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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28. 2021

4시 50분, 막창 먹을 시간

막창엔 막장!


카페에서 책을 읽는데 자꾸만 딴생각이 난다. 내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분명 재미있는 책인데 나의 집중력의 간격이 점차 줄어든다. 급기야 막창이 먹고 싶어졌다. 지난주에 대구에먹은 지 일주일도 채 안 되었는데 나는 막창이 또 먹고 싶은가!


내가 막창 먹는 걸 본 사람들은 순댓국, 설렁탕, 갈비탕, 닭발, 족발, 곰장어도 잘 먹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상하게 생긴 거나 고기가 물에 빠졌다 나온 음식에는 대체적으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아니다. 관심이 하나도 없다고 하는 게 맞겠다. 아예 먹지 않으니.


웃기는 건, 막창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나는 곱창이나 대창은 안 먹는다는 거다. 나는 막창만 먹는다. 오직 막창! 그리고 막창에 나는 자존심을 세운다. 마치 막창이 내가 발명한 음식인 양 말이다.


20년 전 서울에서 막창이 너무 먹고 싶어서 강남에 갔을 때 '막창'이라고 적혀 있는 고깃집에 간 적이 있었더랬다. 나는 분명히 막창을 주문했는데 막장이 나오지 않고 쌈장이 나왔다. 그래서 사장님께 여쭤보았다.


"사장님, 막장 없어요?"


곧이어 없는데요, 라는 대답이 들려왔고 그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막창을 쌈장에 찍어먹지? 이건 막창에 대한 모독이야, 모독!  


그리고 그날 나는 막창을 먹지 않았다.


나에겐 이해하기 힘든 게 하나 있다. 대한민국이 그리 큰 나라도 아니고, 서울에서 대구까지 KTX로는 2시간이 안 걸리고 운전해서 가도 4시간이면 가는데 왜 서울에서 막창집을 하시는 분들은 대구에서 유명한 막창집에 가서 먹어보고 벤치마킹을 하지 않는 걸까? 왜 막창을 먹는데 막장이 아닌 쌈장을 주시는 걸까? 지금은 막창을 집에서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하물며 시중에서 판매하는 그 막창 봉지 안에는 막장 소스까지 들어가 있는데, 아직까지 막창을 판매하는 식당에서 막장을 주지 않는다는 건 막창에 진심인 나로서 아들이기가 쪼매 힘들었다. 






결국 어제 읽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전에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혼자 막창을 먹을 수 있을까?'

'일단 들어가자마자 2인분을 시켜야겠어.'  

'저녁 시간에 가면 사람들이 볼 테니 일찍 가서 먹으면 괜찮을 테야.'


시계를 보니 4시 50분이었다.


아, 이것은 운명인가?


한국에 와서 막창이 너무 그리워서 대구에서 혼자 막창을 먹으러 갔는데 그때도 4시 50분이었다. 4시에 문을 여는 아리조나 막창에는 이미 아저씨 두 분이 막창을 드시고 계셨고 내가 두 번째 손님이었다. 꽤나 넓은 식당의 한쪽 모퉁이에 혼자 앉아 우아하게 웰빙 막창 2인분과 소주를 주문했고 2인분을 금세 먹고는 1인분 추가를 했었다. 3인분을 다 먹었는데 막창을 먹는데만 급급하여 소주가 반 병이나 남아있어서 된장찌개를 시켜서 소주 안주를 하고는 소주까지 말끔히 끝낸 후 집까지 걸어갔다.


응, 나 다른 음식은 많이 못 먹는데 막창만 많이 먹어.


카페를 나오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집까지 5분이면 가니까 빨리 달려가서 집에 가방을 두고 우산을 쓰고 막창을 먹으러 가야지, 비가 오니 혼자 막창 먹기도 더 수월하겠다, 생각을 하면서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초록색으로 왜 이리도 안 바뀌는지. 빗방울의 속도가 점차 빨라지는데 말이다.


