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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Oct 04. 2021

쿠바에서 만들어 본 사과피자


몇 년 만에 맞이하는 이번 추석에는 과일을 많이 먹고 싶었다. 특히 사과와 포도를 많이 먹고 싶었다. 엄마는 당연히 내가 먹고 싶다는 말에 바로 과일을 내어 주셨고 나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었다. 등산을 다녀오고부터 포도가 그렇게 맛있다. 그래서 커다란 포도 세 송이 중에서 한 송이를 혼자서 다 먹었다. 추석의 단골손님인 싱싱한 배도 먹었고, 복숭아랑 단감도 먹었다.


추석 연휴가 끝이 났고 나의 숙소로 돌아올 때, 엄마가 사과를 싸 주셨다. 처음에 싸 주신 사과는 상태가 아주 좋아 보였는데 너무 커서 한 번에 먹기가 힘들 것 같아서 작은 사과는 없냐고 여쭤보았다.


"저 사과 너거 올케가 보낸 건데 얼마나 큼직하고 좋은 지... 저거 가져가면 좋을 텐데." 하시며 다른 냉장고에서 작은 사과를 꺼내셨다. 엄마에게는 작은 사과지만 내가 보기엔 먹기에 딱 좋은 크기라 그 사과를 몇 알 챙겨 왔다. 나의 숙소로 돌아와 아침에 사과를 하나씩 먹었는데 아삭아삭하니 너무 맛있었다.






어쩌면 내 인생은 쿠바에 가기 전과 후로 바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쿠바에 가기 전 나는 사과를 먹기는 했어도 많이 먹지는 않았다. 아빠가 늘 아침 사과는 금사과, 점심 사과는 은사과, 저녁 사과는 똥사과라고 말씀하시며 아침에 먹는 사과 한 알이 건강에 좋다고 하셔서 챙겨 먹긴 했지만 사과를 좋아해서 먹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쿠바에 가보니 사과가 없었다. 사과뿐만이겠는가. 포도도 없었고 딸기도, 복숭아도, 감도 배도 없었다. 있는 걸 이야기하는 게 빠르다는 농담을 쿠바 친구들과 늘 할 정도였으니.


그러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처음으로 사과를 보았다. 한 남자가 사과를 팔고 있었는데 내 주먹보다도 작은 사과 하나가 1,200원이었다. 비싸다!라고 생각은 했지만 먹고 싶었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파는 건 믿음이 가지 않아서 사지 않았는데 그날 상점에 갔더니 사과가 있었다. 상점에서는 두 개에 1,200원이었다. 아까 길거리에서 사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계산대 뒤로 사과 박스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캐나다에서 물 건너온 사과였다.



쿠바에서 사과라니!



계란 한 판을 처음으로 샀을 때, 밀가루를 처음 봤을 때와 같은 심정이었다. 줄을 섰다. 몇 알을 살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 고민이 무색하게 한 사람 앞에 열 알만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사과 열 알을 사서는 개선장군처럼 집에 돌아와 남편을 불렀다. 남편도 사과를 보더니 놀라며 엄청 기뻐했다. 얼른 씻어서 하나씩 먹어 보았다. 한국 사과만큼은 아니지만 너무나도 귀한 사과여서 맛도 좋았다. 그런데 크기가 작아서 금세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 아쉬워하며 며칠 동안 아껴서 사과를 먹었다.


몇 개월 후 다른 상점에서 사과를 또 보았다. 그때는 한 사람 당 열 알의 제한이 없었다. 그래서 스무 알을 샀다. 할머니와 어머니께도 사과를 맛 보여 드리고 싶었다. 스무 알이 든 사과봉지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집에 왔더니 남편이 또 놀라면서 좋아했다. 어머니와 할머니 드리려고 많이 샀다고 했더니 남편이 "오 자기,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하며 처진 눈썹을 치켜세우며 감동적인 표정을 지었다.


사과가 많이 생기가 그냥 먹어 치우는 것보다 저걸로 뭔가 새로운 걸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연결해서 사과로 할 수 있는 걸 보다가 두 가지를 발견했다. 사과 식초와 사과 피자였다. 초록창에서 찾은 레시피를 캡처하고는 곧바로 실습에 들어갔다. 사과 식초부터 먼저 만들어서 그늘에 잘 놓아두었다. 식초는 발효가 되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바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발효 전의 사과 식초

사과 피자를 만들 차례였다. 당시 나는 한참 제빵에 재미를 들여서 냄비와 밥솥으로 당근 케이크를 만들곤 했다. 그래서 사과 피자도 잘 만들어 보고 싶은 도전의식이 뿜뿜하고 뿜어져 나왔다. 냉장고에 남편이 사 둔 피자 도우가 있었다. 게다가 멕시코에서 사 온 파마산 치즈가루도 있었다. 계핏가루와 허브도 있었으니 일단 재료는 문제가 없었다. 캡처해 둔 레시피를 보면서 순서대로 따라 했다.


