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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24. 2021

듣기만 해도 따뜻한 그 한마디 '정'


본가에 가면 반드시 하는 게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미용실에 가는 것이다. 쿠바에 있을 때에는 긴 머리였기에 그냥 묶어서 다녔다. 쿠바에서 미용실에 딱 한번 가 보았는데 너무 실망을 해서 그다음부터는 가지 않게 되었다. 의자에 앉아서 머리카락을 덤성 자르고 의자에서 일어나기까지 일분이나 걸렸을까? 그리고 육천 원을 달라고 했다. 그 정도면 나도 자르겠는데 돈이 너무 아까웠다. 물론 쿠바에도 부자 동네에는 럭셔리한 미용실이 있다. 하지만 내가 그 동네까지 가서 머리를 자를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에 그날 이후로는 미용실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가 남편이 머리를 한번 잘라 주었고 한국에 오기 얼마 전에는 내가 스스로 머리를 잘랐다. 그리하여 허리 위까지 왔던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한 단발이 되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니 샤워를 할 때 기분이 좋았다. 특히나 물이 귀한 나라인데, 적은 양의 물로도 머리를 감을 수가 있어서 좋았고 머리카락이 가벼워지자 내 마음도 가벼워지는 듯했다. 진작 자를걸!






그러다가 한국에 왔다. 본가 근처에 있는 미용실에 가 보았다. 첫 번째 미용실에서는 내가 잘라서 조금은 비뚤어진 머리끝을 다듬기만 했다. 단발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염색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두 번째 미용실에 갔다. 분명 염색을 했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보이는 대로 갔더니 결과가 좋지 않아 초록창을 열었다. 집 근처 미용실 중에서 평점이 좋은 곳을 찾아보았다. 한 군데가 나왔다. 거의 만점에 가까운 평점에 고객들의 칭찬 릴레이가 이어진 평들이 한가득이었다.


아, 여기에 가야겠네!


초록창에서 예약을 했다. 그리고 그날이 되었다. 미용실은 2층에 위치를 하고 있어서 내가 지나가다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염색이랑 커트를 하겠다고 했다. 나의 머리카락은 사람들이 검은색 염색을 했냐고 물을 정도로 까매서 한국에 왔으니 밝은 색으로 변신을 하고 싶었다. 탈색을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안 그래도 상태가 좋지 않은 나의 소중한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상한다고 주위에서 만류를 하였기에 상대적으로 머리카락의 훼손이 적은 염색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대신 가장 밝은 색으로 하기로 했다.


말수가 별로 없는 착하게 생긴 디자이너가 자근자근 설명을 해 주면서 염색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가 요청한 대로 커트를 해 주었다. 해 보고 싶은 헤어스타일의 사진을 가져가서 보여주면서 이런 식으로 해 주세요,라고 요청을 했던 것이었다. 몇 시간이 지났고 완성이 되었다.


그래, 역시 미용실은 한국이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도 마음에 들었는데 디자이너님도 마음에 들었는지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그렇게 하시라고 했더니 커트 비용을 제해주었다. 게다가 초록창에서 예약을 한 손님은 첫 방문 시 20% 할인을 해주어 예상했던  금액에서 확 줄어들었다.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보는 사람마다 헤어스타일이 멋지다고 했다.


긴 머리와 짧은 머리의 장단점을 보자면 긴 머리는 머리를 감고 말리기가 힘든 반면 관리는 쉬우나 짧은 머리는 그 반대로 머리 감고 말리기는 쉽지만 관리가 쉽지 않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미용실에 가서 손을 봐주어야 해서 그때부터 거의 4~5주 간격으로 미용실에 가게 되었다.


첫 번째 만났던 디자이너님이 내 맘에 쏙 들었던지라 나는 그녀에게만 머리를 맡겼다. 자신의 의견은 내세우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맞춰주었다. 게다가 머리를 자를 때 어찌나 정성을 다하는지 자르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속으로 내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어요.'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녀는 나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정성을 다 쏟아부었다. 뒷손님이 기다리다 화를 낸다고 해서 내가 미안하던 적도 있었다.


그녀와 점차 친해지면서 내 머리도 점점 짧아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용실에서 문자를 한 통 받았다. 내 담당 헤어 디자이너가 임신으로 그만두게 되어 다른 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그 문자를 받자마자 디자이너님께 문자를 보내었다. 이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했다.


한참 후에 답이 왔고 그녀는 미용실 말이 사실이라고 했다.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되어 몹시 신경이 쓰여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계속해서 나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본인이 인정을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강원도 출신이라고 했지만 내가 볼 때에 그녀는 중국교포, 일명 조선족이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그녀가 불이익을 당한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그녀의 퇴사를 의심한 것이었다. 병원에 있다는 그녀에게 임신 축하 선물을 보내주었다. 그녀가 몹시 고마워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녀가 떠났지만 미용실은 가야 했다. 짧은 시간 동안 그녀와 정이 들었는지 몹시나 서운했지만 새로 소개받은 디자이너와 인사를 했다. 지난번 그녀보다 어린 분이었는데 생글생글 웃으며 그녀 또한 친절했다. 그런데 머리카락을 만지는 어린 그녀에게서 노련미가 보였다. 지난번 디자이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었던 반면, 이번 디자이너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해 주었다. 새로 만난 디자이너는 내 머리카락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전문가였다. 