결국 신호는 바뀌었고 나는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각을 바꿨다. 집에 가지 말고 바로 막창을 먹으러 가는 걸로. 마치 비가 와서 들어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간판이 '대구막창'인 동네 막창집이었다. 일전에 한번 가 본 적이 있는데 막창보다는 반찬이 맛난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던 곳이었다. 이 동네에 맛이 기가 막힌 막창집이 있는데, 그래서 두 번을 갔는데 내 돈을 내고 먹는데 기분이 나쁠 정도로 여자 사장님이 불친절하셔서 세 번째 가기를 망설이고 있다. 여자한테만 유독 불친절하다는데 남자랑 가면 달라질지는 확인을 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 식당에서는 제대로 된 막장을 주신다. 막창 자체도 다른 식당과는 달리 품질이 좋고 고소하니 정말 맛있다. 게다가 야채도 구워주시는데, 사장님은 대체 왜 그리도 불만이 많으시고 손님을 하대하시는지!


첫 번째 갔을 때에는 더워서 짜증이 나셨나 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두 번째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셨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식당 하시는 분들이 많이 힘드신 건 이해를 하는데 그렇다고 손님을 기분 나쁘게 대하는 건 돈을 벌지 않겠다는 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무튼 그래서 그 맛난 막창집을 지척에 두고 나는 대구막창집으로 간 것이었다. 친절한 청년이 몇 명이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저 혼자예요,라고 웃으며 말을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도 내가 두 번째 손님이었다. 벌써 아저씨 두 분이 오셔서 막창을 드시고 계셨다. 곧바로 돼지 막창 2인분에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요즘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데 막창을 먹는데 물만 마시기는 뭣해서 습관처럼 소주도 주문했다.


친절한 이 식당은 불판이 문제였다. 막창이 어찌나 불판에 달라붙어서 안 떨어지는지, 본드로 붙여놓은 것만 같은 소중한 나의 막창들을 안간힘을 써서 하나씩 떼어내느라 손이 얼얼했다. 식당이 잘 안 되셔서 새로운 불판을 사지 못하시나 보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저 내 할 일에 충실했다. 완벽한 막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쌈장이 아닌 것에 감사했다. 혹시 쪽파나 고추 썰어놓으신 게 없냐고 사장님께 여쭤봤는데 그런 건 없다며 친절한 사장님이 부추를 총총 썰어서 주셨다. 막장에는 쪽파랑 살짝 매콤한 고추가 들어가면 금상첨화이지만 부추가 어디냐며 감사히 받아서 막장에 섞었다.


불판에 달라붙기 전의 돼지막창과 맛난 반찬들 그리고 막장 비슷한 소스


2인분을 다 먹고 1인분 추가는 하지 않았다. 이미 배가 불러서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서비스로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가 나왔는데 매워서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소주는 반 병만 마시고 남겼다. 대신 찬으로 나온 배추김치랑 부추김치는 싹 비웠다. 대파 김치는 맛났지만 매운 것만 계속 먹으려니 힘들어서 반을 남겼다. 그래도 어느 정도 깨끗하게 먹었다. 혼자서 한 시간 반 동안 잘 먹었다.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챙겨서 집으로 왔다. 핸드폰에 자동으로 찍히는 카드 결제 내역을 보았더니 240원이 찍혀 있었다. 그제야 영수증을 보니 240원이었다. 연세 드신 사장님께서 실수로 24,000원을 240원으로 잘못 찍으신 것이었다. 안 그래도 손님이 없어서 힘드실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마스크를 하고는 식당으로 갔다. 사장님은 전혀 모르고 계셨다.


240원이 찍힌 영수증을 보여주며 취소를 하고 다시 결제를 하시면 된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깜짝 놀라시며 친절히 대해주었던 일하는 청년을 부르셨다. 아들이었다. 엄마랑 아들 두 분이서 일을 하고 계셨다. 엄마는 취소를 못 하셔서 아들에게 취소하는 걸 도와달라고 하셨고 아들은 금세 취소를 하고 다시 결제를 하였다. 사장님은 내가 뭔 생각으로 그랬지,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아들도 함께 고맙다며 인사를 하였다. 대구가 아닌 곳에서 처음으로 혼막(혼자서 막창을 먹는 것)을 한 날, 마무리마저 훈훈하여 기분이 맑아졌다.


혼밥(혼자 밥 먹는 것)의 최고봉은 혼고기(혼자 고기 먹는 것)인데 나는 혼고기를 14년 전에 이미 마스터했다. 이제는 혼막이다. 이토록 나는 막창에 진심이다. 그리고 기억해두자.

막창엔 막장!



대구에서 처음으로 혼막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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