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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30. 2021

이야기꾼 엄마의 장병규 이야기


엄마는 기억력이 참 좋으시다. 게다가 재연배우처럼 흉내까지 내시며 옛날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놓으시는데 듣고 있으면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퇴사를 하고 지금의 남편을 다시 만나러 쿠바에 가기 전에 본가에 들렀다가 엄마랑 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마 전에 크래프톤 주식 상장으로 매스컴에 자주 나온 <크래프톤 웨이>의 저자 장병규 의장이다. 어쩌다 병규 오빠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엄마는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병규 오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니 고3 때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4개월 동안 살 집이 없었잖아. 그래서 우째야하나 할 때 병규 엄마랑 이야기하다가 병규 엄마가 4개월 동안 자기 집에 와 있으라고 해서 우리 그 집에서 세 살았잖아. 니 기억나나?"


그래, 기억이 난다. 누군가의 집 별채(?)에 딸린 방 한 칸, 화장실 한 칸에 부엌이 있는 집이었는데 어느 날 아침인지 밤에 부엌에 아주 큰 쥐 한 마리가 나타나서 기절을 할 뻔한 적이 있었기에 잊을 수 없는 남의 집 살이에 대한 기억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 집이 누구 집인지 몰랐는데 병규 오빠 집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당시 오빠 둘 다 군대에 가 있었고 식구라고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 셋 뿐이어서 한 방에 생활이 가능한 데다 잠시 4개월 동안이어서 나도 별말 없이 살았더랬다. 그리고 그 집 소유주에 대해서 거의 30년이 지난 이제야 엄마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퇴사를 하자 스타트업에 관심이 생겨났고(관심만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장병규의 스타트업 한국>이라는 책을 사 보았는데 그 책을 쓴 장병규를 엄마가 알고 계셨던 것이었다. 너무 신기했다.


"엄마, 정말이가? 그 집이 병규 오빠 집이었다고? 대박이네. 내 얼마 전에  오빠 책 샀는데. 스타트업 계에서는 엄청 유명하잖아!"


내가 아는 체를 하기 시작하자 이때다 싶어 엄마가 병규 오빠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병규 가가 얼마나 똑똑한지 대구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했잖아. 그라고 카이스트 가서 맨날 게임 만든다고 하더니 첫눈으로 대박 났잖아. 첫눈 알제?(아니, 난 몰랐다) 병규는 키도 크고 인물도 잘 났지 성격도 참 좋데이. 병규 엄마가 사람이 참 좋거든. 병규 할매도 그렇고. 그라니 4개월 동안 세를 줬지. 누가 세를 4개월만 주노."


엄마는 사교성이 좋으시고 일단 베풀고 보는 성격이시라 동네 사람들이랑 사이도 좋고 인기도 많으시다. 게다가 약속에 철저해서 돈을 빌리면 하늘이 두쪽 나도 약속한 시간에 갚으시고 약속에 늦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자랑스레 말씀하신다. 그래서 예전에 내가 약속이 있는데 뭉그적 거리기라도 하면 엄마가 오히려 속이 타서 빨리 나가라고 잔소리를 늘어놓곤 하셨더랬다.


엄마는 병규 오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하루는 병규 오빠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린다 엄마예, 우리 병규 중매 좀 서주이소."

"아이고, 병규처럼 잘 난 신랑을 내가 어디 가서 중매를 서겠어예."


엄마는 예전에 중매를 잘하셔서 엄마가 소개해주신 분들이 지금까지도 잘 살고 있다며 이번 추석에도 이야기해 주셨다. 그러다 보니 혼기가 찬 자식이 있는 아주머니들이 엄마께 중매를 부탁하곤 하셨다. 그런데 병규 오빠는 너무 수재라 엄마도 그에 맞는 신부를 찾는 게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시고는 그렇게 말씀을 하신 거였다. 결국 똑똑한 병규 오빠는 알아서 결혼을 잘했고 화목하게 잘 살고 있다고 했다.


엄마가 해 주시는 병규 오빠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쁜 이야기가 단 하나도 없었다. 뭐 좀 안 좋은 게 있으면 분명히 얘기하셨을 터인데 병규 오빠도 그의 가족들도 참 좋은 분들이셔서 죄다 좋은 이야기뿐이었다. 엄마가 해 주시는 병규 오빠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장병규라는 사람이 인간적으로 참 멋져 보였다.






