내 눈앞에 주어진 일을 한시가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핸드폰 알람에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그럴 리가.
그런데 나는 지금 덜 바쁘니까, 오롯이 내가 맘을 굳게 먹고 시간을 관리하지 않으면 시간에게 지배를 당하니까 집 나간 집중력을 다시 데리고 오려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소리를 꺼 버렸다.
하루 종일 아무 소리가 나지 않으니까 마음이 평온해졌다. 방해꾼이 사라지니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무공해 청정구역에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