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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25. 2021

백신을 맞았다


하늘이 파랗던 어제 아침에 백신을 맞았다. 남들 다 맞는 백신을 이제야 나도 맞은 것이었다. 그동안 어떤 주사를 맞아도 아무 이상이 없었고, 마취주사의 경우에도 약물이 들어가는 순간 바로 마취가 되고 깰 시간이 되면 문제없이 깨는 정확한 몸이었다. 하지만 이번 백신은 겁이 좀 나긴 했다. 모두들 화이자는 2차에서 아프고 1차는 별 문제가 없다고 하긴 했지만 워낙 말들이 많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거였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병원에 예약을 해 둔 터라 산책하듯 걸어갔다. 내가 백신을 접종하는 곳은 대학병원에 속한 요양병원이었다. 이런 대형 양병원은 처음 가 보았는데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먼지 하나 없어 보이는 깨끗하고 세련된 시설과 한마음 한뜻으로 친절을 몸에 품고 일하시는 분들을 보며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쿠바의 병원과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더욱더 감동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의료는 한국이 최고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여러 장의 필수 서류를 작성하고는 화살표가 붙여져 있는 바닥을 따라가니 의사 선생님이 최근에 아팠던 곳은 없었는지 물어보셨고 백신을 맞고 나면 발생할 수 있는 증상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셨다. 게다가 내가 묻는 질문에도  친절히 해 주셨다. 그리고는 백신을 맞았다. 오른손잡이는 왼팔에 맞는 게 좋다고 하셔서 왼팔에 맞았다. 별 것도 아니네..라고 말할 만큼 순식간이었다.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증상을 위해서 15분 동안 앉아있다가 가라고 했다. 또다시 바닥에 있는 화살표를 따라갔고 맨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15분을 기다렸다.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특별한 증세가 없었고 나 역시 그러하여 15분이 지나 병원을 나왔다.


배가 고팠다. 병원 앞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열려있는 밥집이 여럿 있었다. 한 식당에 고등어 구이가 적힌 걸 보았고 길을 건너 그 식당에 가 보았다. 그런데 그곳은 백반 집이었고 고등어구이는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식판에 먹을 만큼 음식을 담아가서 먹으면 된다고 하셨는데 식판을 보는 순간 내키지가 않아 그냥 나왔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고등어구이를 먹어보나 했는데 낚여 들어간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동네에 두부집이 있는데 집에서도 매일 먹는 두부를 밖에서 돈 내고 먹고 싶지는 않아서 두부집은 지나쳤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는 아침에 문을 여는 식당이 없어서 결국 배가 고픈 채로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가 챙겨주신 사과 한 알을 먹었다. 엄마가 주신거여서인지 너무 맛있었다. 사과를 먹고 나니 잠이 쏟아졌다. 식욕보다 수면욕이 앞서는 나이기에 얼른 씻고 누웠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잤다.


몇 시간 동안 꿀잠을 자고는 일어나 냉동실에 있는 칼국수를 꺼내었고 그 옆에 있던 바지락 살도 꺼내어 바지락 칼국수를 해 먹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았는데 금세 또 잠이 왔다. 백신 때문인지 그냥 잠이 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도저히 책이 눈에 들어오지가 않아서 일단 누웠다. 몸이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남편이 옆에 있으면 잘 챙겨 주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잠시 감상에 빠져보았다.


저녁이 되자 또 배가 고팠다. 보통은 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있어도 배가 별로 고프지 않은데 분명 점심을 먹었는데 또 배가 고파서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신이 허기를 지게 하나?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배는 계속 고픈데 밥을 하고 싶은 적극적인 마음이 없었다. 배달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배달 음식을 선호하지 않지만 팔이 점점 묵직해져 오고 기운이 없어서 밥을 할 수가 없었다.


뭘 먹을까? 하며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보다가 집 근처에 무료배송이 되는 버거킹에 햄버거 세트와 치킨 두 조각 그리고 콘샐러드를 주문했다. 와퍼 주니어 세트를 다 먹고 나면 배가 부른 나인데 좀 많이 시킨 듯했다. 기본 금액을 채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많이 주문을 한 거였지만 결론적으로 남기지 않고 싹 다 먹어버렸다. 배가 많이 고프긴 고팠나 보다.