사과 피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과 조림을 먼저 만들어야 했다. 사과를 잘게 잘라 냄비에 넣고 설탕과 계핏가루, 물을 넣고 졸이는 거였다. 라임즙도 조금 넣었다. 졸이는 데 40여분이 넘게 걸렸다. 사과 조림이 대충 완성이 되어 맛을 보니 계피향이 설탕과 조화를 잘 이루어 맛있었다. 냉장고에서 피자 도우를 꺼내서 프라이팬에 놓고 그 위에 따끈한 사과 조림을 골고루 올려주었다. 그리고 파마산 치즈가루를 듬뿍 뿌리고 허브로 마무리를 해 주었다. 프라이팬 뚜껑을 덮고 불을 아주 약하게 맞추었다. 오븐이 없는지라 모든 건 프라이팬에서 약불로 해야 했다.


사과 피자 탄생 과정

몇 분 후 뚜껑을 열었더니 피자 가루가 녹으면서 제법 피자 모양을 갖춘 사과 피자가 탄생을 했다. 따끈따끈한 사과 피자를 접시에 옮겼다. 남편과 식탁에 앉아 사과 피자를 나이프로 먹기 좋게 잘라주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한 조각을 건넸다. 남편도 나도 사과 피자는 처음이었다.


너무 먹음직스럽게 잘 굽힌 린다표 사과 피자

조배우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남편이 감탄을 했다. 그런데 이 달달한 사과 피자는 단 걸 좋아하는 쿠바인이라면 누구든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일단 달달하니까. 금세 사과 피자 한 판이 사라져 버렸다. 신이 난 나는 또 만들었다. 사과 조림을 충분히 만들어 놓았으니 그저 피자 도우 위에 사과 조림을 올리고 몇 분 동안 프라이팬에 올려놓기만 하면 되는 거여서 만드는 건 금방이었다.


한조각 잘라서 입에 넣으니 그냥 살살 녹았다

참, 쿠바에서 판매하는 피자 도우는 우리가 생각하는 크고 얇은 도우가 아니라 2인용 라면을 끓이는 크기의 작은 냄비에 놓으면 맞을 정도의 크기에 얇은 빵 같이 생긴 거라 피자를 만들면 남편 혼자서 2판은 기본이다. 그러니 이 자그마한 사과 피자를 둘이 먹으니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과 내가 한 판씩 먹고는 또 하나를 만들어서 시댁으로 배달을 시켰다. 시댁으로 보내는 건 좀 더 신경을 써서 예쁘게 만들었다. 남편이 배달하는 과정에서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접시에 담은 채로 잘  싸서 보내었다. 사과도 함께 챙겨드렸다. 그날은 사과의 날이었다. 사과를 먹고, 사과식초를 만들고 사과피자도 만들었으니.


남편이 시댁에 도착했을 무렵 전화가 왔다. 어머니였다.


"린다, 사과피자 너무 맛있어. 사과도 잘 먹을게. 고마워!"


나중에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 따르면 어머니도 맛있다고 하시며 금세 다 드셨다고 했다. 할머니는 지병으로 단 음식을 조금만 드셔야 해서 어머니가 더 많이 드셨다고 덧붙였다.






오늘 새벽에 배송된 오아시스마켓 박스 안에 사과가 들어있어서 보자마자 하나를 씻어서 먹고는 일 년이 훌쩍 지난 그날을 떠올려보았다. 사과 스무 알에 사과 파티를 했던 그날을. 물자가 부족한 곳에서 먹는 것들은 너무나도 귀해서 기쁨도 맛도 두배가 된다. 쿠바에서 돌아온 지금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 특히 요즘 같은 사과 철에는 매일 아침 한 알씩 먹어줘야 할 것만 같아서 엄마가 주신 사과를 다 먹고는 바로 주문을 한 것이다.


어제 남편이랑 통화하는 데 남편이 물어보았다.


"자기, 한국에는 요즘 먹을 거 많아?"

"응 많아. 여긴 없는 게 없지. 다 있어."


그러자 남편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고 우리 둘은 마구 웃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남편에게 음식 사진은 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쿠바 지인들이 많이 보는 SNS에도 음식 사진은 올리지 않는다. 물론 쿠바에도 부자들은 잘 먹지만 내가 아는 많은 이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먹는 자랑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쿠바에 있을 때 처음으로 식탐이라는 게 생겼고 음식 때문에 맘 상한 적이 여러 번 있었던 지라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늘 부족했지만 부족해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던 그때가 참 알콩달콩 재미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추억해야겠다. 조금 더 하면 남편이 너무 보고 싶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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