친절하게 알아서 잘해주니 그녀와도 신뢰관계가 형성이 되어갔고 내가 마음에 들어 하자 엄마도 그곳에서 머리를 자르시게 되었다. 실력은 좋은데 가격은 엄마가 가시던 곳이랑 같아서 엄마도 젊은 감각이 있는 이곳으로 미용실을 바꾸게 되었다. 그녀는 수석 디자이너여서 2천 원이 비쌌지만 그렇게 해도 다른 미용실과 커트 비용이 동일했다.


엄마가 맨 처음 머리를 하러 가셨을 때, "내 딸 몇 살처럼 보여예?"라고 물어보셨다고 했다. 그녀는 대충 내 나이를 알았을 텐데 잠시 잊어버렸는지 엄마께 "삼십 대 초반으로 보여요."라고 대답을 했고 엄마는 "아이고, 낼모레 오십인데..." 하시며 몹시나 좋아하셨다. 그리고 그날 커트 비용 이외에 팁까지 주셨다고 했다. 나이 많은 내 딸을 어리게 봐준 고마움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신 것이었다. 역시 엄마는 기분파이시다.


이번 추석에도 당연한 수순처럼 나는 그녀를 찾았고 늘 그러하듯 뿌리 염색과 커트를 했다. 이제 머리를 단발로 기를 예정이라 전보다 멋은 없지만 그녀의 손길을 거쳐 차분한 헤어스타일로 변신하였다.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20대의 끝자락인 그녀는 요즘 고민이 많다며 나에게 자신이 고민하는 것들을 털어놓았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게 인생의 선배로서의 조언을 살짝 해 주었다. 고민을 하는 그녀가 참 예뻐 보였다.


그녀도 나에게 언니, 이렇게 하시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이거 꼭 하셔야 해요. 너무 멋져요.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발산했다. 가끔 보는 그녀이지만 나의 삶을 응원해주는 그녀가 참 고마웠다. 그리고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와 헤어지고 곧장 집으로 가려다 갑자기 카푸치노가 생각이 나서 예전에 내가 늘 가서 책을 읽던 근처 카페에 갔다. 몇 달 만의 방문이었는데 매니저님이 나를 알아보았다. 나도 그녀를 바로 알아보았다. "어머, 너무 오랜만이에요. 7월에 오신다고 하셨는데 안 오셔서 영영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 하면서 그녀는 몹시 나를 반겨 주었다. 어리고 똑소리가 나는 데다 어찌나 친절한지 그녀 때문에 다른 카페는 가지 않았더랬다.


한참 그 카페를 다닐 때에는 나는 조용히 책만 읽어서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는데 임시 숙소로 이사를 가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그곳을 찾은 날 그녀에게 한동안 못 볼 거라고 말을 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안타깝다며 작은 케이크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그날 몹시나 감동을 받은 내가 SNS에 사진을 올리며 그녀에 대한 칭찬을 하였고 그것을 그 회사 대표가 본 것이었다. 그 대표는 나에게 조심스레 어느 지점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냐고 DM으로 물어보았고 그녀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후 알려주었다. 그 후 그녀는 회사에서 칭찬을 받았겠지?


어쩌면 그래서 그녀는 나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기차표를 예매해 놓았기에 그녀와 많은 이야기는 나눌 수는 없었고 최근의 근황에 대해서만 짧게 이야기를 하고는 집으로 가려는데 그녀가 비닐봉지를 하나 주었다. 새로 판매를 하는 쿠키라고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먹고 있는데 촉촉하니 달지 않고 참 맛있다. 그녀가 건네 준 봉투를 받고는 마음이 찡해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외국인들이 '정'을 알게 되면 한국을 안다고 말할 정도로 정은 늘 우리와 함께 살아온 한국인의 대표적인 정서인언제부터인지 정이라는 단어가 그리고 그 감정을 느끼는 횟수가 예전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런데 어제 문득 어린 카페 매니저님에게서 강력하게 그 느낌을 전해 받고는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기분이 괜히 묘했다. 그러면서 혼자 생각했다.


'이제 나에게 정은 초코파이가 아니라 초콜릿 쿠키야.'


친구가 없는 동네의 미용실에서 그리고 카페에서 나는 따뜻한 정을 맛보았고 그 따스한 온기가 오늘 아침까지도 쿠키를 통해서 전해와 한동안 내 마음은 따뜻할 듯하다.


그런데 말입니다. 브런치엔 정이 차고 넘쳐서 늘 제 맘이 따뜻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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