잠시 후 버거킹 매장에서 전화가 왔다. 지점장 같았다. 내가 주문을 한 콘샐러드가 다 떨어져서 코울슬로로 대체를 해도 되는지 물어보셨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면 괜찮다고 했을 터인데 나에게 콘샐러드와 코울슬로는 하늘과 땅만큼 다른 거라 대체가 안 된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분이 미안하다며 계좌로 콘샐러드 금액 2,400원을 입금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말에 좀 민망하여 혹시 치즈스틱으로 변경은 안 되냐고 했더니 가격이 달라서인지 그건 안 된다고 하셨다. 계좌 정보를 요청하셔서 알려드렸다.


"30분 안에 입금 꼭 하겠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바쁜 저녁 시간이었으니 천천히 입금을 해도 되고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미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그분은 계속 미안하다고 하셨다. 게다가 배달하시는 분이 코울슬로를 가지고 배달을 이미 가버려서 코울슬로는 받으면 폐기를 하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콘샐러드가 없으니 누군가가 같은 금액의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코울슬로를 넣었고 그걸 발견하셔서 연락을 주신 것으로 추정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코울슬로는 싫다고 하자 돈을 입금해 주시겠다고 한 것이었다.


30분 정도가 지나 통장을 확인해 보니 정말 입금이 되어 있었다. 그분의 이름으로 입금이 된 걸 보니 본인 돈으로 보내주신 것 같았다. 괜히 미안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그분의 투철한 서비스 정신에 감동을 받아 후기에 칭찬을 마구 해 주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마음이 몹시 씁쓸해져 왔다. 얼마나 진상 고객들이 많으면 저렇게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그 바쁜 와중에 금세 돈을 보내주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아팠다.


코로나로 인해서 배달이 성황을 하게 되었고 비대면으로 주문을 하다 보니 음식을 받고 나서 이상한 짓을 하며 식당 사장님들을 괴롭히는 자들이 점차 늘어났다. 또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며 후기에 별점 테러를 하는 사람들도 상상 이상으로 많은 듯했다. 그러니 사장님들은 그런 걸 방지하고자 어쩔 수 없이 진상 고객들의 비위를 하나씩 다 맞추며 빠른 대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심한 경우에는 문을 닫기까지 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읽은 책 <아들아,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이 글을 읽어라>에 나오는 아버지의 조언이 생각이 났다.


세상에는 미친 인간이 정말 많단다. 그리고 미치지 않았어도 어리석은 사람이 정말 많지. 또한 어리석진 않아도 참되지 못한 사람이 정말 많고.
세상 사람 대부분은 미치거나 어리석거나 참되지 못한 이들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만나도 놀라거나 당혹해하지 마라.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면 늘 미친 이들은 존재를 해 왔고 시대가 변하면 또 다른 방식의 미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게 세상이니 그런 인간들을 만나도 아들이 놀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신 조언이었다.


코로나로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분야 중의 하나가 식당일 텐데 그래서 폐업을 하신 분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없는 걸 만들어내면서까지 진상 짓을 하는 건 그만 하자고 하면 너무 큰 요구를 하는 것일까? 그래도 우리 사회에는 브런치 작가님들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훨씬 많을 테다.


내가 잘 되기 위한 비결은 의외로 쉬운데  많은 진상들이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몹시 안타깝다. 상대에게 좀 더 주고 더 잘해 주면 내가 잘 되는 게 그 비법인데, 남을 골려주어야 기분이 좋아지는 진상들이 이 쉬운 비법을 깨우치는게 어쩌면 천지가 개벽하는것보다 더 힘들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낮에 그렇게 자고도 밤에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잘도 잤다. 내가 맞은 백신은 나를 잠자는 숲 속의 공주(?)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을 부린 건지. 오늘 낮에는 제발 잠이 안 와서 어제 받은 책이 눈에 쏙쏙 들어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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