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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Oct 15. 2021

그리운 나만의 감기약 <칸찬차라>

내 남편은 최고의 쿠바 바텐더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며 쌀쌀해지자 문득 쿠바의 겨울이 떠올랐다. 늘 햇볕이 쨍쨍한 카리브해에 겨울이 있을까?


쿠바의 계절은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데 11월부터 4월까지가 건기이고 나머지는 우기이다. 건기는 말 그대로 물기가 없고 마른 기간이라 비가 적게 오는 시기이다. 그래서 이때 관광객들이 쿠바에 많이들 방문한다. 건기 중에서도 12월에서 2월 사이에 관광객들이 가장 많은데 아마도 겨울 방학에 연말이 있어서인듯하다. 하지만 내가 살아보니 쿠바에서 날씨가 가장 좋은 시기는 2월과 3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2월 중순부터 3월이다.


전 세계가 기후 이상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이상기온으로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쿠바도 예외가 아니다. 허리케인의 영향이 11월까지 있고 따뜻했던 12월에 바닷물에 들어가는 게 망설여진다. 그러다 2월이 지나면서 물놀이를 하는 게 즐거워지는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추위를 좀 더 타는 나이기에 예민한 탓도 있다. 그러면 12월과 2월 사이에 있는 1월의 날씨는 어떨까?


쿠바의 1월은 일 년 중 가장 추운 달이다. 각자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따뜻한 옷을 꺼내 입어야 하는 달. 패딩이 있는 사람은 패딩을 입으면 되지만 없는 사람은 긴 옷을 몇 겹 입어야 하는 그런 달이다. 그런 1월은 나에게 몹시 잔인한 달이기도 하다. 밤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져 춥고 낮에도 해는 쨍쨍하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내 기관지가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그 추운 겨울에도 감기에 걸린 적이 별로 없었는데 카리브해에서 가장 큰 섬나라인 쿠바에 와서는 1월만 되면 기관지가 아프고 감기에 걸려 골골댄다. 추운 걸 좋아하는 남편은 1월을 시원하다고 표현하는데 이런 남편도 밤에는 춥다고 한다.


날씨라는 것도 개인이 느끼는 것에 따라 다를 수가 있다. 내가 지금 설명하는 날씨는 내 삶의 터전인 쿠바의 수도 아바나 기준이고 동쪽이나 남쪽은 그렇지 않다. 쿠바 지도를 보면 좌우로 기다란데 동쪽으로 갈수록 기온이 올라가고 서쪽으로 갈수록 서늘해진다. 그러니 아무래도 동쪽 끝자락에 있는 쿠바 제2의 도시, 산티아고 데 쿠바의 1월은 아바나보다 따뜻할 테다.


쿠바 지도-아바나는 서부, 트리니다드는 중부, 산티아고 데 쿠바는 동부에 위치한다

내가 쿠바에 두 번째로 왔을 때가 1월이었는데 남편과 두 달 동안 여행을 하고 있었다. 아바나에서 출발해 조금씩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쿠바의 중부 지방에 있는 컬러풀한 예쁜 도시인 <트리니다드>에 갔을 때였다. 낮에는 따뜻해서 사람들이 계곡 물에 첨벙첨벙 빠져댔지만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 나에게는 쌀쌀했다. 결국 나는 감기에 걸렸고 추워서 오들오들 떨며 아래 위로 검은색의 히트텍을 입고는 그 위에 하얀색의 반팔  원피스를 입었다. 가진 옷이 얼마 없었기에 최대한 따뜻하게 입고자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도 불사한 것이었다.


그런 차림으로 저녁을 먹고 바에 갔는데 내가 목이 아프다고 하자 남편이 바텐더에게 꿀이 들어간 칵테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바텐더가 있다고 하며 준 것이 바로 칸찬라라(Canchanchara)였다. 트리니다드의 특산품이기도 한 이 칵테일은 도자기로 유명한 도시답게 작은 도자기 항아리에 담겨 빨대를 꽂아 나와서 쿠바의 다른 칵테일과는 비주얼부터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칵테일도 쿠바 칵테일답게 럼 베이스이고 라임과 물, 얼음이 들어가는데 마지막에 꿀이 들어간다. 쿠바 칵테일 중에 꿀이 들어가는 칵테일은 아마도 칸찬차라가 유일한 듯하다.


그때 그 바에서 처음으로 마셔본 칸찬차라

그런데 신기하게도 칸찬차라를 마시니 아픈 목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꿀이랑 라임이 들어가니 맛도 좋아서 한 잔을 더 마셨다. 목이 훨씬 좋아졌다. 그때부터 목이 아플 때면 남편이 집에서 칸찬차라를 만들어 주었는데 도자기 항아리는 없지만 대신 남편의 정성과 사랑이 듬뿍 들어가서인지 다른 어떤 곳에서 마셔보았던 것보다 남편의 칸찬차라가 가장 맛있었다.


"자기, 목 아파."라고 말을 하면 남편은 재료를 확인한다. 만약 재료가 모두 있으면 곧바로 만들어주고 재료가 없으면 금세 나가서 사 온다. 집에 꿀이랑 라임은 늘 있으니 없는 재료는 럼뿐인데 그나마 럼은 늦은 시간만 아니면 어딘가에서 살 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재료가 준비가 되면 남편은 바텐더로 변신한다. 자신만의 레시피인 듯 잔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럼을 따르고 라임즙을 짜서 넣고 꿀을 넣은 후 물과 함께 잘 배합한다. 나의 칸찬차라에는 얼음을 넣지 않기 때문에 이걸로 끝인데 별거 아닌 이 칵테일이 내 감기에는 특효약이다.


예전에 목이 아픈 적이 있었는데 프랑스 친구가 독한 술을 마셔보라고 해서 "너 지금 장난해?"라고 하며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목이 아프던 날 독한 데낄라 샷을 마셨는데 아픈 목이 깨끗이 나아서 그 친구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같은 원리인 듯했다. 그런데 칸찬차라는 도수가 높은 럼만 들어간 게 아니라 비타민C가 한가득인 라임에 꿀까지 들어가 기관지에 좋을 수밖에 없을 테다.


남편은 칸찬차라 이외에 모히또도 기가 막히게 만드는데 맛도 히 최고다. 세심한 성격이라 재료 배합을 잘하는 것 같았다. 남편의 칵테일은 나만 마시기에 몹시 아까울 정도다. 남편은 칵테일 만드는 걸 좋아하고 나는 또 남편이 만드는 칵테일의 최대 수혜자다 보니 멕시코에 장 보러 갔을 때 칵테일을 젓는 스틱도 컬러별로 사 가지고 왔었다. 그러자 신이 난 남편은 정성 들여 칵테일을 만든 다음 스틱을 넣고 라임을 꽂아서 모양도 내었다.


남편이 만들어준 예쁘고 맛난 이름모를 칵테일

이제 나는 1월의 감기가 두렵지 않다. 남편의 칸찬차라가 있으니 말이다. 올 1월에도 쿠바에는 세찬 바람이 불 테고 그러면 남편이 칸찬차라를 만들어 주겠지. 라임즙에 몸에 좋은 꿀도 듬뿍 담아 럼과 함께 쉑쉑. 찬바람이 부니 벌써 생각나는 남편의 칵테일. 아침부터 취하면 안 되는데 칵테일 생각을 하니 살짝 취할 것만 같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캬~살룻!



사진 출처 : 지도-네이버 블로그 <안젤라의 행복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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