하필이면 쿠바에 다시 가기 전날에 <장병규의 스타트업 한국>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다. 출국 전날이라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엄마가 이야기해 주시는 장병규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궁금해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결국 예약을 했다. 그런데 그날 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퇴사를 하고 곧장 몰디브에 가서 17일 동안 있으면서 인도양의 뜨거운 태양을 만끽하고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라이너와 입술 반영구화장을 받은 것이었다. 2개월 동안 쿠바에 있을 거라 화장을 제대로 안 할 걸 예상하고 반영구화장(일면 문신)을 하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받은 거였는데... 난리가 나 버렸다.


몰디브에서 돌아와 쿠바로 가기까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인도양의 태양이 내 몸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얼굴에 손을 댄 게 화근이었다. 일단 시술을 받을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받고 난 다음 날 입술이 간질간질하더니 작은 수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범위가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다. 필러를 맞은 것처럼 입술도 퉁퉁 불었다. 병원에 갔더니 약을 바르라고 해서 약을 발랐는데 별로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눈에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술을 하신 원장님께 물어보았고 원장님도 놀라셔서 빨리 병원에 가 보시라고 했다. 입술도 입술이었지만 눈까지 문제가 생기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좀 유명한 병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진료를 받았더니 화상을 입은 거라고 했다. 뜨거운 태양의 흔적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열을 가해 버린 탓에 화상처럼 수많은 수포가 생겨나고 퉁퉁 불어버린 것이었다. 내 얼굴이지만 더러웠다. 거울을 보니 마치 괴물이 된 것만 같았다. 이 꼴로 쿠바에 갈 수 있을까? 그렇다고 얼굴에 가면을 쓰고 갈 수도 없고, 지금처럼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을 수도 없었다. 화상 치료를 했지만 금세 가라앉지가 않았다. 결국 그 꼴로 쿠바에 가긴 갔는데 문제는 병규 오빠 책 저자와의 만남이었다.


장병규를 꼭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미리 예약을 해 놓긴 했지만 얼굴이 거의 괴물처럼 된 상태에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게 쉽지가 않아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쪽팔림보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앞섰기에 그 을 하고 저자와의 만남에 참석을 했다.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거울만 안 보면 잠시 동안은 내 상태를 잊을 수 있었으니. 병규 오빠와 사회자가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줄을 서서 책에 저자 사인을 받는 거였는데 나는 또 무슨 배짱인지 얌전하게 책을 들고 줄을 섰다. 마침내  차례가 왔고 그 끔찍한 얼굴을 하고는 병규 오빠를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가 그러시던데 제가 고3 때 병규 오빠 집에서 세 들어 살았대요."


그러자 병규 오빠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러셨어요? 저는 몰랐네요...."


(당연히 모르지. 오빠는 그때 카이스트에서 열심히 공부를 할 때였으니. 그리고 방학 때 집에 오더라도 세 들어 사는 사람을 오빠가 알 필요는 전혀 없으니.)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내가 먼저 꺼냈는데 병규 오빠는 해맑게 그걸 또 받아주셨다. 실제로 보니 매스컴에 나오는 것보다 인상도 더 좋으셨고(잘 생겼다는 뜻이다) 차분하게 말씀도 잘하셨다. 엄마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소탈하기 그지없는 분인데 알고 보면 병규 오빠는 대한민국 스타트업계이끌어 가시는 대단한 분이시다. 엄마는 지금도 본가에 가면 병규 오빠 이야기를 해 주시는데 들을 때마다 새롭고 재미가 있어서 맞장구를 치면서 잘 듣고 있다.


병규 오빠가 올해에 야심 차게 출간 한 <크래프톤 웨이>도 읽어보고 싶은데 지금은 그 책 보다 꼭 읽어야 할 다른 책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 읽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병규 오빠는 대단한 기업가라기보다는 엄마가 만들어 낸 따뜻한 동네 오빠(오빠는 전혀 모르겠지만) 이미지여서 엄마의 이야기 속 병규 오빠로 남아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본가에 가면 엄마가 또 무슨 이야기를 하실지 문득 궁금해진다.


*사진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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